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3)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유산
(이 글은 '제16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 입니다.)
<서론> : 다시 걷는 길, 다른 무게
작년 제15기 향군 국토대장정. 백혈병이라는 그림자와 병역 면제라는 삶의 부채감을 딛고, 잃어버렸던 호국과 애국의 의미를 찾아가는 소감문을 작성해 감사하게도 상을 받았었다. 그날 가슴 깊이 새겨 넣은 깨달음은 결코 한때의 감상으로 그치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호국"이라는 다짐은 내 삶을 공직자라는 새로운 지향점으로 이끌었고, 현재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며 공직의 싹을 틔우는 단단한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 뜨거웠던 기억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 한 달 만근을 채워야 한 개가 주어지는 값진 연차를 하루하루 모아가던 찰나, 드디어 16기 공고가 올라왔다. 더없이 기뻤던 점은 부단장님께서 나를 잊지 않으시고 먼저 건네주신 연락이었다. 잊힐 수도 있는 지난 기수 대원을 기억해 주시고 먼저 찾아주셨다는 사실에 아득한 감사가 밀려왔다. 대장정 기간과 맞물려 일산 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스케줄을 이리저리 변경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남겨둔 연차를 모조리 쏟아부어 다시 한번 그 길에 동참하기로 결단 지었다.
스태프로 참가하게 된 이유는 다양했다. 지난 대장정에서 묵묵히 함께했던 스태프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던 탓도 있고, 저번 대장정 중 가장 친해졌던 대원인 하은 누나와 함께 지원하기로 한 이유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후배 대원들 역시 나처럼 이 여정을 통해 자신을 뒤흔들 큰 가르침을 수확해 갈 수 있도록 곁에서 온전히 받쳐주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작년에는 오직 내 발 끝에 떨어지는 숨을 보며 걸었다면, 올해는 후배들의 땀 흘리는 등 뒤를 바라보며 걷고 싶었다. 스스로를 이겨내는 단계를 넘어, 타인을 받쳐주고 성장을 도우며 또 다른 삶의 언어를 모으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다시 이 길 위에 세웠다.
<1일차>: 대원과 스태프는 한 글자 차이인데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다고 생각하며 들어선 강당에, 먼저 한 사람이 나보다 앞서 와있었다.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내가 사방에 국토대장정을 홍보하고 다닐 때, 그 부름에 유일하게 답해주었던 고마운 친구였다. 입대를 앞두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고 싶어 지원했다는 대답에 마음이 든든했다. 솔직히 혼자였다면 스태프라는 자리가 어쩌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일주일을 함께할 친구가 곁에 있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하나둘 들어서는 후배 대원들의 표정은 나란히 경직되어 있었다. 1년 전 나의 초상이 겹쳐 보여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 시절의 나는 직원들과 스태프, 심지어 같은 대원인 형들마저 왜 그리 얼어붙은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동안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소중한 동료들인데 말이다. 나와 달리 다들 그 사실을 일찍 깨달았는지, 현충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어느새 서로가 터놓는 대화로 왁자지껄해졌다. 오직 같이 온 친구와만 속삭였던 나의 작년 모습이 번져와, 묘한 부러움이 스쳐 지나가는 짧은 이동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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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 이르러 대원들이 반듯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서자, 스태프로서의 내 역할이 문득 실감 나기 시작했다. 마음은 여전히 저 대열 속에 자연스레 섞여 있어야 할 것만 같은데, 옆의 자리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해 괜히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 선명하다. "스태프님" 하고 나를 부르는 후배의 목소리에 엉거주춤 돌아서던 순간. 아직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이 자리를 부족함 없이 채워내겠다는 동기부여와 다짐이 단단해진 순간이기도 했다.
