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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지청천 장군, 제59주기 추모제 거행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김우전 한국광복군동지회장과 회원, 유족 등 50여명 참석
Written by. 강치구   입력 : 2016-04-14 오후 2: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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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의 제59주기 추모제가 14일 오전 서울 동작동 현충원 장군 묘역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제는 (사)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우전)가 주최했으며,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 광복회(회장 박유철), 국립서울현충원,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박용옥)가 후원했다.

 국민의례, 약력보고, 추모사, 헌화 및 분향으로 진행된 장군의 추모제에는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김우전 한국광복군동지회장과 회원, 유족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 14일 지청천 장군의 제59기 추모제가 서울 동작동 현충원 내 장군의 묘역 앞에서 거행됐다.ⓒkonas.net

 윤종오 지청장은 추모사를 통해 “‘나라가 없고는 민족의 자유는 없다.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는 만주벌판을 베개 삼아 죽을 것을 맹세합시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장군님의 일생은 오직 조국 광복과 민족 번영을 위해 매진하신 위국헌신의 삶 그 자체였다”라고 장군을 기렸다.

 특히, 윤 지청장은 “장군님을 비롯한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자존을 지킬 수 있었고 지금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국민통합을 이루어 내기 위한 가장 훌륭한 자산이라 생각한다”며 “우리 국민의 뜻을 하나도 모으는 것은, 결국 장군님께서 민족통합을 통해 하나의 한반도를 만들고자 하셨던 염원을 실현하는 길과도 통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은 박유철 회장의 추모사 대독을 통해, 장군의 업적을 기리면서 “장군님처럼 투철한 국가관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되찾은 대한민국을 지키고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에도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윤허해 주옵소서”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추모제를 주최한 (사)한국광복군동지회가 밝힌 장군의 약력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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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 지청천 장군 약력

 1888년 1월 25일 출생하신 장군은 1908년 대한제국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본군을 탈출해, 만주 통화현 신흥무관학교 교관에 취임하셨다.

 1921년 러시아 이르크츠크에서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창설하고, 교장으로 취임, 수많은 독립군을 배출해 내셨다.

 19030년 한국독립당을 창설하고 한국독립군을 조직해 총사령관으로 취임하고, 1933년 영하현 동경성 전투와 라자구 대전자령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셨다.

 1934년 임시정부의 명을 받고 중국 낙양군관학교 내 한인반 총책으로 재임하시면서 많은 광복군의 간부를 양성했다.

 1939년에는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국무회의 군무장으로 선임되시고, 이듬해인 1940년, 역사적인 한국광복군 창설과 동시에 총사령관으로 피임되어 8·15광복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치셨다.

 중국군과 공동작전으로 항일전에 헌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도, 미얀마에 광복군을 파병해 영국군과 공동항일작전을 전개하였고, 종전기에는 미군과도 합작해 한반도에 상륙할 OSS 특공작전을 감행코저 하였으나 일본군의 조기 투항으로 애석하게도 조국본토 진공을 하지 못하고 광복을 맞았다.

 환국 후, 1947년 대동청년단을 조직해 나라에 이바지 할 청년들을 양성했으며, 1948년 5·10 선거에 출마, 제헌국회의원과 제2대 의원을 역임했다.

 장군께서는 1957년 1월 15일 조국의 자주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천추의 한을 품은 채 운명하시어 사회장으로 수유리에 안장되셨다가, 1994년 4월 국립현충원 임정묘역으로 모셔졌다.

 정부는 1962년 장군의 혁혁한 공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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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아빠(heng6114)   

    나라가 없고는 민족의 자유는 없다는 말씀에 백번 공감 합니다. 장군님의 애국충정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표상이다.

    2016-04-15 오전 9:42:33
    찬성0반대0
  • dldn4177(didn)   

    조국 광복과 민족 번영을 위해 매진하신 장군님을 비롯한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 !!!

    2016-04-15 오전 8:47:53
    찬성0반대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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