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6) KAAV 조종수에서 10조 조장으로,국토의 길목에서 찾은 초심과 의지
(이 글은 '제16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 입니다.)
[도입부]
6박 7일간의 뜨거웠던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가슴속에 새겨진 여정의 기억을 글로 남긴다. 이번 국토대장정은 누군가에게는 처음 마주하는 낯선 길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해병대 제2사단에서 상륙돌격장갑차(KAAV)를 운용했던 해병으로서, 대장정의 길목마다 마주한 풍경들이 무척이나 친숙했기 때문이다. 매일 바라보던 철책선, 완전군장을 메고 숨 가쁘게 오르던 언덕, 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식사와 군부대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까지, 이번 여정은 청춘의 한 페이지였던 군 생활의 기억을 회상하는 동시에 국방과 안보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대학 생활 중 인도네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서 두 차례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현지 학생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한식과 K-POP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국경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잇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영향력과 높은 위상을 몸소 체감했다. 이처럼 타국에서 조국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나니,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다.
아울러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전역 당시에 다짐했던 열정적인 삶의 태도를 상기하고 미래를 향한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자 향군국토대장정에 지원했다. 여기에 더해 이번 여정에서는 ‘10조 조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나 혼자의 완주에 그치지 않고, 조원 전원이 서로를 의지하며 무사히 완주하도록 이끄는 것을 이번 여정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6월 24일]
첫째 날, 새벽 5시라는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설렘과 긴장감을 가득 안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재향군인회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대장정에 필요한 모자, 단체복, 가방 등 수많은 물품을 받았다. 선명한 노란색 의상을 입고 나니 유치원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처음 마주한 조원들 사이에는 숨 막힐 듯한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아이스브레이킹을 거치며 경계심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빡빡하게 짜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곧바로 첫 여정을 향한 버스에 올랐다.
첫 행선지는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비석들을 마주한 순간 가슴이 묵직해졌다. 명절마다 찾던 친지의 묘소와는 전혀 다른 엄숙함이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현충문을 지나 위령탑으로 향하는 길은 그리 길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이상하게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향해 묵념을 올리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향 내음은, 이 나라를 지켜낸 위대한 분들 앞에 서 있음을 온몸으로 각인시켜 주었다.
이어서 찾은 전쟁기념관에서는 6·25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새겨진 전사자 비석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하나하나 눈으로 직접 마주하니 그 희생의 무게가 온전히 가슴으로 전해졌다. 전쟁이 앗아간 수많은 청춘의 무게에 숙연해지는 동시에, 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향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이후 진행된 출정식에서 군악대의 웅장한 연주와 힘찬 향군 구호, 그리고 재향군인회 관계자분들을 향한 거수경례까지, 마치 재입대한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절도 있는 출정식을 마치고 나니 국토대장정의 위대한 서막이 올랐음이 실감 났다. 첫날의 마지막 종착지인 캠프그리브스에서는 드라마 속 군복을 입어보고 군번줄을 만드는 활동을 진행했다. 다른 조원들은 즐거워하며 웃었지만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체험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불과 얼마 전까지 몸담았던 군 생활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미소 짓는 얼굴 뒤로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던 첫날의 밤, 남들과는 조금 더 깊은 시선으로 대장정을 걷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6월 25일]
둘째 날,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25전쟁 제76주년 행사’는 대장정 전체를 통틀어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국가보훈부 장관 명의로 발송된 공식 초청장을 직접 확인했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국가적 행사에 초청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자부심으로 다가왔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토록 영광스러운 자리에 또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감회가 들었다. 삼엄한 보안 검색을 통과하며 행사장 내부로 들어서자 정부 주관 행사가 지닌 막중한 무게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특히 군 참모총장분들이 지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몸이 굳어지기도 했다. 수많은 고위 인사와 취재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마음을 가장 깊게 울린 것은 행사의 규모가 아닌 그 자리를 채운 영웅들이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거동조차 불편하신 백발의 국가유공자분들을 바라볼 때 가슴 한편이 아릿해졌고, 대형 전광판 화면 속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 없이 눈물 흘리시는 참전 용사의 모습에 나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행사장 한편에 걸린 22개국의 참전국 국기와 유엔기를 보며, 6·25전쟁이 우리만의 아픔이 아닌 전 세계가 함께 치러낸 의로운 싸움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어지는 순서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합창단이 부르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비록 발음은 조금 서툴렀을지라도, 이름도 모르는 먼 나라를 위해 피 흘려 싸운 영웅들의 후손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언어를 초월한 깊은 전율이 전해졌다. 지난 해외봉사 때 경험했던 문화의 영향력이, 여기서는 서로를 기억하고 감사함을 표하는 연결고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행사의 여운을 안고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 방문했다.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는 ‘블랙이글스’의 위용 넘치는 전투기들을 보며 한국의 막강한 국방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장병 식당의 풍경이었다. 복수 메뉴 중 원하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고 음료 디스펜서까지 갖춰진 시설을 보며 우수한 복지를 엿볼 수 있었다.
