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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8) 기억의 선 위에서, 다시 찾은 마음

Written by. 서울여자대학교 이하은   입력 : 2026-08-13 오후 3: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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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6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 입니다.)

나는 이제 대학교 4학년이다. 학사장교 72기로 입대를 앞두고 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71기가 임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군인이 되는 날도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반가움과 기대만큼이나 ‘이 길이 정말 나에게 맞는 길일까’라는 고민도 커졌다.

다른 친구들처럼 전공을 살려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내가 좋아하는 마이크를 잡는 길이 더 잘 맞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또 의무복무 이후에도 군인의 길을 계속 걸을지 알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국토대장정에 다시 참가해 길을 걷고, 전쟁의 흔적을 마주하고, 함께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20대의 3년을 쓰는 일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훗날 다시 흔들리는 날이 왔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을 기록해 두기 위해 쓰는 글이다.

1일 차|6월 24일 수요일
재향군인회 – 국립서울현충원 – 전쟁기념관 출정식 – 캠프그리브스

재향군인회에서 보급품을 받으니 국토대장정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 실감 났다. 형광 노란색 조끼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조금 도망가고 싶었다. 작년에는 파란색 조끼였는데, 올해 조끼는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색이었다. 실제로 화장실에 가는 길에 우리를 직원으로 착각한 분이 내게 길을 묻기도 했다. 처음에는 창피하다고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이 조끼를 입은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소속감이 생겼다.

작년에는 만나지 못했던 현수 오빠와 지은이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국토대장정에서는 함께 걷고, 먹고, 잠드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평소보다 사람과 친해지는 속도도 훨씬 빠른 것 같다.

이번 제16회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의 주제는 ‘기억의 선을 모아, 평화의 내일을 잇다’였다.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출정식에서는 군악대가 연주를 들려주었다. 군악대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힘이 있었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자연스럽게 벅차올랐다.

캠프그리브스에서는 군번줄을 만들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유시진 대위의 군복을 입어보는 체험도 했다. 아직까지는 힘든 국토대장정보다는 수학여행에 온 듯한 기분이 더 컸다. 건물들이 낮게 자리 잡은 캠프그리브스에서 바라본 노을도 무척 아름다웠다.

이날은 걷는 일정도 없었지만, 긴장해서인지 오후 9시 30분 점호가 끝나자마자 잠이 들었다. 시험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데다, 시험 기간 내내 밤을 새우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밤늦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면서도 이곳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국토대장정은 몸은 힘들어도 생활은 오히려 건강해지는 시간 같다.

2일 차|6월 25일 목요일
수원컨벤션센터 6·25전쟁 기념식 – 공군 제8전투비행단

서울에서 캠프그리브스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수원으로 내려가는 동선이 처음에는 다소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6·25전쟁 제7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난 뒤에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서는 에티오피아 강뉴합창단의 ‘아리랑’ 공연이었다. 강뉴합창단은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6·25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했던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싸웠던 나라의 참전용사와 후손들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기억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참전국의 국기와 6·25전쟁 당시 참전 부대의 부대기들이 차례로 입장하는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기념식이 끝났을 때는 행사를 위해 수원까지 이동해야 하느냐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오히려 이런 뜻깊은 자리에 함께할 기회를 주신 것이 감사했다.

대학교 2학년과 3학년 때는 국방부 서포터즈와 육군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여러 군 관련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에 다녀올 때마다 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다시 채워오곤 했다. 그러나 4학년이 된 뒤에는 졸업 준비와 다른 활동들로 바빴고, 내년부터는 실제 군인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군 관련 활동과 거리를 두었다.

