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호국보훈기념] (52) 몽금포작전전승비

Written by. 인턴기자 김선영   입력 : 2026-08-11 오전 9:41:51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충무공 탄신 470년과 조국광복, 해군창설 70주년을 맞은 2015년 8월 23일, 몽금포작전에 참가한 특공대원들의 헌신적인 무공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해군본부에서는 ‘몽금포작전전승비’를 건립하였다. 

 ▲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1가 월미문화관 근처 ‘몽금포작전전승비’ 전경 ⓒkonas.net

 

건립비 3억원 전액이 국방부 예산으로 지원된 전승비는, 가로 13m, 세로 10m, 높이 7.4m로, 특공대원들이 JMS-302호를 타고 파도를 헤치며 몽금포항으로 진격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JMS-302호 갑판에서 37밀리 포를 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는 대원들의 모습과 적진을 가리키면서 전투 지휘를 하는 정장 소령 공정식의 모습을 표현했다.

 ▲ JMS-302호를 타고 전투에 임하는 특공대원들 ⓒkonas.net

 

몽금포 작전은 광복 직후 북한군이 아군 함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장 전용 보트를 납북하는 등 불법 도발을 일삼자 우리 해군이 1949년 8월 17일 보복응징을 위해 감행한 군사작전이다.

몽금포 작전 당시 해군은 이승만 대통령 승인 아래 PG-313(충무공), JMS-301(대전), JMS-302(통영), JMS-307(단천), JMS-309(대동강), YMS-503(광주) 등 함정 6척과 20명의 특공대원을 구성하여 1949년 8월 17일 새벽 6시 몽금포 해역에 도착하여 전투를 개시하였다. 

JMS-302는 빗발치는 적의 총탄을 무릅쓰고 항내로 돌진하여 부두에 계류 중인 경비정 4척을 격침 또는 대파시켰고, 끝까지 저항한 경비정 1척에 승선하여 육박전으로 북한군 장교 등 5명을 생포하고 경비정 1척을 나포하는 큰 전공을 거두었다. 북한군의 도발에 대한 '원점 타격' 보복이었던 셈이다.

전투 당시 해군 정보감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특공대를 지휘한 함명수 소령이 적진 한 가운데서 양쪽 다리에 부상을 당하자 JMS-302호(통영)의 정장 공정식 소령이 적진으로 돌진해 함 소령을 구해냈다. 공정식 소령과 함명수 소령은 해군사관학교 1기 동기생이다.  

 ▲ 몽금포 작전 개요도 ⓒkonas.net

 

해군 단독으로 감행한 몽금포작전은 한국군 최초의 대북 응징보복작전이었으나 당시 무쵸 주한미국대사가 '남한 부대의 38선 월경 위반사건'으로 규정하며 한국정부에 항의하고, 북한이 이 작전을 6·25전쟁의 도화선이라고 선전하여 우리 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고 외교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6·25전쟁이 북한에 의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불식됐다.

이에 몽금포 작전을 재평가할 분위기가 조성되고 해군은 2012년 9월 전승비 건립 사업에 착수해서 2015년 8월 23일 ‘몽금포작전전승비’를 건립하고, 정부는 몽금포 작전에 참가한 장병의 포상 건의도 받아들여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최상위 무공훈장인 태국무공훈장,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을지무공훈장, 김상길 예비역 소장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6.25전쟁 이전에도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했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의 역사를 접해 본다. 불리한 여건에서도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던 특공대원들의 영령 앞에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넋을 위로해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9.26 토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
한반도 안보 지형의 지각변동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첨단 ..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6·25 호국영웅 故한길진 하사 유해 신원 확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호국영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