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수기 ‘꿈나라, 별나라’(입선)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솔쌤
‘훈련소만 수료하고 보자. 패스트 샴푸 매일 쓰고(머리가 빨리 자라난다고 함) 옷도 사고 벚꽃이 지기 전까지 여자친구를 만들 테야’ 벌써 1년도 더 되었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면 식상하겠지만 정말로 1년도 더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작년 4월 초에 훈련소를 수료하고 나서 군복도 벗지 않은 채 집에 가는 길에 내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귀일중학교였다. 화장품 가게도 아닌, 미용실도 아닌, 친한 친구의 집도 아닌 바로 앞으로 나의 근무지였다. 무슨 이유였을까, 수료하고 나서 너무 기쁜 나머지 들떠있었나, 여하튼 행정실에 들어갈 때 나의 표정은 당당했었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방안에는 대 여섯 되는 직원분들과 한 학생이 있었다. 다들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뭔가 하는 표정이었다. 특히 그 학생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는 정도였으니. 그러고 보니 그날은 금요일,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월요일부터 여기서 근무하게 될 사회복무요원입니다. 수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렇게 남들보다 조금 이른 첫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날이 시작되었다.
나의 업무는 시각장애인 학생 도우미이다. 우리 학교에는 한 명의 시각 장애인 학생이 있다. 이름은 〇〇〇, 2학년 평범한 학생이다. 일반 학생들과 조금 다르다. 그저 앞이 잘 안 보일 뿐. 업무라고 보면 사회복지 실천 현장의 한 분야로서 전문적이지만 간단하게 보면 〇〇이와 함께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월요일이 되는 날 전달받은 대로 잘 출근하였다. 등굣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빡빡 깎은 머리의 한 어른이 자기들과는 다르게 사복을 입고 정문을 거닐다니(난 이때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것이다) 솔직히 아주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회복무요원들도 그랬을 것이다. 당연히 처음엔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내 자리는 2학년 1반의 어느 구석 책상이었다. 내 옆에는 〇〇이의 자리였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아 새로 오신다던 도우미 쌤이구나~ 용훈쌤 (선임) 동생이세요?.’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빗발처럼 질문들이 쏟아지던 찰나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웃어주신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다시 시끌벅적한 교실에 들어오는 것이. 학교에서의 하루를 담임선생님과 함께 조회로 시작하는 것이. 라고 생각에 젖어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괜찮으시다면 소개를 좀 부탁드려요.’ 당황스러웠다. 뻔한 전개였지만 솔직히 준비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인사말과 어떻게 해서 오게 되었는지 등 아이들이 궁금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앞으로 자주 보면서 서로 이름을 부르게 될 텐데 나는 이름이 솔이니까 편하게 솔쌤이라고 불러줘’ ‘...네! 솔쌤.’ 어디서 누가 답한 소리였을까. 아무도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고 있는데. 그 소리가 내가 앉아있던 자리와 가까운 곳에서 났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나도 답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 고마워 〇〇아.’ 귀일중에서 〇〇이와의 학교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개교기념일
4월 8일은 우리 학교의 개교기념일이다. 개교기념일을 맞아 교내 백일장 문화 행사가 열렸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교 3년 많은 시간 동안 백일장 글짓기를 해봤기에, 물론 아예 귀찮아서 제출 안한 적도 있겠지만, 그날도 그냥 별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행사가 시작되는 5교시 때였다. 딩동 딩동 댕동댕동. 종이 울리자 일제히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교실에는 나와 〇〇이를 포함한 몇 명의 학생들이 남아있었다. ‘〇〇아 걔네 무사 나간 댄?.’ ‘아 쟤네는 그림 그리러 운동장에 나가요.’ 가방에 점자 컴퓨터 한소네를 집어넣고 필통을 꺼내며 얘기하였다. 그러다 문득, 나 때는 담임선생님이 앞에 계신 교실 책상에서 고개를 숙여 묵묵히 글을 끄적였었는데... 참 지루했었는데……. 우리 학교는 그게 아니라 한마디로 자유시간 같았다. 5교시부터 7교시까지 아이들은 각자 글짓기, 시 쓰기, 학교와 관련된 풍경화 그리기 등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장소에서 할 수 있었다.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3층 교실 밖 복도에서 운동장을 보며 나는 감탄하며 미소 지었다. 누워서 친구들과 수다떠는 아이들,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학교의 모습을 한 폭에 담는 아이들, 둥그렇게 둘러앉아 각자 만든 시를 낭송하는 아이들은 마치 시민광장과 같았다. 내 눈에 비친 풍경화였다. 그 모습들 그 자체로 나에겐 백일장 문화행사였다. 우리도 질 수 없을세라 나와 〇〇이는 시 쓰기를 하였다. 대부분은 〇〇이가 혼자 생각해와서 막힘없이 잘 써나갔다.
