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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독립운동가, 독립의 불꽃 청년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

조국의 자주독립 위해 문학, 군사, 의학분야에서 헌신하고 청년기에 순국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3-01-31 오전 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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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다 청년 시기에 순국한 송몽규(1995년 애국장)·안창남(2001년 애국장)·김필순(1997년 애족장) 선생을 <2023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윤동주 시인의 사촌형인 송몽규 선생은 1917년 중국 용정에서 태어나 명동학교와 은진중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백범 김구 선생이 설립한 중국 남경의 학생훈련소에 입소했다. 

 송몽규 선생은 1938년 4월 윤동주와 함께 문학으로 민족계몽운동을 펼치기 위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 문과학생들의 자치조직인 문우회 잡지 ‘문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조선어 말살과 일본어 상용정책에 대한 항일운동의 방법으로 한글 시(詩)를 ‘문우’에 수록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에는 세계의 역사 및 문학을 연구하여 조선의 독립을 모색하기 위해 1942년 4월 교토제국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여 윤동주 등과 함께 자주독립을 위한 민족정신운동을 위해 노력했으며, 일제는 1943년 7월 ‘재교토조선인학생민족주의그룹사건’의 주동 인물로 선생과 윤동주를 함께 체포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문 소멸 유도 등 민족말살정책을 비판하고, 세계의 동정을 얻어 조국 독립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독립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1945년 3월 28세의 젊은 나이에 옥중 순국하였다.

 ▲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청년 시기에 순국한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을 2023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송몽규<좌), 김필수<우상>, 안창남<우하> 선생)ⓒkonas.net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난 안창남 선생은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간 뒤, 1920년 8월 오구리(小栗)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1921년 3월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8월 조선인 최초로 3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했다.

 1922년 6월, 2등 비행사 면허를 받은 선생은 금강호(金剛號, 비행기 이름)에 탑승하여, 그해 12월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고국방문 비행에 나섰다. 선생의 최초의 국내 비행은 조선 청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큰 울림을 주었다. 

 이후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1923년 7월 1등 비행사 면허를 7월에 취득했지만, 일본의 9월 관동(關東)대학살(관동대지진 때 일본 군경의 유언비어를 믿은 일본인들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이 살해된 사건)를 계기로 식민지 조선인의 울분을 느껴 항공 인재 양성에 관심을 갖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선생은 중국 국민혁명군의 반제국주의 반일(反日) 항쟁에 적극 참여했고, 독립군 비행사 양성도 모색했다.

 이후 1926년 여운형의 도움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고 있던 산서성 군벌 염석산軍 항공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1928년 신덕영 등과 함께 대한독립공명단(大韓獨立共鳴團)을 조직해 군자금을 모집하여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인 군대를 양성하여 국내 진공(進攻)작전을 구상하였다. 

 선생은 최양옥 등을 국내로 파견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지휘하고, 중국에서 조선인 비행사들의 항공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했으나, 1930년 4월 산서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 중 기체 고장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29세 젊은 나이에 산화했다. 

 1878년 황해도 출생의 김필순 선생은 1886년 배재학당에 입학했고, 1899년 제중원에 들어가 올리버 알 애비슨(1952, 독립장)의 통역 및 조수로서 제중원 교재로 사용되는 서양 의학서적을 번역할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선생은 1908년 세브란스병원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醫術開業認許狀)을 받았으며, 모교와 간호원양성소의 교수로 활동하며 후진양성에 앞장섰다. 특히 선생은 안창호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그의 활동을 지원했으며, 1908년 4월 안창호와 양기탁 등이 설립한 신민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작한 데라우치총독 암살 미수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의 검거를 피하고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1911년 12월 중국 만주로 망명했으며,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통화현에 정착하였다.

 통화현에서 근대적 시설을 갖춘 병원을 개원하여 독립운동가들과 이주한 조선인들을 치료했던 선생은 1916년 8월, 일제의 감시와 간섭이 날로 심해지자 통화현을 떠나 내몽고 치치하얼로 이주,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를 개원하고 의료활동에 종사하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쓰던 중 1919년 9월 순국했다.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김규식(1989, 대한민국장)의 처남이자 김순애(1977, 독립장)의 오빠이며,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1962, 독립장)의 삼촌으로서 독립운동 명문 집안의 일원이었다.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문학, 군사, 의학의 각각 분야에서 헌신하고 청년 시절 순국하신 독립유공자로,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송몽규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안창남 선생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 김필순 선생에게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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