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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42) 해병대 장단 사천강 전투 전승 기념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입력 : 2024-02-06 오전 9: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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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하면 연초 실향민들이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넓은 주차장 옆에는 관람객도 별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14년 11월 13일 세워진 ‘해병대 장단 사천강 전투 전승 기념비’다.

해병대의 장단, 사천강 지구 전투는 6.25전쟁 당시 불과 5천여 명의 병력으로 중공군 4만2천여 명의 4차에 걸친 공격을 격퇴하며, 휴전이 되기까지 495일 동안 파주와 문산 일대를 성공적으로 지킨 해병대의 대표적인 전투다.

기념비에는 당시 전사한 해병대 776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비 중앙에 495일간의 치열한 전투 장면을 도드라지게 새긴 양각화, 좌우에 '상승해병'과 '무적해병' 휘호, 비문과 헌시 등이 조각됐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 관광지 내 해병대 장단 사천강 전투 전승 기념비 전경ⓒkonas.net


해병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의해 이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1952년 북한에 두 번이나 수도 서울을 빼앗겼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청나라에 의해 한양을 두 번이나 떠나야 했던 인조대왕의 비애는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며 해병대에게 서부전선을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해병대는 이곳에서 1952년 3월 17일부터 이듬해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495일간,  장단, 사천강 지구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가 미 해병 제1사단과 함께 4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서부전선을 방어, 수도권을 사수한 전투다.

6.25전쟁 당시 해병대 절반가량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 바로 장단, 사천강 지역이다. 당시 해병대는 5,000여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중공군 4개 사단 4만2,000여 명과 맞섰다. 치열한 전투로 아군은 776명이 전사하고 3,214명이 부상했다.

 ▲해병대 장단 사천강 전투 전승 기념비 비문(좌), 사망자 명비(중), 헌시(우) ⓒkonas.net


해병대 제1전투단 부단장으로 장단, 사천강 지구 전투에 참여한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현재 도라산 전망대 자리인 지하 참호에서 495일간 밤을 지새우며 중공군에 맞서 개성-판문점-서울축선의 수도권 서북방을 지켜냈다’고 회고했다.

이 전투 전사자 중에는 김용호 소위가 있다. 김 소위는 4차 전투에서 75명의 병력으로 중공군을 맞아 전투를 벌여 중공군 115명을 격멸하는 전과도 올렸지만, 전투 후에 자신의 소대원 70여명이 전사한 것을 확인하고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유서에는 ‘부하를 많이 희생해 중대장을 뵐 면목이 없다며 대원들이 잠든 이 고지위에서 죽음을 택했다’고 적혔다. 이후 김 소위는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됐다.

해병대는 6.25전쟁 이후 1954년 제1여단이 창설되고 제1상륙사단으로 개편되며 파주 금촌 지역에 1959년까지 주둔하며 수도권 방어 임무를 수행한 역사도 가지고 있다. 해병대로서는 특별한 지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기념비 앞에서 머리를 숙여 호국영령들을 위한 묵념을 올려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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