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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지울 수 없는 아픔’(입선)

Written by. 홍윤성   입력 : 2019-11-20 오후 3: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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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심장마비가 온 어르신에게 심폐소생술 시행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일이다. 사회복무를 시작하기 전에도 그러했다. 항상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기 위해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성격이 급했던 나에게 사회복무는 시의 적절하게 삶의 과속방지턱이 되어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회복무를 단순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써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표로 삼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내 자신이 어떤 부분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킥복싱 대회에 출전하였다가 왼쪽 눈을 크게 다쳐 4급 판정을 받았지만, 대학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철인 3종 경기에 나갈 만큼 체력이 좋아 여러 작업을 수월히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어 서류작업에 능통했다. 이런 점들은 분명 사회복무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나만의 근무 철칙을 세웠다. 누구보다 성실히 복무하고,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시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복무 기간 동안 이런 철칙을 지키려 노력했다.

 내가 복무하는 노인 복지회관은 규모가 상당하고 진행하는 수업과 프로그램이 많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무료급식 봉사가 있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이런 날이면 여러 민원들이 들어오고,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그중 안전에 관련된 사고들은 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내가 근무하는 기관의 담당 주사님은 이곳에서 17년간을 근속하셨으며 그 동안의 경험과 연륜으로 여러 문제와 안전사고를 태연하게 해결하셨다. 옆에서 이런 문제 해결이나 신중함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고는 항상 예기치 않은 상황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날은 담당 주사님이 연가 중이었고, 같이 근무하던 사회복무요원은 교육으로 자리에 없었다. 사무실에는 나와 직원 한 분이 근무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수업에 필요한 서류작업을 하던 중, 컴퓨터 수업 도중에 한 어르신이 의식을 잃은 채로 바닥에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당장에 컴퓨터 수업 교실로 달려가 상황을 확인해 보니 어르신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누가 보아도 심각한 상황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 동안의 복무경험을 바탕으로 침착하려 노력했고, 이내 신중함을 되찾았다. 일단 옆에 있는 직원 분에게 1층 중앙에 있는 심폐제세동기를 빨리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혈액순환이 원활하도록 벨트를 풀고 양말을 벗겼다. 또한 옆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발과 손을 주물러 달라고 부탁했다.

 상의를 벗긴 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며 119 응급구조와 직접 통화했다.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노인복지회관의 위치를 정확히 전달했다. 사회복무 기간 동안 훈련소, 복무기본교육, 직무교육 3차례에 걸쳐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과 심폐소생술을 학습해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상하리만치 침착했지만 뇌리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치었다. 어르신 가슴팍의 서늘한 체온은 손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고, 혹시라도 내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도중에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나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지는 않을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혹은 심장마비가 아닌 다른 질환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것인데 내가 잘못 판단하여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렇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지 같은 생각도 들었다.

 어르신의 흉곽 가슴연골은 앞으로 돌출된 형태였다. 이런 형태는 내가 학습한 심폐소생술 모형의 흉곽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또한 노인의 경우 골도가 낮기 때문에 뼈가 약해 일반적인 성인을 대상으로 시행할 때보다 약한 힘으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도 갈비뼈가 심각하게 부러져 내부 장기를 다치게 할 위험이 있다. 여러 제약과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있었지만 어르신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심폐소생술을 계속 시행하였다. 점차 어르신의 맥박과 호흡이 일정해지고 의식이 회복될 기미가 보였다.

 직원 분이 심폐제세동기를 가져온 후 나는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전화상으로 119 응급구조원의 지시 하에 학습한 대로 심폐제세동기를 어르신의 몸에 부착했다. 심폐제세동기가 환자의 심전도를 분석해 이상을 감지하고 제세동 필요성을 알렸다. 제세동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작동했다. 작동 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응급구조원들이 도착했고, 어르신을 구급차에 싣는 것을 도와드리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후에는 어르신의 상태가 괜찮아지기만을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담당 주사님은 연가중임에도 연락을 받고 급히 노인복지회관으로 오셨다가, 어르신이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향하셨다. 어르신은 당일 자정 병원 중환자실에서 유명을 달리하셨다.

 이후에 많은 얘기를 들었다. 어르신이 이미 예전부터 심장에 지병을 앓고 계셨으며 불과 며칠 전에도 심정지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는 얘기, 어르신의 가족들이 기관의 담당 주사님을 통하여 나의 응급처치에 감사인사를 전한 얘기, 응급구조원의 지시에 신중히 조치를 취하여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는 얘기. 이 얘기들은 나의 책임을 덜어 줌과 동시에 오히려 나를 높여 주었다. 이 말들로 자기 위안하여 책임을 느낄 새도 없이 훌훌 털고 일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일은 여전히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나는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혹여 책임이 나에게 몰리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망설였다. 또한 어르신들이 많은 근무환경을 고려하여 심폐소생술을 정확히 숙지하려 했던 노력에는  실제 어르신을 대상으로 심폐 소생술을 행하는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것은 위선이었고 누구보다 내 자신에 의해 낱낱이 벗겨졌다. 실제 근무에서 심폐소생술을 할 상황을 맞닥뜨리자 예상치 못한 변수에 나의 심폐소생술은 시늉으로 그칠 뻔하였다.
 
 이 사고는 사회복무에 관한 나의 생각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는 사회복무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군복무에 비하여 굉장히 수월하며 사명감마저 결여되어 있다는 사회통념 속에 갇혀있다. 나 역시 사회복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이런 편견을 갖고 있었다. 사회복무를 삶의 과속방지턱 정도로 생각했고, 적당하게 천천히 쉬어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사회복무를 시작하고 피부로 느끼면서 이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았다. 복무 기간 동안 여러 사건사고를 마주했고 종종 나의 한계를 절감했고 여러 고충들로 인해 낙담했다. 특히 이 사고가 그러했다.
 
 사회복무는 과속방지턱이 아닌 다른 방향의 샛길이었다. 그 샛길은 여러 난관들로 가득한 고행길이었다. 잘 할 수 없었음에 자책하되 좌절하지 말아야 했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이것은 분명 힘든 길이며 막중한 사명감을 필요로 했다. 신체적 요건들로 군복무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사회에서는 건장한 성인 남성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충족감을 느꼈고 이것이 사명감의 바탕이 되었다.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과 그것에서 오는 성취감이 나를 지치지 않고 계속 정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길의 과정에서 나는 어르신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얻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복무요원들이 여러 상황들로 이런 아픔을 갖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자신의 복무에 대한 끝없는 성찰과 고뇌 끝에 얻어지는 훈장과도 같다. 이 아픔은 결코 지워지지 않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계속해서 사회를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 는 가치관을 정립하게 해주며,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쓰라리게 되살아나 나아갈 길을 알려줄 것이다. 이것은 곧 사회 복무요원의 위상을 드높이고 사회복무요원에 한 잘못된 사회통념을 타개하는 길임을 나는 안다.

홍윤성(서귀포시 노인복지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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