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은 마법의 지팡이다
토끼를 쫓던 호랑이, 토끼를 잡았을까? 못 잡았을까? 호랑이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뛰었고, 토끼는 죽을힘을 다해서 뛰었다. 결과는 호랑이의 실패다. 설화 이야기다. 그동안 시리아에서 연전연승하며 세력을 키우던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주춤하다. 자체적으로 선포한 수도 라카 인근까지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가 진격해 핵심 군사기지를 점령해 버렸다. 물론 다른 반군과 미국 주도 반(反)IS 국제동맹군의 도움을 받은 전력이지만, 쿠르드족은 수백 년간 잃어버린 국가를 되찾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그렇게 절박한 심정은 그동안 파죽지세이던 IS의 기세를 꺾었다. IS의 깃발만 보고도 제대로 전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첨단 무기를 버리고 도주한 무기력하고 무능한 시리아와 이라크정부군과 비교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5년 4월 사이공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하는 미군 헬기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100만 대군을 자랑하던 월남군은 월맹군의 공격을 받자 저항 한 번 못 하고 그대로 붕괴했다. 장비도 병력도 우수한데 왜 졌을까?
당시 월남은 지도자가 부패했고, 정부는 무능했으며 군부는 무사안일에 빠졌다. 자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도 영국 국민이 1차 대전 이전 그들의 식민지전쟁을 ‘멀리서 들리는 소음’으로 느꼈던 것처럼, 월남 국민도 전쟁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기필코 싸워 이겨야 한다는 절실함이 없었다. 필승의 신념이 없는 군대가 승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리 역시 6·25전쟁 당시 너도나도 전선으로 달려갔다. 유엔의 도움도 중요했지만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했다. 군인들은 수류탄과 박격포탄을 묶은 다발을 들고 적 전차 밑으로 들어가 장렬히 산화했고, 낙동강 전선에서는 시체로 방벽을 쌓고 싸웠다. 통일을 꿈꾸며 맨발로 걸어 북진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부모, 조국을 위한 분골쇄신(粉骨碎身)의 각오였다.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생명이 달린 총력전이었다.
국가안보에는 만일이란 것도, 가정이란 것도 없다. 한 번 없어진 나라는 다시 세울 수 없다. 역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교훈을 주고 있다. 전쟁은 무기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수반된다는 것을 우리는 6·25전쟁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베트남전에서도 전쟁은 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정부와 군 그리고 국민의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았다.
그런 점에서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헌법 제5조’의 명시는 우리 군대가 얼마나 막중한 의무와 책무를 가지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특출한 지도자도, 전쟁에 이길 전쟁목표나 국가전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필승의 간절함이다. 간절함은 마법의 지팡이와 같은 것이어서 때론 기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삶의 기준을 바꾸기도 한다. 세상은 간절히 노력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군대에 있는 시간이 미래에 대한 간절함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부 교수 / 한국테러학회 회장)
* 국방일보 9월3일 17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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