작년과 비교해 대장정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좋아졌음을 여러 군데에서 느꼈는데, 그중 하나가 실내 출정식이었다. 뙤약볕 아래 땀방울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틀간 야외를 지키던 기억에 내심 마음을 졸였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향군 국토대장정이 대원들을 한층 더 배려하고 보살피며 발전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울러 현충원과 전쟁기념관은 늘 갈망하면서도 지방에 거주하는 나로서는 기회가 마땅치 않은 공간이었는데, 새롭게 더해진 여정을 통해 호국영령을 향한 진심 어린 추모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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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 순서를 벗어나 더 좋아진 점들을 짚어보자면, 단연 숙소의 쾌적함이 돋보였다. 컨테이너 숙소와 32인실 내무반에서의 밤은 집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었는데, 올해는 많아봐야 12인실이 전부였고, 모든 거처가 깨끗하고 청결한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추고 있었다. 나아가 군번줄 만들기, 군복 체험, 6.25 정부기념식, 그리고 작년엔 걸어보지 못했던 민통선 길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대장정을 위해 밤낮없이 고심하셨을 관계자분들의 노고가 전해졌다. 특히나 평생에 있어 절대 기회가 없을 것만 같은 6.25 정부기념식 참석은 어디 가서 자랑하고 다녀도 될 정도의 특별한 경험이 되어 오래도록 간직할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행사와의 합도 훨씬 매끄러워져 작년처럼 무의미하게 대기하는 시간이 아예 사라졌다.
무엇보다 새로 오신 단장님의 열정은 대장정 전체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고 계셨다. 스태프들 역시 대원보다 분주히 움직였지만, 언제나 가장 바삐 움직이시는 분은 단장님이셨다. 늘 우리보다 앞쪽에서 이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계셨고, 잠깐 안 보인다 싶으면 뒤쪽에서 어김없이 관계자들과 회의를 나누고 계셨다. 그 헌신의 덕분에 이번 여정도 한층 더 다채롭고 풍성하게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해 한 해 거듭할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이 길을 바라보며, 내년에도 또 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2일차>: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자
파주에서 수원으로 이동하여 참석한 제76주년 6.25전쟁 정부기념식은 호국영령을 향한 진정성이 고스란히 밀려오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영웅이 지켜낸 대한민국, 세계 속에 빛나다>라는 슬로건 아래의 대통령의 연설이 스며들어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76년 전 참호 속에서 피로 맺은 우리의 연대는 오늘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굳건한 동반자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자주 외교의 필요성이 거세지는 현 시국 속에서 더욱더 무게감을 지니는 대목인 것 같다. 우리는 피로 새긴 연대의 역사를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국의 명운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였을 때, 주저없이 손을 내밀어 준 이들과 함께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진 정부포상에서는 비정규군 공로자 세 분에게 새로이 훈장이 수여되었다. 아직도 이름 없이 국가를 위해 바쳐진 희생들이 어둠 속에 묻혀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그늘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이름 모를 헌신과 눈물이 스며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기념식에서 가장 가슴 깊은 울림이 남은 순간은 단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후손들로 구성된 강뉴합창단이 무대 위에 올라 아리랑을 부를 때였다.
일찍이 나는 유튜브를 통해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의 비장한 역사를 접해본 적이 있었다. 당시 머나먼 동방의 작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최정예 황실 근위대가 오직 자유라는 가치 아래 강뉴부대라는 이름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달려왔다.
영상 속에 담긴 강뉴부대원들의 활약은 전설 그 자체였다. 25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을 거두었고, 참전 후에도 월급을 모아 고아원을 세워 전쟁고아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참된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간 그들을 기다린 것은 공산 정권이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린 참전용사들은 반동으로 몰려 가혹한 탄압과 가난을 견뎌내야 했다. 타국의 자유를 위해 인생을 바친 이들이 정작 조국에서는 죄인처럼 숨죽여 살아야 했던 역사의 아이러니. 작년 국토대장정 당시 춘천의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를 찾아가 비문을 훑을 때 더 큰 먹먹함을 느꼈었다.
바로 그 강뉴부대 영웅들의 후손들이 76년의 세월을 넘어 눈앞에서 한과 연대가 서린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선조들이 피 흘려 사수한 이 땅 위에서, 그 후손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아리랑 가락은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숭고한 보은과 감사의 메시지 그 자체였다. 숙연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대원들의 등 뒤에서, 그들에게도 이 울림이 귀를 넘어 마음까지 깊게 전해지길 조용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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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시선을 올리면 더 많은 것이 보여
본격적인 행군이 막이 오른 3일차, 동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통일전망대와 해안철책길 위에서 나의 시선은 오롯이 후배 대원들의 발꿈치와 거친 숨소리에 머물러 있었다.
작년의 나는 오직 내 자아에 대한 고뇌와 육체적 한계에 급급하여 고개 숙인 채 발끝만을 바라보며 걸었으나, 올해의 나는 스태프 명찰을 달고 대열의 측면과 후방을 바쁘게 오르내렸다. 질척거리는 진흙에 운동화가 잠기는 악조건 속에서, 유난히 뒤처지는 대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곁으로 다가가 보폭을 맞추며, 작년의 내 경험을 서두로 말을 건넸다.
