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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6·25전쟁과 국군포로」

“그들은 꼭 돌아와야만 한다”
Written by. konas   입력 : 2014-07-23 오전 9: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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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北총사령부가 밝힌 국군유엔군 포로는 10만8257명...그러나 정작 귀환한 포로는 1만30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조성훈 선임연구원이 6·25전쟁 당시 공산권이 발표한 국군포로 규모를 국군과 유엔군 측 자료와 비교·분석하는 등 6·25 당시 발생했던 국군포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단행본을 내놨다.

 오는 27일이 종전(終戰)기념일이 아니라 정전(停戰)기념일인 것처럼 6·25 국군포로 문제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국군포로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대화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만, 북한은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간을 통해 미귀환 국군포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북한의 포로정책에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유엔군측과 달리 포로수를 정확하게 발표하거나 국제적십자사에 알리지 않고, 국군포로중 상당수를 북한군에 입대시키거나 주민으로 편입해 1951년 12월 포로명단을 교환할 때 이들을 아예 제외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6·25 발발 1년 후인 1951년 6월25일 북한군 총사령부가 국군·유엔군 포로를 10만 8257명이라고 밝힌 자료를 인용하면서 이를 국군포로 귀환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포로가 10만 명 이상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귀환한 포로는 1만3000여 명에 불과했다. 그 차이만큼 많은 국군 포로가 북한땅에 존재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포로의 발생 배경부터 국군과 유엔군 포로의 규모, 포로수용소 위치와 대우, 북한·중국군 포로수용소에서 수용 중 사망자, 북한군 편입과정과 규모를 살펴봤다. 또 휴전협상당시와 정전 후 포로 논쟁과 포로 교환, 미귀환포로 규모 등을 정리했다.

 이와 함께 국군포로의 시베리아 이송설과 관련, 가능성을 검토하고 귀환대책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공산군의 포로대우에 관한 보고서, 북한군과 중국군 포로 심문보고서와 함께 북한·중국의 신문과 잡지, 중국군·조선족참전자 회고록, 러시아 문서를 참고해 설득력을 더했다.

 저자는 발간사를 통해 국군포로문제 해결에서 중국 정부의 역할을 기대했다. 전쟁 당시 중국군은 북한군과 함께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전쟁포로관리처’를 편성해 공동 운영했기에 전체 포로 규모나 수용 중 북한군 편입규모, 사망자 등에 대한 정보를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군이 보존하고 있는 휴전협상과 국군포로관련 자료를 공동 연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이번 책을 통해 6·25 포로와 실종자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결코 잊지 않을 것’(They will never be forgotten!)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책은 전쟁기념관내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Konas.net

* 출처 : 국방일보 7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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