[6월 26일]
셋째 날, 고성 평화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비구름이 거짓말처럼 걷혀 있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만 보던 금강산의 자태를 눈앞에 두고도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해안 철책을 따라 DMZ 직전까지 걸어가는 동안 잔잔한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군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철책 옆에 선명하게 새겨진 ‘지뢰’ 경계 표지를 마주하고서야 이곳이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최전선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마침 동행하게 된 현역 장병에게 “지금도 철책 근무를 서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하는 진중한 눈빛, 그리고 “휴가는 많이 받느냐”는 질문에 입가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많이 받는다”고 답하던 그 앳된 얼굴에서 몇 년 전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묘한 애틋함이 피어올랐다.
을지신병교육대대에서는 군 시절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실제 군 장비들을 보는 순간 군 생활 당시 사용했던 병기 번호가 입가에 맴돌았다. 전역한 지 시간이 흘렀음에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 숫자를 떠올리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PX에 갈 생각에 한껏 설레하는 단원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나의 이병 시절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며 훈련에 열중하는 신병들을 바라볼 때는, 해병대 교육훈련단 시절 겪었던 고된 훈련의 기억이 교차하며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6월 27일]
넷째 날, 파로호안보전시관은 전쟁의 비극과 역사의 무게를 동시에 전해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6·25전쟁 관련 자료들을 보며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 주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으로 직접 ‘파로호’라는 이름을 하사했을 만큼, 이곳에서 치러진 전투가 한국전쟁사에서 얼마나 거대한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화천을 단순히 강원도의 한적한 산골로만 바라본다면 쉽게 지나칠 수 있겠지만, 역사의 굴곡 위에 놓고 바라본 이 땅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렀는지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었다.
딴산유원지에서 붕어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쌈밥집은 뜻밖에도 자리가 부족해 단장님, 부단장님과 함께 야외에서 식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우연한 자리는 이번 대장정에서 값진 가르침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식사 도중 단장님께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았다. 단장님께서는 과거 호우로 인해 떠내려온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었던 한 장병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셨다.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들으며 준비 태세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국민의 생명줄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아울러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부상을 입은 분들에 대해 국가가 지금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책임 있는 보상과 예우를 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화천 미륵바위 일대를 걷던 중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를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서 눈을 의심케 하는 뜻밖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내가 군 복무 시절 매일 손으로 정비하고 조종했던 상륙장갑차가 그곳에 당당히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청춘을 바쳐 땀 흘리며 다루던 장비가 호국의 역사를 증명하는 현장에 자리한 모습을 마주한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이 솟구쳤다. 선배 해병들이 이곳 화천 지구 전투에서 얼마나 위대한 공을 세웠는지 새롭게 알게 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해병대의 일원이 되기를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군사 전시물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청춘과 국가에 바친 헌신의 증표였다. 이번 향군국토대장정이 왜 나라는 사람에게 이토록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 해답을 비로소 찾은 듯한 하루였다.
[6월 28일]
다섯째 날, 계획이 변경되어 제2땅굴을 먼저 찾았다. 땅굴의 내부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낮은 천장 때문에 연신 머리를 부딪히고 목을 숙여야 하는 불편함이 이어졌지만, 그 좁고 어두운 통로는 북한이 얼마나 치밀하고 집요하게 남침을 준비했는지를 증언하는 생생한 흔적이었다. 한여름의 더위가 무색할 만큼 서늘했던 땅굴 내부의 공기는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이면에 숨겨진 안보의 진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철원평화전망대에서는 우거진 숲과 들판이 펼쳐져 있어 언뜻 보기에는 정적만이 감도는 풍경 같았다. 하지만 망원경 너머로 흙을 파내며 작업 중인 북한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 남북 대치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와닿았다. 이후 발걸음을 옮긴 노동당사 건물 표면에는 수많은 총탄과 포탄 자국이 흉터처럼 깊게 파여 있었고, DMZ 평화공원의 백마고지 기념탑 앞에서는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해 바쳐진 선열들의 피와 땀의 무게가 엄숙하게 다가왔다.
