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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광주역 근무일지’(입선)

Written by. 김지우   입력 : 2019-11-19 오후 1: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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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첫 출근
 2월 18일 오전 6시, 첫 근무 날이다.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광주역으로 출발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면서 버스 안에서 본 창밖은 내게 냉랭한 바람만 보여주었다. 광주역 광장에 8시에 도착하여 담당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보았다. “오늘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되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라는 물음에 “광주역 역무실로 오시면 돼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긴장감과 두려움을 해소하려고 흡연구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담배 한 개비가 태워지며 다시 여러 생각을 한다. ‘잘 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다치면 안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담배가 줄어드는 만큼 시간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 광주역 역무실 문앞에 서서 다시 생각했다. ‘일단 부딪치고 보자!’ 8시40분 내 첫 출근 시간이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첫 한마디 “오늘부터 사회복무요원 근무하는데요.” 생각해보니 진짜 바보같이 보일법한 한마디였다. 당담관님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며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도 긴장감과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금은 소집해제를 한 내 선임이 출근을 해 내 앞에 앉았다. 꽤나 훈훈한 외모에 사회복무요원 제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게 첫 인상이었다. 대기 시간 동안 나는 선임과 서로 자기소개와 잡다한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 하는 중에 C조 과장님께서 오셔서 선임한데 말씀하셨다. 가서 인수인계를 잘 하라는 말과 함께 ‘곧 시간이니 열라’ 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리고 선임은 나를 데리고 타는 곳 출입문으로 향하면서 설명했다. 광주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출발시각 10분 전에 방송과 함께 타는 곳 출입문을 열고 도착열차는 도착방송과 동시에 열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9시12분, 나와 선임은 9시22분 열차 탑승방송을 내보내는 동시에 문을 열고 손님들이 올바른 열차를 타러 가시는지 지켜봤다.

 그리고 열차 출발시간이 다 되었을 때쯤 선임은 한 마디 덧붙였다. 열차가 출발하면 확인하고 출입구 앞에 있는 안내 간판의 번호를 바꾸면 된다고 한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지레 겁먹은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열차를 보내고 다시 대기하고 시간 맞춰 문을 열면서 다음 두 번째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열차 시간표가 바뀌었지만 바뀌기 전에는 15시01분 출발열차와 14시55분 도착열차의 시간이 겹치는 시간였다. 15시01분은 용산행 열차로 5번 홈에서 탑승하고 14시55분 열차는 3번 홈에서 손님이 내리신다. 15시01분 열차에 손님이 탑승하는 도중에 도착하는 열차라 많은 손님들이 착각하시고 다른 홈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빈번하여서 나와 선임은 지하도 3번홈의 에스컬레이터를 막아서고 안내하는 것이 두 번째 일이었다.

 처음에는 설마 그런 손님이 있으려나 했으나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착각을 하시고 올라가는 경우를 보고 이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15시01분 열차를 출발시키고 나와 선임은 다시 대기하며 다음 열차시간을 확인했다. 그렇게 6시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좋은 근무지에 배정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월21일 평소 같이 근무하던 중 B조 팀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광주역에서 근무하니 필요한 지식에 대해 교육을 해주신다고 하신다.

 지도를 보여주시더니 전국에 배치되어 있는 철도나 역의 위치를 보여주면서 어떠한 시스템으로 광주역이 돌아가는지를 알려주셨다. 그리고 역무실 밖으로 나가셔서 다른 부서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열차의 순번과 경로를 정하는 로컬관제실, 광주역의 모든 시설과 전기를 담당하는 시설처와 전기처, 열차의 수리 및 점검을 위한 차량 사업소같이 난생 처음 보는 광주역의 자세한 풍경이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의 중요성에 해 설명해 주시면서 무엇보다 안전에 유의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도 교육해 주신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그 다음날인 2월22일 금요일, 금요일은 다른 날보다 이용하는 고객수가 많은 날이다. 그렇기에 나는 평소보다 더욱 긴장감을 가지고 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지갑이 유실물로 들어왔다. 선임은 내게 유실물 처리 절차를 하나씩 알려 주기 시작했다. 먼저 유실물을 역 운영 시스템에 등록해 어떤 열차의 어디서 발견했는지 작성하고 등록하는 것이 1순위라고 한다.