그 사이 내가 처음 품었던 마음도 잠시 구석에 내려놓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참석한 기념식은 내가 왜 군인이 되고 싶었는지 다시 떠올리게 했다.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의 마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3일 차|6월 26일 금요일
통일전망대 – 을지신병교육대대

3일 차에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평소의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다.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열차를 놓친 적도 여러 번인데, 국토대장정에서는 정해진 기상 시간보다 30분씩 먼저 눈이 떠졌다. 작년에는 기상 방송이 나올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 속에서 버텼지만, 올해는 스태프로 참여한 만큼 대원들보다 먼저 준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책임이 생기면 사람의 몸도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오전에는 해안 철책 길을 걸었다. 작년에는 없었던 코스였는데, 바다를 따라 이어진 길의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다만 햇볕이 워낙 강해 걷는 동안 시원한 냉면만 생각했다. 그런데 점심 메뉴는 예상과 달리 북한식 국밥이었다. 더운 날씨에 뜨거운 국밥이라니, 처음에는 속으로 조금 투덜거렸다. 하지만 아침에 샌드위치를 먹었으니 점심에는 따뜻한 국물을 먹이고 싶었다는 주최 측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 마음이 이해됐다. 국밥도 무척 맛있어서 결국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괜히 투덜거린 것이 죄송해졌다.

이후 다시 걸어 을지신병교육대대로 이동했다. 작년에는 컨테이너형 숙소를 사용해 시설이 다소 불편했기 때문에 걱정했지만, 올해는 리모델링이 끝나 훨씬 쾌적하게 지낼 수 있었다.

부대에서는 장갑차와 총기, 레이저 거리측정장비 등 여러 장비를 견학했다. 길리슈트를 직접 입고 뛰어보는 체험도 했다. 잠깐 입었을 뿐인데도 무겁고 더웠다. 이 장비를 착용한 채 실제 훈련을 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을 생각하니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장비를 구경할 때는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그 장비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무게는 우리가 잠시 체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일정을 마친 뒤 PX에 들러 간식과 필요한 물건을 사는 소소한 재미도 누렸다. 힘든 일정 속에서는 이런 작은 시간도 꽤 큰 즐거움이 됐다.

4일 차|6월 27일 토요일
파로호전시관 – 붕어섬·미륵바위 – 아침햇살수련원

파로호전시관에서 교육을 들은 뒤 본격적인 도보 일정이 시작됐다. 이날도 꽤 긴 거리를 걸었는데, 작년보다 햇볕이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점심으로 나온 우렁강된장과 제육볶음은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먹은 식사 중 가장 맛있었다. 많이 걷고 난 뒤 먹어서 더 맛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날 걷는 동안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붕어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커피차였다. 힘들어하는 대원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커피차가 있다”라고 말하면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음료뿐 아니라 소떡소떡까지 준비돼 있었다. 평소라면 간단한 간식이었겠지만, 뜨거운 길을 걸어 도착한 우리에게는 충분한 보상이었다.

아침햇살수련원에서는 군가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됐다. 스태프로 참여했기 때문에 레크리에이션에는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7조의 인원이 부족해 조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우리 조는 가위바위보를 잘한 덕분에 자두도 받을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에 오면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자두 한 알에도 진심으로 기뻐하게 된다. 작은 것에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시간이었다.
군가 경연에서는 ‘전선을 간다’를 불렀다. 1등을 한 조가 노래를 정말 힘차고 멋있게 불러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함께 군가를 부르고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니, 힘들었던 걸음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5일 차|6월 28일 일요일
평화전망대 – 제2땅굴 – 노동당사 – 백마고지기념관 – 열쇠신병교육대대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
아침에는 수련원 주변을 약 한 시간 동안 걸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햇볕은 이미 뜨거웠다. 이후 버스를 타고 평화전망대와 제2땅굴로 이동했다. 전날 숙소의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기 어려워 춥게 잔 데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작년에 제2땅굴을 이미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노동당사에서는 철원 지역이 겪은 전쟁의 역사를 들었다. 노동당사는 1946년 세워져 6·25전쟁 이전까지 주민을 통제하고 탄압하는 장소로 사용됐으며, 전쟁 중 주변 시가지는 대부분 파괴됐다. 현재는 건물의 뼈대만 남아 있고 벽과 기둥 곳곳에는 포탄과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오래된 건물처럼 보였지만, 건물에 남은 상처의 의미를 알고 나니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국토대장정의 의미는 단순히 긴 거리를 걷는 데 있지 않았다. 우리가 걷는 길 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배우고, 지금의 일상이 누구의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대원들도 이 길을 걸으며 비슷한 마음을 느꼈기를 바랐다.

