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수기 ‘항상 그 곳에 있어주는 사람’(입선)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입대하다.
나는 꽤 늦은 나이까지 공부를 했다. 입대 나이 제한에 맞춰 겨우 박사 졸업장은 따냈지만 그 안에 취직하진 못했다. 졸업 후 훈련소의 소집 통지서를 받았을 때, 나는 차라리 어설픈 곳에 자리를 얻어 일을 하느니 최대한 빨리 끝내고 경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2년간 내가 해야 할 일이 가치있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었다.
김해 은혜학교. 소집 전에 통지서에 적힌 것을 보고 찾아가 보았다. 첫 눈에 학교의 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도심에서 차로 십 여분 논길을 달려 도착한, 벌판위에 홀로 우뚝 선 건물 하나. 도심에서 운전해 나와야 했던 그 거리만큼이나 마음에서도 먼 곳에 그들의 사회가 존재함을 학교를 둘러싼 넓은 벌판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어째서 내가 그 동안 살면서 내 주변에 장애인 지인이 한 명도 없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군처럼 사회에서 분리된 곳으로 가는 점이 군대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게 내가 가졌던 첫인상이었다.
아이들을 만나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1반에 배치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 아이들은 귀엽기만 할 것이고 몸집이 작으니 일이 쉬울 것이라 생각한 내 예상은 개학 첫 날부터 빗나갔다. 처음 만난 날 아이들은 내게 가공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아이는 교실 바닥에 오줌을 싸버렸고 치우고 옷을 갈아입히자 한 번 더 싸버렸다. 놀래서 정신없이 닦고 치우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쉬지 않고 교실 안을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물건을 어지르고 책을 찢고 다녔다. 나는 하필이면 내가 가장 힘든 반에 배치되었다고 확신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이라는 아이를 주로 맡아주면 된다고 하셨다. ○○이는 교실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아이였다. 마치 갓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어떤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고 간단한 지시의 이해와 수행도 어려웠다. 교실 안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집어 뜯고 입에 넣어 씹었다. 급식소를 갈 때나 수업 시간 등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때는 휠체어에 앉혀야 하는데 안 앉으려고 해 처음엔 나와 담임선생님 두 명으로는 역부족이라 옆 반 선생님까지 동원하여, 어른 세 명이 진 땀을 빼며 앉혔다. 내 하루 업무는 그렇게 저항하는 ○○이를 휠체어에 앉히는 일로 시작해서, 밥을 떠먹여주고 양치를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 주는 등의 일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현역병들의 군생활도 처음에 힘들지만 이등병이 일병이 되고 병장이 되듯, 사회복무요원으로 아이들을 보는 일도 반복하고 익숙해지며 점차 적응이 되었다. 휠체어에 앉히는 데에 요령이 생겼고 밥 떠먹이는 속도가 빨라졌으며 양치시키는 기술도 늘었다. 이 로 소집해제일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통학버스 사건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우리 반 아이인 ○○이가 하교 시간 버스를 타지 않기 시작했다. 평소 거리낌없이 타던 버스를 절대 타지 않겠다며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러냐고 다그쳐도 답은 없고, 평소 좋아하는 초콜릿을 주며 타도록 유도해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문제는 2주째 이어졌고 나중엔 교실에서부터 몸부림쳐서 아이를 안아들고 버스까지 가야했다. 점차 더 힘이 들고 지쳐갈수록 내 마음속에도 짜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속되었고 더 심해지기만 했다.
담임선생님은 달랐다. 분명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다며 유심히 관찰하셨다. 그리고 3주째, 스쿨버스 입구에 조그맣게 붙여져 있던 해골모양과 호박 모양 할로윈 스티커를 떼어 내셨다. 그 다음 날, 아이는 마법에 걸린 듯 버스에 스스로 걸어 올라갔다. 버스 입구에 아이들을 위해 장식으로 붙인 스티커를 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가 겁을 먹었던 것이다. 스티커가 없어지자 아이는 처음엔 불안해 하면서도 혼자 걸어 올라갔고 며칠 후에는 예전처럼 씩씩하게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목격하면서 나는 문제 앞에서 아이를 혼내거나 먹는 것으로 유혹해서 해결하는 방법 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던 내 자신이 아쉬웠다. 그때, 나는 학교를 단지 낮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보육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내 자세에 대해 반성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항상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해오고 있었음을 매일 보고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 탑승 소동에 대처하는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또 크고 작은 그런 비슷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비슷한 방식으로 대처해 나가는 특수학교 교실을 관찰하면서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위대함을 느꼈다.