 그 다음 유실물 주인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이는 상황마다 다르다고 한다. 먼저 코레일 회원이 등록되어 있는 경우 신분증을 가지고 연락처를 조회할 수 있다. 코레일 회원이 아닌 경우 지갑에 있는 신용카드 회사에 분실신고와 함께 광주역 역무실 연락처를 알려주면 신용카드 회사 쪽에서 유실물 주인에게 연락을 준다. 조금 복잡한 방식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다. 이렇게 연락이 닿은 경우 유실물 주인이 있는 가장 가까운 역으로 유실물을 보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반드시 역 운영 시스템에서 이 관처리와 함께 보내는 역에 연락해 어떤 유실물이 가는지 알려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설명과 함께 다시 과정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역의 시스템은 치밀하고 정확하며 서비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유실물을 처리하고 다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 과장님께서 휠체어 리프트가 필요하신 손님이 계시다며 가서 안내해 주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휠체어 리프트는 열차의 단차로 인해 휠체어가 올라가지 못하는 부분을 리프트로 올려 열차에 싣거나 내리는 일이다. 처음 리프트를 봤을 때는 정말 중형 냉장고 한 대가 눕혀져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열차의 장애인 칸에 입구를 맞추고 휠체어를 엘리베이터처럼 옮기는 방식이었다. 나름의 경험과 요령이 필요한 일이라 지금도 어렵지만 꽤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하루 하루 근무를 해나가다가 2월27일 2월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 B조 팀장님께서 박스들을 가리키며 챙겨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박스들을 챙기고 따라간 곳은 송정역과 광주역을 오가는 셔틀열차 홈이었다. 팀장님께서는 매달 말일 쯤 잡지를 새로 교체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하시면서 제한시간은 많아야 15분이라 하셨다. 당황했었다. 3명이서 70석 가까이 되는 좌석에 일일이 잡지를 꽂아야 한다니. 정말 정신없이 기계처럼 꽂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한 달에 한번이니 다행이네’ 정말 모든 생각을 멈추고 일에만 집중하니 15분 내로 모든 잡지를 교체했다. 아직도 생각하면 힘든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3월 어느 날, 근무하던 중에 담당관님이 오셔서 종이 한 장과 함께 전광판에 글자를 적는 일을 주셨다. 난 선임을 따라가 방송 제어실에 있는 전광판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꽤 흥미있는 작업이었다. 내가 작성한대로 전광판에 글씨가 나오고 색과 효과도 다르게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전광판 작업을 마치고 표출되는 상태를 확인해 사진을 찍어 담당관님께 보내고 바로 다음 일이 들어왔다.

 광주역은 회의실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 가장 큰 무등산실, 중소 규모 정도의 서석대실과 입석대실이 있는데 회의실 임대가 잡히면 시작 1시간 전에 안내표지를 부착하고 회의실에 필요한 준비를 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나도 광주에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서비스라 꽤 놀랐다. 이런 서비스도 있나? 라는 생각과 함께 서비스가 많은 역이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4월23일 날씨가 조금 우중충한 날 광주역에 유치원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위해 찾아왔다. 정말 어린 아이들이 기차표를 끊어주는 체험을 하고 나는 그 기차표에 광주역이 새겨진 2개의 도장 중 하나를 찍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도장을 찍어 줄지를 물어보고 찍어주니 순수하게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에 귀여웠다. 어린 사촌동생이 있다보니 수월하게 일을 해줄 수 있어 꽤 보람찬 일이었다.

 160만원 사건
 내가 기억하는 일 중 가장 큰 사건일 것이다. 근무하는 중에 어떤 손님이 역무실로 와서 내게 입구 쪽에 지갑이 떨어져 있다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주웠다고 가져다 주면 될 일을 왜 역무실까지 와서 말하는 건지라는 생각과 함께 지갑을 주우러 입구 쪽으로 갔을 때 나는 그 손님의 심정을 이해했다. 장지갑이 활짝 펼쳐저 떨어져 있는데 문제는 그 안에 보이는 노란색 종이 뭉치를 보았을 때는 순간 내 눈이 잘못된 것이길 빌 정도였다.

 그렇게 놀란 마음과 함께 지갑을 가지고 역무실에 왔지만 점심시간이라 나 혼자 근무를 설 때였다. 마침 계시던 담당관님께 가져가 지갑을 주웠는데 지갑 내용물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며 지갑을 드렸다. 담당관님도 놀라시며 일단 돈을 세어서 확인해 보자고 했다. 그 결과 정확히 160만4천원, 지갑에 있기에는 너무나 큰 현금이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코레일 회원도 아니시고 신용카드도 없었다. 신분증 한 개와 몇 장의 명함뿐이었다. 나와 담당관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명함에 적혀져 있는 연락처에 연락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갑 주인의 사위라는 분께 연락이 닿아 겨우겨우 연락할 수 있었다. 잠시 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시더니 지갑을 찾으러 왔다고 하셨다.

 담당관님은 지갑을 전해 드리면서 물어보셨다. 이 많은 현금을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보이스피싱에 당해 현금을 인출해 가지고 있던 중에 잃어버릴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 큰돈은 할아버지의 수술비였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연신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사례금 이야기도 나왔지만 난 절대로 주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그냥 당연한 일을 한 것 뿐 딱히 사례를 바란 것도 아니니 말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면서도 보람찬 일이라 기억한다.

김지우(한국철도공사 광주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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