중간중간 내가 종결어미를 변화시켜 준다거나 맞춤법을 고쳐준다거나 조미료를 첨가할 뿐이었다.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댄 그 결과! 아직도 기억이 남는 한 구절이 있다. ‘자유롭게 나는 새를 따라 수평선 너머로 가면 찾을 수 있는 우리의 보물 제주, 제주는 내 마음속에 남아 영원하리.’ 〇〇이가 얼마나 제주에 살면서 그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그리고 제주에 대한 애정과 그의 삶의 에너지를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아직 〇〇이와 지낸 지 일주일이 채 안되었지만, 그 아이에게서 느끼는 것이 많다. 〇〇이는 옆에서 조금만 보태주면 정말이지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었다. 반찬들의 위치만 알려주면 스스로 밥을 먹었다. 화장실이 몇 걸음 앞에 있음을 알려주면 스스로 볼일을 보고 나왔다. 교과서를 보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듣고 꾸준히 예습하고 수업한 내용을 복습한다면 전교 20등 안에도 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보이지 않음에도 노력한다면 할 수 있음을 나에게 보여줬다.
수학여행
9월 4일부터 9월 7일까지 3박 4일 동안 2학년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기 몇주 전부터 나의 복무담당 선생님이 나에게 수학여행을 〇〇이와 같이 가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나의 답은 Yes였다. 내가 가지 않으면 〇〇이는 수학여행을 못가게 될 거고, 크 게 실망할 것이다.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복지기관의 외부 선생님이 동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〇〇이가 불편해했다. 〇〇이와 나는 항상 통해있었다. 〇〇이의 어머님의 역할도 한몫했다. 어머님은 언제나 〇〇이 편이었다. 그리고 현명하셨다.
자칫 나를 어색해하셔서 나의 복무담당 선생님을 거쳐 나와 연락을 하시는게 편할 수도 있는데 어머님은 항상 나에게 거리낌 없으셨다. 오히려 〇〇이가 원하는 것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나와 먼저 의견을 나누셨다. 우리는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같이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〇〇이에게 중이염이 있다는 걸 처음 들었다. 중이염은 귀에 기압이 높아지면 치명적이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내가 내심 걱정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듯이 〇〇이는 귀에 헤드셋을 덮고 물을 자주 마시게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의연했다. 승무원의 도움과 〇〇이의 노련함으로 비행기 안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수학여행 일정은 순조로웠다. 무난한 동선과 맛있는 식사 그리고 넓고 멋있는 호텔 방까지 거의 모든 학생이 만족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의 기대주는 놀이공원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〇〇이도 기대를 많이 했다. 다른 박물관이나 체험관에서는 나와 〇〇이 단둘이서만 다니게 되는 시간이 많았는데 놀이공원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탈 수 있어 〇〇이는 더욱 즐거워 보였다.
점심을 먹고 이제 무슨 놀이기구를 탈까 하다가 다 같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이 바로 T-express 롤러코스터였다. 그런데 〇〇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롤러코스터를 타본 적이 없었다. 〇〇이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렸을 적 시력이 남아있을 때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다는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롤러코스터는 정말 새로운 도전이었다. 어머님도 롤러코스터는 타기 힘들 수 있다고 반신반의 하셨다. 이런 얘기를 우리는 주고받고 있었다.
