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수기 ‘누군가의 등불로 산다는 건’(장려상)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하루 평균 이용객 10만 명. 따라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연간 3천만 명의 이용객을 자랑하는 이곳은 우리나라 철도의 중심 서울역입니다. 이용객이 많은 이유는 매일 100편이 넘는 KTX와 새마을, 무궁화호가 정차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역에서 저는 “저기요!” “아저씨” “학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상황에 따라 자녀를 보기 위해 상경한 할아버지의 손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되기도 합니다. 또 부모님의 손을 놓쳐 버린 아이에게는 든든한 사촌 형으로 변신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며 서울역의 안전을 책임지는 저는 국토교통부 철도특별사법경찰대 서울센터에서 복무 중인 조수연입니다.
복무기관, ‘철도경찰’과의 첫 만남
2018년 2월 14일. 평창동계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던 중, “띵동”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수차례 들렸습니다. “택배 왔나?”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더니, 우체국 집배원이 작은 편지봉투를 건넸습니다. 발신인은 병무청. 내용은 사회복무요원 소집통지서였습니다. 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하고 싶었던 건 평창동계올림픽 경기 직관(직접관람)하기. 가방 하나 메고 무작정 평창으로 떠났습니다. 과거 TV 프로그램에서 봤던 봅슬레이 경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즐거웠던 봅슬레이 관람.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기억하고 싶어 대형 반다비 인형부터 수호랑&반다비 인형 선물세트, 컬링 쿠션까지 기념품을 한가득 구매했습니다. 양손 가득 들고 겨우 진부역에 도착했고, 서울행 KTX를 탑승하려 발걸음을 재촉하는 찰나 “잠시만 이리 와주시겠어요?” 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의문도 모른 채 “네”라고 답했고, 어느덧 보안검색 앞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양해를 구하고 제 짐을 보안검색에 통과시켰습니다. ‘하필 수많은 사람 중 나일까?’ ‘내 모습이 험상궂게 생겼나?’ 나를 의심 인물로 생각해 검사한다는 사실이 불쾌했습니다. 그리고 따져 물었습니다. “왜 나만 검사해요?” 그러자 철도보안검색은 무작위로 시행하고 있다는 원칙적인 답이 들려왔고, 저는 짐을 챙기며 “인형밖에 없는데 뭘 검사한다고 그래요”라 짜증 섞인 말투로 유심히 쳐다봤습니다.
‘철도경찰이라, 철도경찰…’. ‘다음에 만나면 제로 항의해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죠.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추억은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무사히 수료할 수 있던 힘이 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 하던 날. 철도특별 사법경찰대가 철도경찰인지 모르고 서울센터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눈동자. 눈동자 속 누군가와 깊게 눈을 맞췄고, 저는 들고 있던 사회복무요원 안내문을 툭! 떨어트렸습니다. 진부역에 서 봤던 철도경찰이 서울센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다름 아닌 ‘보안검색’
다행히 그 철도경찰은 저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슬쩍 떠보니 진부 역에서는 잠시 지원 근무를 나갔었다고 하는데요. 속으로 ‘참 다행이다’ 를 외치며 떨어트린 문서를 주웠고, 첫 출근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처음으로 부여받은 업무는 ‘보안검색’. 진부역에서 항의했던 제가 보안검색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서울역의 보안검색은 진부역에서 겪었던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보안 검색은 불특정 다수의 철도 이용객 중 무작위로 선별해 이뤄졌는데요. 보안검색을 자주 겪었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흔쾌히 보안검색에 응해줬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보안검색은 비행기 탑승할 때만으로 굳어진 인식 탓에, 보안검색을 요청하면 예민하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왜 보안검색 해요?”라고 말이죠.
