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전 재산 처분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이회영 선생 추모식

16일 순국 87주기 맞아 남대문로 상동교회에서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19-11-15 오전 10:03:23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국가보훈처는 전 재산을 처분해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순국한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순국 87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11시 서울 남대문로 상동교회에서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고 15일 밝혔다.

 이날 추모식은 김상출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회원, 유족,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예배와 추모식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회영 선생(1867. 4. 21.~1932. 11. 17.)은 한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4남으로, 1910년 12월말 6형제 50여명의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로 망명해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망명 후 서간도에 정착한 선생은 1912년에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많은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3ㆍ1운동 직전 중국 북경으로 다시 망명길에 올라 상해에서 동지들과 임시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북경으로 돌아와 1924년 4월 류자명ㆍ이을규ㆍ백정기 등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정의공보」를 간행했다.

 1928년 6월 상해에서 한ㆍ중ㆍ일ㆍ필리핀ㆍ대만ㆍ안남 등 각국의 아나키스트들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이 창설되자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라는 논문을 보내 한국 독립 지원을 호소하였으며, 1930년 아들 규창과 함께 상해의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

 1932년 중국의 동지들과 만주에서 한ㆍ중 연합의 항일투쟁을 계획했으며, 11월 초 대련행 기선을 타고 상해 황포강을 출발하여 만주로 가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가 11월 17일, 66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0.9.19 토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그 날의 영광, 인천상륙작전
9월의 호국인물에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첩..
깜짝뉴스 더보기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불면증’ 예방하려면?
현대인의 발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질병인 ‘불면증&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