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王 폭살 기도 ‘이봉창 의사 의거’ 제 83주년 기념식
“제 나이 31세입니다. 이 앞으로 다시 31세를 더 산다하여도 과거 반생생활에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 하면 31년 동안 인생 쾌락을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 쾌락을 도(圖)키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을 목적하고 상해로 왔습니다...” (1931년 1월 상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 할 당시 - 「백번일지」중에서)
일제시대 일본 동경에서 日王 히로히토(裕仁)에게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리고 순국한 ‘이봉창 의사 의거’ 제 83주년 기념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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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 이날 기념식은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일반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사보고, 기념사업회장의 식사(式辭), 서울지방보훈청장·광복회장의 기념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기념사에서 이 의사를 향해 고난과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아끼지 않은 의연한 청년이자 ‘민족정기의 화신’ 이라며 “의사의 오롯한 정신은 지금도 우리민족 정기의 근간(根幹)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1901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 의사는 1931년 1월 중국 상해로 건너간 뒤 백범 김구 선생이 결성한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1932년 1월 8일 日王이 동경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 동경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에 폭탄을 던졌지만 폭탄이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해 日王 폭살에 실패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국했지만 그로 인해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커우공원 의거’의 기폭제가 됐다.
임시정부는 광복 후 1946년 7월 일본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했다.
정부는 이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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