열쇠신병교육대대에 다다를 무렵, 하늘에서 무섭도록 거센 비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온몸이 흠뻑 젖어 대원들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심 대장정 중에 비를 시원하게 맞아보고 싶었던 나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안으며 그 상황을 즐겼다. 그와 동시에 군 생활이 내 삶에 남겨준 참된 자산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체력이나 인내심을 넘어, 어떤 악조건과 돌발 상황 속에서도 불평하기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긍정적이고 강인한 태도였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값진 가치였다. 그날 밤 신병교육대에서 서게 된 불침번 근무는 전역자로서 묘한 허탈함과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해병대 교육훈련단 시절의 초심을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든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6월 29일]
여섯째 날,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남다른 감회가 들 수밖에 없는 특별한 장소였다. 이곳은 내가 군 복무를 했던 해병대 제2사단 관할 지역으로, 과거 무거운 완전군장을 메고 숨 가쁘게 행군했던 추억이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고된 순간들이 뇌리에 생생한데 민간인의 신분으로 다시 그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 10조는 식사 순서가 늘 뒤로 밀리곤 했다. 이대로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들르면 음료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끼니를 챙기기보다 고생하는 조원들에게 시원한 음료를 대접하고자 곧바로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음료를 받아 든 조원들이 건넨 “고맙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는, 조장으로서 느꼈던 모든 피로를 단번에 씻어내 주었다.
점심 식사로 전투식량이 지급된다는 공지를 들었을 때는 순간 절망감이 밀려왔다. 야외 훈련 때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갈 때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먹어야 했던 기억 탓에 쳐다보기도 싫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지급된 제품은 군 시절 먹던 것과 달라 생각보다 맛있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던 유쾌한 해프닝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동 중 ‘호국충성 해병대’라는 글귀가 새겨진 간판을 마주했을 때는 가슴 한구석에서 붉은 피가 다시 뜨겁게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물론 해병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지만, 자랑스러운 감정과 별개로 ‘재입대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솔직하고 유쾌한 진심을 속으로 되뇌기도 했다.
대장정의 마지막 밤은 삼겹살 파티와 레크리에이션으로 화려하게 물들었다. 빡빡한 일정 탓에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음에도 각 조는 남는 시간을 쪼개어 준비한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울려 퍼졌을 때, 모든 대원이 서로의 어깨를 맞잡고 거대한 기차를 이루며 뜨겁게 하나가 되었다. 첫날의 숨 막히던 어색함은 어느덧 눈 녹듯 사라지고, 우리는 비로소 깊게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비로소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온전히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내일이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다가와,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던 잊지 못할 밤이었다.
[6월 30일]
마지막 날, 유엔군초전기념관에 도착했을 때는 무더위가 기세를 부리고 있었다. 집결지에 서 있는 미군들의 압도적인 체격을 마주하며 부러움과 감탄을 보냈다. 기념탑에 올라서니 유엔기를 포함한 18개 참전국의 국기가 푸른 하늘 아래 당당히 휘날리고 있었다. 기념탑에서 눈앞에 펼쳐진 활기찬 도시 전경을 바라보는 동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만약 이곳 오산 죽미령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치열한 교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로운 도시는 존재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서해수호관은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 역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였다. 군 복무 시절 해병대 제1사단과의 합동 호국훈련을 위해 장갑차를 상륙함에 적재하고자 방문했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야외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정의 선체에는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의 포탄이 뚫고 지나간 참혹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철판을 가만히 바라보며 당시 함정에 있던 해군 장병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은 책임감이 얼마나 치열하게 맞섰을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대장정의 마지막 장소인 천안함 전시관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절단된 선체는 남북 분단이 지나간 역사가 아닌 오늘날의 엄혹한 현실임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수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 서 있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이 희생의 증거 앞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이후 충무관에서 열린 해단식을 끝으로, 우리는 정찰모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리며 6박 7일간의 길고도 가슴 뜨거웠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결말부]
6박 7일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향군국토대장정은 단순한 국토 순례를 넘어 지난날을 돌아보고 내일의 각오를 다지는 정화의 여정이었다. 한때 내가 지켰던 국경을 전역자의 시선으로 다시 걸으며, 오늘날의 평화 뒤에 놓인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가슴 깊이 새겼다. 또한 10조의 조장으로서 개인의 완주를 넘어 조원 전원과 함께 무사히 완주를 이루어낸 경험은, 이제 사회라는 더 큰 무대로 나아갈 나에게 값진 리더십과 유대감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피워 올린 뜨거운 열정과 담대함은 내 앞에 놓인 미래를 헤쳐 나갈 거대한 동력이 될 것이다. 대학교 졸업이라는 새로운 시작점에 서서 나는 ‘반도체 엔지니어’라는 꿈을 바라보고 있다. 피와 땀으로 지켜낸 이 땅의 가치를 가슴 깊이 품고, 반도체 산업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기술적·경제적 위상을 빛내며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하겠다. 뜨거웠던 여름날, 함께 땀 흘리며 걸었던 향군국토대장정의 모든 인연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konas)
충남대학교 4학년 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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