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2) 검은 봄이 만개하는 날
(이 글은 '제16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 입니다.)
나는 낯선 이들과 함께 걸으며 처음으로 전우애를 배웠다. 청명한 하늘 아래, 걸음마다 드리우던 검은 그림자를 이끌고- 이 땅에 여전히 잠들어 있는 넋을 향해 다가간 6박 7일.
더는 누구도 낯설지 않다. 그 뜨겁고, 검고, 그러나 결코 어둡지만은 않던 여름의 기록을 여기 남긴다.
2026년 유월 말, 나는 선선한 여름 안에서 타들어갈 듯 뜨거운 봄을 보았다. 분명 달력은 한여름을 가리키는데, 살을 익힐 듯한 무더위는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대신 이상하게 물큰한 열기가 발밑에서부터 차올라, 마치 봄이 채 시들지 못하고 연소하는 것 같았다. 제16회 전국 대학생 국토대장정, 6박 7일의 여정을 나는 '검은 봄'으로 기억한다. 검다는 것은 1950년 끝나버린 한반도의 봄과 그 위에 서린 넋의 색이다. 수십 명의 청년들이 만든 긴 대열의 그림자가 웅장하게 느껴지던 나날들... 나는 3조의 조장으로서 깃발을 들고 이들과 함께했다. 그 7일을 되짚어본다.
6월 24일 수요일. 재향군인회 본회에서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례를 배우던 순간,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처음으로 묵념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침묵이 흐를 때, 슬쩍 눈을 뜨고 발밑에 드리운 내 그림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정수리를 짓누르는 햇볕이 유난히 뜨거웠다.
캠프 그리브스로 이동해 군번줄을 만들고 군복을 입어보았다. 다 함께 군복을 입고 서 있는데 마침 하늘에 노을이 번졌다. 조원들과 함께 저녁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리는 듯했다. 밤에 도착한 숙소는 과거 미군부대의 내무반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낯선 침상에 누워 첫날을 마감하며, 이곳을 스쳐 간 무수한 군인들의 흔적 위에 내가 잠시 몸을 누인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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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목요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25 공식 기념식에 참석했다. 제복을 갖춰 입고 자리한 참전용사들을 뵐 수 있었다. 그리고 참전용사들의 후손으로 구성된 에티오피아 강뉴합창단의 무대를 감상하며 응원봉과 작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손끝에서 펄럭이는 태극기의 감촉과 함께 벅차오르는 애국심을 느꼈다. 낯선 얼굴들이 부르는 익숙한 가락 앞에서, 이 노래가 저 영웅들께는 추억이기보다‘증언’으로 와 닿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공군 제8전투비행단으로 이동해 블랙이글스를 견학했다. 전투기가 만들어지는 정교한 공간을 통해 우리는 '평화를 지키는 기술'을 보았다. 저녁에 이어진 단장님의 강연 중, 나를 놀라게 한 말이 있었다. "평화와 전쟁은 반대말이 아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전쟁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인데, 왜 한 번도 두 단어가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누리는 자유가 긴장감 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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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금요일. 통일전망대로 이동해 해안철책길을 걸었다. 철조망 너머로 북한과 맞닿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같은 민족이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적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 땀 흘린 뒤 점심으로 먹은 북한식 국밥의 낯선 듯 익숙한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2사단 신교대대로 이동해 강동화 교수님의 안보교육을 들었다. 질문이 던져질 때 친구들이 망설임 없이 손을 들고 답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한국전쟁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절감했다. 이날 이후로 근대사를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연병장에서는 완전군장한 배낭을 직접 메어보고, 다양한 무기와 탱크 내부를 구경했다. 차갑고 무거운 총기를 손에 쥐니, 이 철붙이 하나에 목숨을 걸었을 군인들의 손이 얼마나 떨렸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새벽이 밝아오고 세면장에서 양치를 하는데 밖에서 구보를 하는 신병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난 정말 전선의 어귀에 와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기개 있는 목소리, 임무를 다하는 앳된 얼굴들... 시대를 불문하고 군인들의 하루가 얼마나 고된지 현장 속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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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토요일.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교육을 이어갔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 호수에 '파로호'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배경을 알게 되면서, 급박한 상황 속 전투 전략 하나하나에 얼마나 무거운 판단이 실려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날 점심은 쌈밥집에서 먹었는데, 많이 걸은 뒤라 그런지 평소엔 즐기지 않던 우렁과 쌈 채소의 향이 유난히 진하고 맛있게 느껴졌다. 반찬으로 나온 풋고추가 매운지 안 매운지 먹어보면 안다며, 조원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웃음이 가득한 식사였다.
미륵바위에서 붕어섬까지 꽤 오래 이동하며 다른 조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흐트러진 대열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흘렀다. 새파란 하늘 아래 녹음이 짙어가는 길과, 그 옆으로 보이는 투명한 하천, 붕어섬에 다다른 뒤 마신 아이스티까지 더해져 잠시 소풍을 온 듯 한 행복이 스몄다.