“난 가장 방황하던 시기에 이 길을 걸었고, 그때 걸으며 얻은 마음가짐은 지금까지도 선명해. 네가 지금 내딛는 이 힘겨운 걸음 역시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거야.”
묵묵히 건넨 내 고백과 작은 조언에 후배는 조금 더 힘찬 걸음으로 치고 나갔다. 타인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지는 것, 누군가가 포기라는 단어 앞에 멈춰 서려 할 때 그 등 뒤를 가만히 밀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길에 다시 돌아온 이유이자, 스태프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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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나 때는 말이야~ 붕어섬 갈 때 비까지 왔었어
붕어섬을 향해 나아가는 오늘의 코스는 가장 긴 구간이었기에,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대원들에게 고비가 찾아오는 구간이었다. 작년의 나 역시 가장 무거운 걸음을 옮긴 길이기도 했다.
나는 가장 뒤에서 부단장님과 함께, 페이스가 뒤처지는 대원들이 없는지 집중했다. 묵묵히 후미를 지키시며 지쳐가는 대원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피시고, 따뜻한 눈빛으로 격려를 건네시던 부단장님의 모습에서 참된 리더십의 귀감을 보았다. 나도 후미에서 지친 대원들에게 물을 건네고, 왜 두 번이나 이 고된 여정에 돌아왔냐고 묻는 이들에게 대장정에 합류하고자 했던 나의 간절했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덤덤히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아득해 보이던 목적지가 조금씩 눈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향하는 공직이라는 자리 역시, 이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일지라도 지속되어야 하는 조력의 자리여야 한다는 속내를 다시금 가슴 깊이 다졌다.
<5일차>: 부모님께도 밝히기 힘든 고뇌
노동당사, 백마고지기념관, 평화전망대로 연결되는 일정은 과거 치열했던 대립과 전쟁의 상흔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하는 역사적 현장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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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노동당사 앞에서 나의 역사적 무지함에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찾아온 지금, 숙연한 마음으로 역사적 현장의 자국들을 더욱더 눈에 새겼다. 대원들 역시 이 아픈 역사의 흔적을 단순한 풍경으로 지나치지 않고, 과거가 남긴 교훈이 된 이 건물 한 채를 통해 굳건한 안보의식의 필연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백마고지에서도 걷는 시간이 이어졌다.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전장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푸르고 고요한 들판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다가도, 이곳이 수많은 선열의 피로 물들었던 비극의 현장임을 의식해내면, 그 대비되는 풍경 속에서 지금과 같은 고요한 평화를 위한 이 땅에 치러진 희생의 무게가 한층 더 무겁고 깊게 새겨졌다.
5일차의 밤, 열쇠신병교육대에서 뜻밖의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내가 회장인 전남대학교 산악회의 한 기수 후배가 신병교육대 조교로 있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던 것도 잠시, 작년에 나를 괴롭힌 해묵은 질문이 다시금 밀려왔다.
‘지금은 이렇게 건강한 내가, 또래들이 청춘을 바쳐 지키고 있는 이 평화를 마냥 누려도 되는 것일까?’
내가 이런 넋두리를 할 때면 친구들은 밸런스 게임에 비유하곤 했다. “대한민국 남자들 모두가 거치는 입대 vs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백혈병 투병”을 제시하면 백이면 백 전자를 택한다는 것이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가벼운 농담임을 알면서도, 나의 시선은 언제나‘대한민국 남자들 모두’라는 단어에 멈춰 섰다.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자 병무청에 수차례 문의 전화를 걸었었고, 사회복무요원이 자원하여 현역으로 입대할 수 있는 제도에 나도 해당이 되는지 관련 자료를 샅샅이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과 신체검사의 기회조차 없이 서류로 처리된 병역 면제 통보였다.