점심 식사 후에는 백마고지기념관을 찾았다. 백마고지는 작년 국토대장정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였다. 길게 이어진 태극기 길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었고, 전적비에 설치된 시계탑은 올해도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세 개의 시계는 각각 국군의 승리를 의미하는 ‘10시 15분’, 6·25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뜻하는 ‘6시 25분’, 그리고 참전 부대를 상징하는 ‘9시 5분’에 멈춰 있었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고 그 시곗바늘이 다시 움직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는 설명이 작년에 들은 것인데도 기억이 났다. 멈춰 있는 시계를 바라보며 우리가 평화라고 부르는 일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과 기다림 위에 존재하는지 생각했다.

이후 남방한계선을 따라 걷는 일정이 이어졌다. 작년에는 비에 신발이 젖어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길이었다. 올해는 스태프라 가방을 메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햇볕은 다리가 따갑게 느껴질 만큼 뜨거웠고, 걷는 중간에는 어지러울 정도였다.

뒤처진 대원들과 함께 걷는 동안 차량에 타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지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원들 앞에서 먼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발톱에 멍이 든 대원도, 여러 개의 물집이 잡힌 대원도 끝까지 걸었다. 그런 대원들을 보면서 스태프인 내가 먼저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같이 스태프로 참여한 도균이가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마지막까지 걸을 수 있었다. 함께 힘든 길을 걸어본 뒤에는 단순한 동료보다 조금 더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것 같다. 그날만큼은 우리도 서로에게 전우가 되어주었다.

이 길을 걸으며 내 체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학사장교에 합격한 뒤 학기마다 광운대학교 학군단 단장님과 면담을 하고 있다. 한번은 단장님께서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셨고, 나는 체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답했다.
단장님께서는 나와 대화를 나누어 보면 군인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은 좋지만, 체력은 곧 자신감이라고 말씀하셨다. 체력이 부족한 지휘관이 어떻게 병사들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말도 덧붙이셨다. 마음가짐이 좋다는 칭찬보다 그 뒤의 말이 오랫동안 남았다. 내년에 군인이 된다는 사실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는 몸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열쇠신병교육대대에 도착하기까지 약 10분 정도만 남았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한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견디며 걸었는데, 마지막에는 장대비까지 맞게 된 것이다. 우비를 입었지만 옷과 신발이 모두 젖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안에서 물이 나올 정도였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다면 뽀송하게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쏟아진 비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날 점호 시간에 들은 단장님의 말씀이 그 모든 상황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

“피하지 않으면 두렵지 않다. 피하려고 할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

비를 맞으며 도착한 날 들은 말이어서인지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그날은 비를 피하려고 고개를 숙였지만, 앞으로 마주할 어려움 앞에서는 스스로 고개를 들고 맞설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군 생활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잊지 않고 싶은 말이었다.

6일 차|6월 29일 월요일
평화누리 – 임진강역 – 애기봉전망대 – 소통의 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공기는 습했고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임진강역까지 걷고 난 뒤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전날 응급대장님이 사주신 뻥튀기에 아이스크림을 올려 먹었는데, 완벽한 조합이었다. 땀 흘리고 난 뒤 먹어서인지 더 맛있었다.

애기봉 전망대에서는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먹었다. 전투식량은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북한 지역이 선명하게 보였다. 작년에는 날씨가 흐려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멀리까지 잘 보여 신기했다. 눈앞에 보일 만큼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북한은 가까우면서도 먼 곳처럼 느껴졌다.

저녁에는 소통의 밤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조별 발표를 통해 함께한 6일을 돌아보았고, 삼겹살을 먹은 뒤 2부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스태프들은 별도로 준비한 무대가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다행히 스태프 중 학교 응원단장 경험이 있는 분이 있어 분위기를 뜨겁게 이끌어주었다. 준비 없이 올라간 무대였지만 모두가 즐거워해 다행이었다.

