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의 독립운동가에 윤현진 선생 선정
임시정부의 재무차장… 29세 젊은 나이에 과로로 별세
2018년 4월의 독립운동가에 윤현진(尹顯振, 1892.9∼1921.9) 선생이 선정됐다.
선생은 1892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만성재(晩惺齋)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5세가 되던 1907년 구포의 구명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1909년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탐방한 뒤 깊이 있는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 22세가 되던 1914년 메이지대학에 입학한 후 조선유학생학우회와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결성된 신아동맹당 당원으로서 반일운동에 앞장섰다.
1916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약 3년 동안 대동청년단, 백산무역주식회사, 의춘상행(宜春商行), 기미육영회 등과 관계를 맺고서 비밀결사운동, 경제적 자립운동, 교육운동을 주도하였다.
선생은 3ㆍ1독립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21일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위원과 경상도위원, 국내 항일세력과 연락을 위한 의용단 조직, 독립신문 발기인 등을 맡으면서 임시정부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1921년 2월에는 임시정부의 중책인 재무차장에 취임하여 살림을 책임지다가 같은 해 9월 그동안의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29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였다.
장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장으로 치러졌는데, 선생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160여 명의 내빈이 참석하여 선생을 추모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konas)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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