보안검색에 대한 불만은 항상 사회복무요원에게로 왔습니다. 사회 복무요원이 만만해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보안검색을 요청할 때 어르신들은 “사회복무요원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크게 호통을 치기도 했고, 중년 부부는 “너네 뭐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왔어? 어디가 안좋아?”라고 사생활을 묻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보안검색에 대한 불평과 민원을 응대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을 곱씹으며 친절히 보안검색의 취지와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부분 설명과 함께 이해했지만, 일부는 욕설 과 함께 “민원을 넣겠다”며 자리를 박차기도 했습니다. 보안검색을 받았을 때는 저런 목소리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역지사지로 직접 보안검색을 해보니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철도안전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힘들었던 보안 검색. 철도안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마음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순조롭게 진행되던 보안검색은 전문성을 더 필요로 해 전문인력으로 변경된 후, 서울역 순찰지원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용객들의 안전한 철도이용을 위해 서울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 이용객들의 민원이나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질문과 민원을 받지만, 아직도 마음속 깊이 큰 울림을 주는 사연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연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역에 온 어르신. 서울역의 웅장한 모습에 넋놓은 할아버지가 당황하는 모습에 “혹시 누구 찾으세요?”라고 말하며 다가갔었습니다. 그러자 어르신은 제 손을 덜컥 잡더니, 아들 녀석을 만나기로 했다며 아들이 어디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하며 아들을 꼭 만나야 한답니다. 혹시나 해서 어르신의 스마트폰으로 아들에게 연락했더니, 아들은 “그런 적이 없다”며 다급하게 어르신의 위치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서울역”이라고 했더니, 아들은 당황하며 어르신의 병명을 말해줬는데요. 어르신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습니다.
난감한 상황. 어르신은 “아들은 어딨냐”고 찾고, 아들은 회사라 서울역으로 갈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르신의 말동무가 되며 아들을 기다렸고, 급히 서울역으로 온 아들은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이고, 사양했음에도 끝끝내 손에 쥐어준 작은 음료수 하나. ‘사회복무는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구나’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사회복무를 하며 가장 뿌듯했던 때는 지난달 5월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금요일. 마치 슈퍼히어로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여행 온 아이가 그만 부모님 손을 놓고 말았던 것. 서울역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이 헐레벌떡 센터로 찾아 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수소문하며 찾았습니다. 30분 넘게 찾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항철도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설마 공항철도까지 내려갔겠어?”라고 생각하며 공항철도까지 수색한 결과,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훌쩍훌쩍 울며 부모님을 찾았던 아이. 일단 아이를 달래는 게 급선무.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진정시켰습니다. 이윽고 부모님이 공항철도로 뛰어왔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누군가의 어벤져스 캐릭터 모양의 가방을 보고 따라갔던 것. 그 아이가 다시 제 손을 잡고 무사히 부모님 앞까지 왔을 때, 자신이 이른바 ‘슈퍼히어로’가 된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누군가의 ‘등불’
사실 저는 사회복무를 시작하기 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매우 이기적인 성격에 내가 먹어야 하는 파이만 신경 썼고, 내 밥그릇을 건들면 죽기 살기로 싸웠습니다. 배려와 나눔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만 가득했습니다. 또 매우 사나웠습니다. 귀찮은 일을 시킬 때면 성질부터 냈었습니다. 보안검색을 당했을 때처럼 말이죠.
서울역에서 보안검색을 위해 여행 가방을 보안검색에 올려놓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개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저는 8개월 후 정든 서울역을 떠납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던 시간 동안 보안검색부터 서울역 순찰까지. 서울역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울역에서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구나…. ‘사람이 바뀔 수도 있구나’라고 말이죠.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됐 을 때, 또 길 잃은 아이를 무사히 부모님에게 전달했을 때, 깨어있음을 느꼈습니다.
이제 마지막 업무를 전달받았습니다. 무사히 소집해제를 할 때까지 누군가의 등불이 되어주는 것. 어두운 길에 꼭 필요한 등불처럼 넓은 서울역에서 사회복무요원의 친절한 안내가 이들에게는 등불이 됩니다. 오늘도 저를 보고 “저기요!”라고 부르겠지요. 그러면 전 밝은 표정으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답합니다. 어둠 속 환한 등불처럼.
조수연(서울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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