마지막에는 모든 참가자가 둥글게 둘러서서 손을 잡고, 휴대전화 플래시를 켠 채 멜로망스의 ‘선물’을 함께 불렀다.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 같아
자그마한 모든 게 커져만 가
항상 평범했던 일상도
특별해지는 이 순간”

이 노랫말이 그날만큼은 사랑에 관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웃고, 걷고, 서로를 챙기며 보낸 6일이었다. 평범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던 방학의 일주일이 특별한 기억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두운 공간에서 하나둘 켜진 불빛을 바라보며 함께 노래하던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7일 차|6월 30일 화요일
유엔군초전기념관 – 서해수호관 – 천안함 – 해단식

유엔군초전기념관에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미 장병들과 함께 걸었다. 작년에는 미군 장병의 성조기 패치를 받지 못해 아쉬웠기 때문에, 올해는 기회가 된다면 꼭 받아보고 싶었다.
짧은 영어로 용기를 내어 미군에게 패치를 부탁했고, 패치를 받을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두 개를 받게 되어, 미인계로 두 개를 받았다고 농담하며 하나는 현수 오빠에게 나누어주었다. 작은 패치였지만 한미 장병과 함께 걸었던 시간을 기억하게 해줄 좋은 기념품이 됐다.

서해수호관과 천안함에서는 서해를 지키다 희생된 장병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천안함 46용사 추모비도 직접 바라보았다.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날이 2002년 6월 29일인데, 바로 다음 날인 6월 30일 서해수호관을 방문해 설명을 들으니 기분이 더욱 묘했다. 제2연평해전의 여섯 영웅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군인이 될 수 있을까.’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제 군인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순간에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해수호관에서 마주한 이야기는 내가 선택한 길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해단식을 진행했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동시에 이제야 가까워진 사람들과 조금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집에 가고 싶으면서도 헤어지는 것은 아쉬운, 서로 반대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만큼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내게 가까워져 있었다.

다시 찾은 마음

이번 국토대장정은 잠시 구석에 내려놓았던 마음을 다시 꺼내어 바라본 일주일이었다. 내가 왜 군인이 되고 싶었는지, 처음의 결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래 중 ‘아름다운 나라’라는 곡이 있다.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 가진
이 땅 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내가 군인이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걸으며 바라본 바다와 하늘도 참 아름다웠다. 내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번 학기에 육군사관학교에서 ‘국가안보론’과 ‘국제분쟁의 이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국가의 안보가 결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교육과 근로, 납세와 국방의 의무도 결국 국가가 존립하고 국민의 일상을 지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과 선택의 자유 역시 누군가가 나라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군인이 되고 싶었다. 거창한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받은 안전과 자유, 이 땅에서 꿈꿀 수 있었던 시간에 조금이나마 책임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군 생활이 3년으로 끝날지, 그보다 길어질지는 알 수 없다. 전역한 뒤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취업을 준비하며 후회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내가 좋아했던 마이크를 잡는 길이 문득 그리워질 수도 있다. 여전히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남아 있다.

하지만 고민이 있다는 것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끝없이 확신을 갖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를 위해 20대의 3년을 보내는 일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군인이 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체력과 능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어려움 앞에서 피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군인이 되고 싶다.

‘기억의 선을 모아, 평화의 내일을 잇다.’

이번 국토대장정의 주제처럼, 전쟁의 기억을 따라 걸었던 길은 내가 걸어갈 미래의 길을 다시 이어주었다. 훗날 내가 선택을 후회하거나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 온다면 이 글을 다시 꺼내 읽고 싶다.

나는 이 길을 가볍게 선택하지 않았다. 충분히 고민했고, 다시 걸어보았고, 그럼에도 이 길을 선택했다. 앞으로는 이 선택을 증명하며 걸어가려 한다. (konas)

서울여자대학교 4학년 이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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