저녁에 도착한 아침햇살청소년수련원에서는 조별로 둘러앉아 게임을 하고 군가를 불렀다. 힘을 들여 제창해야 하는 노래가 생소했지만 군사학과 재영이가 곁에 있어 든든했다. 15년 전 초등학교에서 갔던 수련회에서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앞으로 두 밤을 자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낯설었던 친구들과 눈을 맞추는 게 쉬워지고 그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다. 젊고, 맑고, 평화로운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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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일요일. 두루미평화타운으로 이동해 제2땅굴과 평화전망대, 노동당사, 그리고 백마고지 전적비를 견학했다. 어머니의 고향 집이 철원에 있어 어릴 때부터 이미 몇 번이고 와본 곳들이었지만, 재향군인회와 함께하니 새삼 다른 감회가 밀려왔다.
이어진 남방한계선 행군은 지금껏 걸어온 구간 중 가장 가파르고 힘겨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원이와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여정의 목적과 우리 인연의 의미가 다시금 또렷해졌다. 앞서 가던 다른 조 친구들이 당을 보충할 간식을 나눠주고, 잘 걷는다며 격려도 해주었다. 오르막에서는 서로의 가방을 들어주고 등을 밀어주는 장면을 보았다.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선 곁에 있는 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고, 자연스레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늦은 오후, 하늘이 점차 흐려지더니 결국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비를 입었어도 누구든 흠뻑 젖을 수밖에 없는 매서운 비였다. 빗소리가 총소리처럼 사방에서 크게 울려 서로의 말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도 웃었다. 그 순간 우리는 오직 표정과 발걸음으로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5사단 신교대대에 도착한 후, 단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비를 안 맞으려고 하니 이 상황이 싫고, 짜증나고, 두려운 거다. 받아들이고 흠뻑 젖어버리면 어려울 게 없다." 온몸으로 비를 맞이한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모든 걱정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 이 여정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이 장면일 것이다.
석식을 먹고선 각자의 식판을 손수 설거지하고, 밤에는 내무반에 조별로 모여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조는 지금까지 배우고 느낀 내용을 가사로 엮고, 찍은 사진과 영상을 조합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로 했다. AI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태원이가 곡을 만들었다. 비 맞은 몸으로 에어컨 아래에서 한참 이야기한 탓인지, 분위기가 즐거워서인지... 괜스레 어깨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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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일요일. 두루미평화타운으로 이동해 제2땅굴과 평화전망대, 노동당사, 그리고 백마고지 전적비를 견학했다. 어머니의 고향 집이 철원에 있어 어릴 때부터 이미 몇 번이고 와본 곳들이었지만, 재향군인회와 함께하니 새삼 다른 감회가 밀려왔다.
이어진 남방한계선 행군은 지금껏 걸어온 구간 중 가장 가파르고 힘겨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원이와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여정의 목적과 우리 인연의 의미가 다시금 또렷해졌다. 앞서 가던 다른 조 친구들이 당을 보충할 간식을 나눠주고, 잘 걷는다며 격려도 해주었다. 오르막에서는 서로의 가방을 들어주고 등을 밀어주는 장면을 보았다.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선 곁에 있는 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고, 자연스레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늦은 오후, 하늘이 점차 흐려지더니 결국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비를 입었어도 누구든 흠뻑 젖을 수밖에 없는 매서운 비였다. 빗소리가 총소리처럼 사방에서 크게 울려 서로의 말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도 웃었다. 그 순간 우리는 오직 표정과 발걸음으로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5사단 신교대대에 도착한 후, 단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비를 안 맞으려고 하니 이 상황이 싫고, 짜증나고, 두려운 거다. 받아들이고 흠뻑 젖어버리면 어려울 게 없다." 온몸으로 비를 맞이한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모든 걱정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 이 여정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이 장면일 것이다.
석식을 먹고선 각자의 식판을 손수 설거지하고, 밤에는 내무반에 조별로 모여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조는 지금까지 배우고 느낀 내용을 가사로 엮고, 찍은 사진과 영상을 조합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로 했다. AI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태원이가 곡을 만들었다. 비 맞은 몸으로 에어컨 아래에서 한참 이야기한 탓인지, 분위기가 즐거워서인지... 괜스레 어깨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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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화요일. 아침 국군 도수체조를 하고, 유엔군 초전기념관으로 이동해 한미 장병들과 함께하는 7일차 일정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천안함 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그들의 몸을 관통한 총알 더미의 무게와, 거대한 함체가 폭발하며 전선과 철근 등의 구조물이 처참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마지막 묵념을 하며, 침묵 속에서 다시 한 번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그림자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드리웠던 첫날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더 이상 같은 이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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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단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건표와 함께였다. 힘들었던 점과 재밌었던 추억을 돌아보는 얘기를 나누며 역으로 가는 동안 지난 7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참전용사의 눈빛에서, 완전군장의 무게에서, 시원한 소나기 안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일 때 흐르던 땀방울과 멈추어 서던 그림자들에서... 2026년 유월의 나는 소중한 인연들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얻었다. 자유를 누비는 걸음 하나하나엔 앞선 희생이 겹쳐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들의 젊은 날을 기억한다.
뜨겁게 타올라 검게 사라진 1950년의 봄은, 백 년이 지난 평화의 여름- 그렇게 내 안에서 만개했다. (konas)
중앙대학교 4학년 박 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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