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수기 ‘밝은 세상에 내딛는 작은 첫발’(입선)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어둠속에 버려진 아이
한껏 뭉친 지우개 가루가 뒤에서 날아온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귀를 스친다. 옛날 같으면 울음을 터뜨릴 법도 하지만 아이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이미 여러 번 울어봤고, 울 때마다 그들은 더 심해질 뿐 절로 그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적응을 어려워하는 이 아이는 이런 순간이 낯설지 않았다. 이전에는 한 친구에게 “You’re crazy.”라는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분명히 심한 욕이라고 생각했던 그 말은 외국에서까지 적용되지는 않았고, 졸지에 나는 별것도 아닌 것에 우는 이상한 아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매우 혼란스러웠다. 친구들의 표정은 점점 웃음에서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때마다 항상 ‘한국에 돌아가면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간 아이는 그곳에서도 무리에서 벗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독과 외로움을 항상 지니고 다니던 외로운 아이는 사회복무요원이라는 특별한 시기를 통해 희망을 마음에 품고 다니는 밝은 청년이 되었다.
깜깜한 새벽
나는 어린 시절의 일부를 호주에서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년간 이었는데, 국제학교가 아닌 전교에 아시아인이 3명 밖에 없는 일반사립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이었다. 어린 나이에 낯선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상당히 두렵고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경험했던 외로움이나 고독은 쉽게 떨쳐내기 어려웠다. 어둠 속에 있던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니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호주에서 배웠던 확고한 자기표현과 자신감은 한국에서는 단순한 ‘나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결국 한국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로 혼자가 되었다. 이때 생긴 무기력함은 나를 고등학교 때까지 괴롭혔고, 굉장히 외로운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내가 목표로 잡았던 단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대학교에 입학한다면 나는 지난 시절의 무기력함을 단번에 날려줄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더 이상 무리에서 벗어난 ‘이방인’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뜻깊은 경험을 하는 ‘청춘’의 시기, 20대를 보내고 싶었다. 설렘으로 가득찼던 신입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쓴 잔을 삼켜야 했다.
대학교 역시도 중・고등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던 아이가 갑자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기 위해 다가왔고, 나는 결국 기숙사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밥을 거르는 것은 습관이 되었으며, 룸메이트에게 조차도 말 한마디를 하지않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를 찾고자 나갔던 대학 생활에서 나는 또다시 나만의 공간에서 몸을 웅크렸다. 기회가 닿아 나는 이 절망에서 도망치듯이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처음으로 근무지에 배치되었을 때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대충대충, 농땡이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었으며 책임감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어진 일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항상 힘에 부치고 나에게만 너무나도 많은 일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또한 직원들이 시키는 일이 나의 역할에 맞는지 아닌지를 하나하나 따지며 사회복무요원 규정을 여러 번 읽어보기도 하였다.
이용인이 나에게 뭔가를 물어봐도 답을 회피하는 일이 잦았다. 이렇다보니 점점 사람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같이 일하는 사회복무요원들과도 최대한 교류를 피했다. 친해지려는 이유가 결국 직원들처럼 나에게 일을 더 시키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기 때문이다.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나는 이전의 내 인생처럼 자신 스스로를 고립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나는 예전처럼 방에 들어가 쓰러지듯이 침대에 몸을 맡겼다. 핸드폰 화면만이 항상 켜져 있는 상태로 잠드는 생활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나는, 망가져 있었다.
어둠속이라도 별들을 벗 삼아
이런 나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만난 사회복무요원들은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어차피 나는 안될 거라는 생각, 친해지면 상처받는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나임에도 그들은 꾸준히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도 자주 찾아와서 말을 걸어주었다. 그들은 그렇게 나와 꾸준히 시간을 보내고, 일도 함께하며 나도 점점 마음을 열게 되었다.
