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수기 ‘마음을 통(通)하다’(입선)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의 가치, 사회복무요원으로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다
지금은 벌써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신체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판정이 나왔을 때의 감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때의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쌍둥이 동생도 장교로 멋지게 군 생활을 마쳤으며, 저 역시도 장교를 꿈꿨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멍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저는 2018년 2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복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소유한 ‘25명의 새로운 친구’를 만나다.
훈련소에서 까까머리로 나와 바로 그 다음날, 송림종합사회복지관으로 출근하였습니다. 저와 같은 사회복무요원들이 4명이 있었고, 업무분담이 바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맡게 된 역할은 복지관 안에 ‘장애인 직업재활실’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장애인 직업재활실’은 정신지체 장애인분들이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생활하시고 단순 조립과 같은 작업을 하시는 공간입니다. 제가 처음 장애인 직업재활실에 들어오자, 갑자기 장애인 이용자분들의 환호성을 들려왔습니다. ‘잘생겼다!’, ‘누구세요’, ‘선생님이에요?’ 등 화끈한 리액션들이 쏟아졌습니다. 나는 처음 경험해보는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워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일단 만나자마자 저보고 잘생겼다고 해주시니 내심 기분이 좋았습니다. 잘생겼다는 말은 제게는 참 듣기 어려운 말인데 말이죠. 이렇게 저는 하루만에 25명의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들의 선생님?
송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저는 장애인 직업재활실의 선생님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그 곳에 계신 25명의 성인 장애인 이용자분들의 생활을 돕는 것이 제 주된 업무였습니다. 25명의 이용자분들은 20부터 40까지 나이가 다양했습니다. 일단 그들은 저보다 나이가 대부분 많고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분들도 계셨기 때문에 앞으로 직업재활실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업재활실의 문화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이용자분들과 제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용자 분들 중에는 저와 눈 마주치는 것조차도 쑥쓰러워 하는 분도 계셨고 아는 척 안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우선 그 분들의 이름을 빠르게 외웠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드렸습니다. ‘○○씨~ 오늘 기분좋아요?’, ‘○○씨~ 훌륭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비로소 저와 시간 보내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용자분들은 저를 늘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큰 사고 없이 지냈습니다.
그들의 선생님보다는 ‘친구’가 되기까지
그분들과 저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볼링게임, 댄스교실, 요리활동 등 이용자분들과 저는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했습니다. 초기에는 저는 제가 그들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 오해였고 오만이었습니다. 이미 저는 그들과 생활을 함께하는 하나의 공동체, 가족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제가 그 분들이 하기 힘든 작업활동을 도와드리고, 싸움이 일어날 때 화해를 유도하면서 선생님 역할을 수행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직업재활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그 분들도 제 이런 모습에 고맙다며 커피를 타주시기도 하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눈빛만 봐도 기분이 좋은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대강 맞출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사실 선생님이 아닙니다. 적어도 직업재활실이라는 공간에서 저는 그들의 ‘친구’였던 것입니다. 저와 그들은 이렇게 마음을 서로 ‘통(通)’ 하게 됩니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은 평상시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었던 저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였으니, 제 인생에 엄청난 터닝 포인트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피아노교실로!
직업재활실에서 근무하던 도중에 신체등급판정 사유인 ‘목디스크’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무거운 짐을 들기에는 무리가 와서 직업재활실 관리업무를 그만두고, 결국 기관4층에 있는 피아노교실 보조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즐거울 것이 라고만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활발했습니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매일 관리하고 학습시키는 일은 또 다른 영역의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늘 하시던 ‘쉬운 일은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은 진리였습니다. 하지만 지칠 때,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마주보고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밝은 미소가 저에게 큰 에너지를 주어 하루하루가 행복해져 갔습니다. 간단한 청소를 할 때도 아이들이 더 깨끗한 환경에서 학습하고 웃고 뛰노는 모습을 상상하니 업무가 힘들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의 이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업재활실과 피아노실에서의 업무 둘 다 제게는 남들은 모르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얻었고, 일상을 가치있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복무를 하면서 제가 누군가에게 준 것보다 제가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음을 이제야 체감합니다.