내가 대하는 어린 아이 한 명이 사실 이해하기에는 얼마나 깊은 세계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소집 후 갔던 교육청의 연수에서 강사는 우리에게 ‘One caring adult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진정으로 이해해 주고 지지해주는 단 한명의 어른만 있으면 그 아이는 바르게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가정환경이 불우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라도, 그 아이의 잘못을 다그치기만 하지 않고 감싸주고 이해해주며 소통해주는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아이는 바른 길로 나올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 ‘항상 그 곳에 서 있어 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 달라고 강사는 당부했다.
○○이의 버스탑승 소동은 내게 지금의 학교생활이 갖는 의미가 소집 해제일을 기다리며 견뎌야 하는 생활 대신, 내 손에서 공교육이 전달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는 보람찬 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전공자도 아닌 내게 그런 교육을 해낼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어설프게 알고 아이를 다그치거나 먹을 것을 주어서 아이들의 교육에 방해가 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하는 나의 모든 조그만 행동들에 있어서 어떻게 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 담임선생님께 물어보고 상담하기 시작했다.
목표가 생기다.
여러 가지를 묻다가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특수교육에는 IEP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개별화 교육, 가지고 있는 장애의 정도가 극명히 차이나는 특수학교 교실에는 당연 교육의 목표 또한 아이마다 다 다르게 잡혀 있다는 것. 학교의 어떤 아이들은 직업 교육을 받고 취직하여 경제적 자립을 하도록 하는 게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교육이지만, 어떤 아이들에겐 20살까지 집안에 수발을 드는 사람이 없이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자립하게 하는 것이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교육이며, 또 어떤 아이들에겐 어떤 방식으로든 대소변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표현 하나만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12년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교육이라는 것. 아이에게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교육 과정이 정하는 통합적인 목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가 전담하도록 주어진 ○○이에게 나와 같이 있는 1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내 찾아낸 답은 착석 교육이었다. “앉아주세요”라는 말에 자리에 앉을 줄 아는 한 가지만 가능해진다면 ○○이는 매일 아침 강제로 휠체어에 앉혀질 필요가 없어지고 담임 선생님이 수업을 해주실 수도 있으며 아침 산책이나 소풍 등 학교 활동에 다른 아이들과 같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조언을 구하니 ○○이가 앉아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조언을 얻었다.
교육 시작 첫째 날, 5분 착석 교육을 함께 하였다. 말이 착석이지 아이는 앉아 있지 않으려 온 힘으로 몸부림을 쳤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려는 나와 5분간의 끊임없는 몸싸움이었다. 그 다음 날도 나의 “앉아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다시 의자 위의 몸싸움이 반복됐고 무한한 체력을 가진 아이는 10분간 쉬지 않고 몸부림을 쳤다. 1년 계획으로 잡았으니 그 정도는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1주일 만에 엄청난 성과가 있었다. 1주일째 되던 날 아이는 10초 정도 지쳐서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바로 다음날 10초는 10분이 되었고 그 다음날 10분은 1시간이 되었다. 2주 만에 ○○이는 앉아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아이가 되었고 4주차에 ○○이는 앉아서 수업을 듣는 아이가 되었다. 13주차인 지금 ○○이의 휠체어는 교실 한 구석에 두 달 넘게 쓰이지 않은 채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나를 배우게 한 사회복무
교육기본법은 18조에서 국가가 장애로 인한 특별한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자를 위해 그러한 교육을 제공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 학생에게 그런 특별한 교육적 배려를 하기 위해 나는 우리 교실에 보조교사로 배치되었다.
이제는 확신한다. 군에서 나라를 지키는 일 대신 내게 주어진 이 일이 나라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과, 한 주 한 주 분명하게 발전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드는 경이로움은 나를 변화시키고 더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특권이라는 것을.
노신영(김해 은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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