반공포로 석방 60주년 기념식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니 정부를 이유없이 반대하고 해치려는 일은 없어야 하며,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공산당이거나 또는 공산당이 아니더라도 공산당의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나라를 살려서 민주독립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 이에 위반되는 것에는 목숨을 바쳐 싸워야만 될 것이다”(대통령리승만박사담화집 제3집, 1959)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18일 오전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제60주년 기념식과 강연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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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은 휴전을 40여 일 앞둔 1953년 6월 18일 0시 유엔군과 공산군의 포로송환 협정을 무시하고 경북 영천, 대구, 광주, 상무대, 충남 논산, 경남 마산, 부산, 경기 부평 등 7개 포로수용소에 분산 수감돼 있던 반공포로 3만7천여명 중에서 2만7천여 명에게 자유를 주었다.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반공포로 대부분은 북한 공산군이 남한에 침략해 의용군이란 이름으로 남한 청년들을 강제동원, 그들의 침략전쟁의 앞잡이로 활용한 순수한 대한민국 청년들이었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대담한 결단을 칭송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건국 역사를 왜곡하고 이승만 박사를 음해 또는 폄하하려는 세력에 당당히 맞서 자랑스러운 건국 역사를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강연에 나선 김충남 한국군사문제 연구원은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과의 방위조약 쟁취를 위한 이승만 대통령의 승부수였고, 이로 인해 미국은 이 대통령의 협조 없이는 휴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시종일관 반대해 온 한국과의 방위조약에 합의, 한 달 만에 휴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도자의 위대성은 위기 시에 나타난다”며, 냉철한 현실주의자인 이 대통령도 휴전반대나 단독 북진이 불가능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휴전 후 안보를 위해 미국과 방위조약 체결이 필수적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반공포로 석방은 반공 포로들이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것을 막았을 뿐 아니라 한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한 대미(對美) 압박카드로, 그것은 한국의 대미 자주성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휴전에 급급하던 미국을 압박해 상호방위조약과 더 많은 경제적 원조를 얻어낸 최고의 외교적 승부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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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념사업회 이기수 회장은 기념사에서, “2만7천여 반공포로들은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혀 가망이 없다고 인식되던 대한민국을 왜 선택했는지 오늘 우리가 자문자답해야 할 큰 숙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결단은 “동족으로서 취할 수 있는 정당한 대리의사였으며, 자기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최소한의 긴급피난행위였다”고 덧붙였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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