갑작스런 제주로의 이사와 근무지변경 : 봉개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하다
송림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던 중에 저희 가족은 제주도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2019년 5월부터 제주도에 소재한 ‘봉개지역아동센터’에서 약 8개월 동안 남은 복무를 제주도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주소지 이전으로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이 찾아왔지만, 제주병무청 공무원 분들의 도움으로 문제없이 제주에서 복무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현재도 봉개지역아동센터에서 성실히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참 운좋게도 봉개 지역아동센터는 분위기도 저랑 잘 맞고 같이 근무하시는 센터장님과 복지사 선생님들이 친절하셨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두 번째 생활이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 아동들과 친해지기
저는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됩니다. 저는 제가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아이들과의 대화에는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 녹아있습니다. 특별한 얘기를 아이들과 나누는 것은 아니어도 저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아이들도 제주도의 공기처럼 맑았습니다. 아이들도 저를 이제는 ‘선생님, 선생님’하며 잘 따라주니 기특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남은 6개월 정도의 시간동안 센터의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응, 선생님이랑 공부할까
봉개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은 기초수급자가정, 다문화가정, 한 부모/재혼 가정의 자녀들입니다. 가정 환경으로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잠깐 보면 모르지만, 오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 마음의 상처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점은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가 적어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알게 되니 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5월말에 센터장님께서 중학교 1학년인 남자아이를 1:1로 가르쳐줄 수 있냐고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그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저의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멋지게 장식할 보람된 일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월부터 ○○이와 월화수목금 매일매일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학생은 가정의 환경변화와 넉넉지 않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있던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아이의 상황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아이는 기초학습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아서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가지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아이의 학습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영어는 abcd부터 가르쳐 주었고, 수학은 덧셈뺄셈부터 정확히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봉개아동센터에서 오전 10시 출근 오후 7시 퇴근이 원칙입니다. 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가르치고 싶어서 퇴근을 미루고, 아이와 저녁 8시까지 센터에 남아서 과외를 하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책상에 앉아있기도 버거워했지만 이제 조금씩 자기의 실력이 성장하는 모습에 자신감이 붙은 것 같습니다. 또 막상 공부를 시켜보니 아이는 공부를 그냥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안 해서 못한 것이었습니다. 아이 입에서 ‘나는 머리가 나빠서 안 돼.’, ‘공부 못 하겠어요’ 이러한 좌절감이 섞인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금 더 노력해서 이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전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전문 강사도 아니고, 아이에겐 27살 먹은 동네 형입니다. 공부란 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압니다. 적어도 아이가 공부할 기회를 잃어버려서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게끔 아이를 도우려 합니다.
끝으로
드디어 저도 소집해제의 해가 왔습니다. 막상 제가 1년 반 동안 사회 복무요원을 해보니, 대한민국 전국 곳곳에서 군 생활하시는 현역 군인 분들이 존경스러워집니다. 얼마나 추우시겠습니까. 또 얼마나 더우시겠습니까. 저는 솔직히 힘들다고 징징댈 때도 참 많습니다. 실내에서 선풍기 바람 쐬면서 조금 성가신 일 좀 처리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저에 비하면 전국 각지에서 고생하시는 용감한 병사님들에게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이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근무하시는 분들께도 응원을 보냅니다. 복무하면서 때로는 욕심쟁이처럼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보다 남들에게 나누어주고 희생할 때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지금 지치고 힘든 사회복무요원들이 있다면, 조금 더 힘을 내서 무사히 소집해제의 날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에 계신 군인, 사회복무요원님들의 희생과 노력이 대한민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자부심을 느끼고 전진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화이팅!
박재완(봉개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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