‘쌤! 저 그래도 한번 타보고 싶어요. 지금 안타면 후회할 거 같아서요.’〇〇이가 말했다. 〇〇이 말이 맞았다. 나도 〇〇이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기? 하긴 롤러코스터 타고 뭐 설마 죽기라도 하겐, 난 그런 거 텔레비전에서도 못봤져. 우리 무서우면 같이 소리라도 꽥꽥 질러불게이.’나는 태연한 척 말했다. 하지만 내심 불안한 건 사실. 정말 심장에 무리라도 가는 게 아닌가 겁이 불쑥 나긴 했다. 한 시간이 넘는 긴 줄을 기다린 끝에 롤러코스터에 앉아 안전바를 확인하고 드디어 출발. 아 하늘이 파랗구나. 옆을 보았다. 살짝 겁먹은 듯한 〇〇, 그래 너도 겁은 먹는구나. 드디어 하강…! 하자마자 우리는 소리를 질다. 그런데 웬걸 처음에만 무서워하더니 나중에는 제대로 즐기더라…….
후유증으로 멍해 있는 나와 다르게 〇〇이는 한 번 더 타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난 겁이 많다) 얘기를 주고받았다. 정신 차릴 겨를 없이 다음은 호러메이즈로 향했다. 호러메이즈는 쉽게 말하면 공포 담력체험이다. 언제 귀신들이 나올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을 한 줄로 걸어 탈출해야 한다. 너도 여기서 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바로 옆에서 튀어나오는 귀신분장의 사람들 때문에 내 앞에 가던 〇〇이의 어깨 뒤에 소라게 마냥 숨어버렸다. 그런데 맙소사 〇〇이가 실실 웃고 있는 게 아니던가? ‘쌤 저는 귀신이 보이질 않아서 하나도 무섭지가 않네요’ 참 어이가 없더라. 그 와중에 귀신들 때문에 나는 계속 깜짝 놀라고, 그런 내 모습에 〇〇이는 좋아 죽더라.
재밌고 기가 막힌 하루 끝에 우리는 잘 준비를 마치고 같이 침대에 누웠다. 서로의 가족 얘기도 하며 좋아하는 가수들 퀸, 잔나비 등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나는 장난기가 올라 〇〇이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이윽고 작은 몸싸움이 시작됐다. 엎치락 뒤치락, 내가 항복할 때까지 웃음이 계속되었다. ‘나도 남동생이 있으면 〇〇이처럼 같이 놀면서 참 좋을 거 같아’. 내 생각도 잠시 조그마한 정적이 흐르고 나서 〇〇이가 말했다. ‘쌤 같이 와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정말 즐거워요.’ 짧은 두 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처음 수학여행을 가기로 한 것도 솔직히 〇〇이와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은 나의 욕심도 많았다. 남들에게 자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테니. 지금 한 아이가 나로 인해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마움에 표시했다. 단순히 업무적으로 책임을 다한 것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마음으로 이해하는 다름, 행복으로 실천하는 동행
날이 꽤 춥다. 학생들이 동복을 입고 다닌다. 담당 복무 선생님께서 나에게 ‘발달장애인 인식개선 공모전’ 이란게 있다고 말해주셨다. 처음 듣자마자 나는 흥미를 보였다.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기도 했고 평소에 발달장애인 분야에 관심 있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틈틈이 고민하는 도중 나보고 뭘 하고 있냐는 〇〇이의 질문에 표어를 짓고 있다고 했다. 이때 〇〇이가 생각하는 장애인들의 입장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내린 요지는 이러했다. 장애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물론 비장애인들과 다르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도 부정하면 안 된다는 것. 대신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 같이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나는 시야를 좀더 넓혀 우리 사회복무요원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복무요원은 어쩌다 몇몇 이들에게 어디가 아파서 온 사람들, 남들 고생하는데 혼자 편하게 군생활 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이유가 있어 온 것이고 각자 나름의 역할을 부여받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현역들과 우리 사회복무요원들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각자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누가 편했냐 따질 것이 아니라 각자 필요한 일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름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서로가 행복할 것이다. 위의 문구는 작년 12월, 제주 발달장애인 지원센터에서 추진했던 ‘발달장애인 인식개선 공모전’에 제출했던 표어다. 운이 좋아 그때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미 시상식도 하였고 그냥 상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저 표어를 생각하기까지 사회복무요원 기간이, 다시 말해 〇〇이와 지냈던 시간이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정말 사회복무요원으로 지내지 못했더라면, 〇〇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말이다.
