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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의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

위대한 저항 시인이자 승려, 독립투사로 민족운동 최일선에서 활약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9-05-31 오전 10: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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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용운(1879.8.29.~1944.6.29.) 선생을 2019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79년 8월 충남 홍성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3년 한국불교가 새로운 문명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개혁방안을 제시한 기념비적 책인『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발간을 계기로 불교 혁신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1919년에는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전국적이며 거족적인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불교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탑골공원에서의 만세운동 및 전국적인 만세운동에 적극 동참하도록 권유하였다.

 1919년 3월 1일 종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식을 가진 후 모두 일경에게 체포되었으며, 선생은 같은 해 7월 10일 옥중에서「조선독립의 서」란 논설을 집필해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의연하게 강조했다.

 선생은 1921년 12월 21일 석방된 뒤에도 민족운동을 계속했으며, 192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1923년에는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상무위원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물산장려를 통한 민족경제의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 운동에 앞장섰다

 1927년 2월 좌우합작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新幹會)의 창설이 추진되자, 선생은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신간회가 창립되자 경성지회장으로 피선되어 민족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하였다.

 선생은 1933년 55세 되던 해 지금의 성북동 집터에 심우장(尋牛莊)이라는 집을 짓고 입적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집을 지을 때 선생을 돕던 인사들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터를 잡을 것을 권유하였으나 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다고 하여 끝내 동북 방향으로 집을 틀어 버리고 말았는데 여기에서 선생의 민족적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은 일제말기 총동원체제 아래 자행된 황민화 정책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민족적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선생은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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