하루는 다 같이 회식을 하며 근무지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솔직히 회식 자체가 너무나도 싫었고, ‘여기서 뭐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할까’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한 사회복무요원은 자신의 게임만 하던 과거를 진솔하게 말해 주었다. 목표 없이 그저 온종일 컴퓨터 앞에 밝은 빛만 쳐다보며 게임을 했었다고 한다. 하루에 10시간은 그에게는 기본이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 생활 중에 우연히 읽게 된 책을 계기로 과거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 이 사회복무요원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 중이고, 반드시 성공할 거라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느꼈던 경험들을 하나둘씩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인생이나 인간관계 같은 뜻깊은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어렸을 때의 해외생활부터 시작한 내 과거 이야기를 울음 섞인 목소리로 토해냈다. 형들은 말없이 햇빛과 같은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위로해주었고, 나는 확실히 위로를 받았다. 인생을 고독 속에서 살던 나에게 형들은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점점 같이 일하는 형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 형은 체육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학원에서 공부하다가 오게 되었는데,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함께 지내다 보니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이 형은 몸이 허약한 나를 위해 근무지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가르쳐 주었고, 식단까지 관리해 주었다. 너무나 고마운데 무엇을 해줄지 몰라 고민하는 나에게 형은 당연하다는 듯이 “넌 영어를 진짜 잘하잖아. 형한테 영어를 가르쳐 줄래?”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 보았다. 나는 살면서 누구에게 도움이 됐던 기억이 없었다. 도움은 커녕 말도 하지 않다 보니 나에게도 남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점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 형의 그 말은 나를 이 사회의 필요한 사람 중 하나라고 인정해 주었다.
그 말에 깊은 감동을 한 나는 그날로부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점점 표정이 밝아져 가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밝은 부분을 내 눈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나는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올라오는 아침노을
마음이 열리고 나서 나는 자연스럽게 직원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은 점점 더 여유로워져 갔고, 곧 직원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우리 근무지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 접수 기간이 되어서 거의 2천건 가까이 되는 접수를 받아야 했다. 긴 시간 동안 오시는 많은 사람에게 똑같은 안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사람까지 친절하게 응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항상 이용인들의 수많은 민원, 요청에 지칠 법해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생각났다. 이후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들의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을 위해서. 힘든 상황에서도 이용인들이 건네는 ‘감사합니다.’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내게는 작게만 느껴졌던 이유에 의미를 새기고 이를 원동력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뿌듯함과 성취감이라는 새로운 감정과 마주쳤다. 이전에는 나의 노력이 큰 보상으로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보상이 오지 않는 부분의 경우에는 화를 내고 실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직원들을 보고 나서 눈을 돌리니, 내 주위에 많은 뿌듯함과 성취감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미 수많은 보상을 받고 있었던 셈이었다.
하루는 나이가 있으신 한 민원인께서 나에게 갑자기 사회복무요원의 의무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셨다. 공부와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어떠한 일에도 착실히 하라는 말을 한 시간 동안 듣고 나니 상당히 지쳤다. 나의 표정을 본 한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한 사람의 말이 너에게는 와 닿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그 안에는 그분이 살아온 시간 동안의 경험과 지혜가 묻어나오기 마련이야.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가치 없는 말이라는 건 없는 거라고 생각해.” 이 말을 듣고 난 뒤에 나는 말 그대로 크게 충격 받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나이 22살에 아무리 똑똑하다고 한들 과연 반세기 이상을 겪어 오신 분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한껏 세게 치고 지나갔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에 임하게 되니 나 역시도 책임감과 친절함을 무기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변화는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온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방구석에서 뛰쳐나와 넓고 밝은 세계를 맛보았다. 이전보다 달라진 나를 보며 사람들은 놀라워하고는 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놀랍다. 근무가 끝나면 근무지 안에 있는 헬스장에서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을 하고, 집에서는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현재 컴퓨터활용능력 1급 시험에 합격했고, 토익스피킹 시험과 토플시험을 꾸준히 공부중이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에 도전 중이다. 전시회나 박람회, 소모임에 관심이 커져 밖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고,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워졌다. 화합과 교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도망치듯이 시작하게 된 사회복무요원이지만, 이 값진 시간을 통해 나의 ‘젊음’에서 따뜻하고 힘찬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는 청춘들이여, 당신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흑백으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하늘 높이 당신의 ‘붓’을 들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자신만의 색으로 색칠해 나가길 바란다. 밝고 화려한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박준홍(나래울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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