내가 이토록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고 싶어한 까닭은 단지 말 몇 마디로 설명되지 않는다. 병역명문가를 이루고자 하셨던 아버지의 바램, 월남전 참전용사이신 외할아버지의 기대, 그리고 어린 시절 임관을 향한 열망으로 공군항공과학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지원했던 나의 오래된 꿈.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가장 명예롭다 믿어온 나였기에, 이 병역 면제라는 주홍글씨는 오랫동안 깊은 괴리감과 죄책감의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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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안다. 작년 국토대장정에서 비로소 그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호국이란 오직 총을 들고 전선을 지키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록 군복을 입지는 못했으나, 호국과 애국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삶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이 나라를 향한 애국이었다. 그리고 나는 전선 대신 공직이라는 자리에서 이 애국을 실현하고자 진로를 택했다. 때로는 현장의 총성보다 정책과 행정이라는 다른 언어로 국가에 더 크게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품은 채로 말이다.
<6일차>: 진심으로 내가 더 고마워
대장정의 하이라이트이자 결실의 시간인 '소통의 밤'이 찾아왔다.
소통의 밤이 펼쳐진 강당은 1년 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호국"이라는 발표를 들으며 가슴속 응어리를 씻어낸 바로 그 공간이었다. 올해는 무대 위가 아닌 무대 뒤편에서, 각자의 소감을 진솔하게 터놓는 후배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대원이 무대에서 "힘들 때 격려해 준 스태프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작년에 나는 이 길에서 수혜자였지만, 올해의 나는 타인의 성장을 돕고 용기를 건네준 조력자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나의 두 번째 국토대장정은 비로소 완전한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7일차>: 다들 내년에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마침내 6박 7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해단식까지 왔다.
해단식에서 서로 완주의 기쁨을 나누는 대원들의 미소를 바라보며, 스태프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뭉클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아껴 모았던 연차를 모두 쏟아부은 것도, 출장 일정을 이리저리 변경하며 진땀을 뺀 번잡함도, 이 값진 미소와 깨달음 앞에서는 모두 기분 좋은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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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담대하게 나아가리라
나에게 있어 두 번의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은 단순한 국토 횡단의 기록이나 일주일간의 봉사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의 여정이 나라는 작은 세계를 극복하는 고백이었다면, 이번 여정은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받쳐주는 단계로 나아가는, 내 삶에 있어 가장 성숙한 성장의 순간이었다.
대원들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 오늘을 준비하고, 대원들보다 한 시간 늦게 누워 내일을 준비했던 스태프로서의 일주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지쳐가는 후배들을 격려하고 곁에서 묵묵히 보폭을 맞춰 걸었던 그 시간들은, 훗날 내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게 될 공직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를 몸소 체화해 주는 수련이었다. 앞에서 이끄는 화려한 리더십 못지않게, 뒤에서 묵묵히 타인의 걸음을 받쳐주고 낙오하지 않도록 보듬어주는 조력자의 헌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성찰을, 나는 후배들의 등 뒤를 따라 걸으며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밟았던 휴전선의 전적지들과 민통선의 흙길, 그리고 정부기념식의 장엄했던 순간들은 대원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안보의 의미를 더욱 단단하게 다져주었다. 전쟁의 참혹함 위에 세워진 오늘의 평화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였듯, 나 또한 훗날 공직의 자리에서 눈에 띄지 않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다음 기수를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을 후배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혹여 당신이 현실의 높은 벽 앞에 스스로가 작아지게 느껴지거나,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삶의 길목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향군의 길 위에 첫 발자국을 새기길 바란다. 그 걸음은 단지 육체를 단련하는 여정이 아닌, 자아를 체화시키고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뜻깊은 길이 될 것이다. 한계에 부딪혀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결코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등 뒤에는 언제나 당신의 걸음을 묵묵히 받쳐주고 함께 웃어줄 든든한 단장님과 부단장님, 스태프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청년들에게 국가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도록 고귀한 장을 마련해 주신 재향군인회와 신상태 회장님, 그리고 현장에서 대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스태프인 나에게도 끝없는 신뢰를 보내주신 단장님과 부단장님, 모든 관계자분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올린다. 대원으로서, 스태프로서 배운 가치들은 향군이 나에게 준 평생의 선물이다. 주어지기만 한 호의에 안주하지 않고, 향군에서 배운 헌신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회에 나가 타인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삶으로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짐한다.
해단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열심히 공직 생활을 배우고 있다. 내가 서 있는 어느 자리에서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안녕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묵묵히 나만의 자리에서 나만의 방법으로 호국을 이어갈 것을 가슴 깊이 다짐해 본다.
마지막으로, 내 첫 소감문의 마지막 문장을 불러와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하고 싶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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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3학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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