꿈나라, 별나라
어느덧 벚꽃이 폈을 때 왔던 나는, 다시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모두 보고 나서 5월을 맞이하였다. 5월은 학교에서도 일정이 꽤 많은 달이다. 〇〇이도 3학년이 되고 나서 첫 중간고사를 잘 마무리하였다. 시험도 끝난지라 아이들도 많이 들떠 있었다. 나와 〇〇이는 평소와 같이 지내고 있었다. ‘얘들아 이거 15일까지 적어서 모아줘’. 어느 날 학생자치회에서 선생님들께 롤링페이퍼를 적으라며 큰 종이를 던져두고 갔다. 알고 보니 곧 스승의날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5월 15일 스승의날은 중요한 행사이다. 전 교사와 행정실 선생님들까지 불러들여 전교생들과 함께 스승의날을 축하한다.
스승의날 당일에 우리는 작년처럼 체육관에 모여 미리 카네이션 전달 연습도 하고 준비를 했다. ‘솔쌤도 저기 가셔야 되는거 아니에요?’ 선생님들이 앉을 수 있도록 마련하는 자리를 가리키며 우리 반 애들이 말한다. 내가 무슨…. 그럼에도 작년 A4용지에 아이들이 적어준 롤링페이퍼 하나를 받았는데도 그날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스승의날 행사가 시작되고 호명하는 선생님들이 한 분씩 앞으로 나가서 상을 받는다. 이번에 자치회에서 특별히 학생들이 선생님들께 상을 주는 참신한 시간을 기획했다. ‘〇〇〇선생님, 얼굴은 20대 상. 〇〇〇선생님, 더는 없다 요요현상.’ 재치있는 상 이름에 모두가 즐거워 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갑자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권솔 선생님……. 우리 곁에 항상.’ 나에게도 상을 줄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 못 했기 때문에 많이 당황해서 쭈뼛쭈뼛 나가는 모습. 그래도 기분은 좋아서 미소가 흘러넘치는 나의 입가. 마지막에 카네이션을 달아 줄 때는 눈가에 눈물이 핑……. 뒷얘기를 들어보니 학생자치회에서도 그리고 자치회담당 선생님께서도 당연히 나도 받아야 할 상이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간 〇〇이를 위해 보여줬던 당당한 모습과 쉽지는 않은 일을 하면서 항상 밝은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〇〇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학교에서 같이 다니는 모습, 예를 들어 점심을 먹고 꾸준히 운동장을 돌고, 록 밴드 동아리에 가서 연습하고, 체육대회 이인삼각에 출전하고, 학교에 작은 이벤트들이 있을 때마다 신청하는 등 그런 모습들이 다른 학생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노력 그리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려는 끈기. 이것들만큼은 내가 〇〇이한테 배우고 싶은 점이다.
‘선생님 드릴 게 있어요’ 스승의날 행사가 끝나고 〇〇이가 말했다. 그것은 편지였다. 한눈에 봐도 과하지 않게 꾸밈없는 〇〇이의 모습 그로 편지가 동봉되어있었다. 다음은 편지 내용의 일부이다.
“안녕하세요 저 〇〇이에요. 선생님과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어색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가 돼버렸어요.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수학여행이 한 몫 한것 같네요. 항상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 주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감사합니다. 때로는 부딪히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했지만, 사랑이라는 두 글자 단어의 진심은 바뀌지 않을것 같아요. 학교를 함께 다니며 있었던 모든 시간이 소중해요. 가끔 수학여행이 아니라 단둘만의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요. 잔나비의 ‘꿈나라, 별나라’에 나오는 가사 중 ‘바다 건너 꿈에서만 그리던 별보다 따뜻하다는’ 꿈나라로 같이 한 번 다녀오지 않으실래요? 선생님의 답을 기대하며 편지를 마칠게요. 건강하게 남은 1년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보내요. 쌤 사랑해요.”
편지를 본 나는 자신 있게 답했다. ‘꿈나라로 얼마든지 가자, 나도 사랑한다 〇〇아’
권대솔(제주시교육지원청 귀일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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