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호국보훈기념] (59) 노들섬 이원등 상사 추모비

Written by. 인턴기자 김 민   입력 : 2026-09-29 오전 10:21:15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우리는 흔히 일상생활에서 “남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주자”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면, 그러한 다짐을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노들섬에는 이러한 이타적인 정신을 보여준 한 군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이원등 상사. 그는 무척이나 가난했던 어린 시절, 미군 부대에서 처음 일손을 도운 것을 계기로 영어를 배웠고 이 덕분에 훗날 육군에서 카투사로 일하게 되었다.

 ▲ 강하 복장의 이원등 상사 동상 전경 ⓒkonas.net

 

이후 군에서 계속 복무하기로 했던 이원등은 단기하사로 지원했고, 피나는 노력 끝에 제1 공수특전여단에 성공적으로 입단, 공식적으로 특전사가 되었다. 이렇게 특전사로 활동하던 이원등은 영어 실력을 살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여기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낙하산 정비 교육을 이수, 귀국 후 낙하산 및 강하 전문 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한국 최초의 스카이다이버라는 영예로운 별명도 얻게 된다.

그렇게 1966년 시점에서 이원등 상사는 일반인은 평생 한 번 해 보기도 힘든 고공 강하를 무려 152회나 실시한, 국내 최고의 고공 강하 및 낙하산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뛰어난 경력을 살려 강하를 지도하는 교관으로 활동했는데, 1966년 2월 4일도 어느 날과 다름없이 한강에서 강하 훈련이 실시되었다.

해당 훈련에서는 이원등 상사를 포함해 총 6명이 강하했는데, 이 중 1명이 낙하산을 펼쳐야 할 고도가 지났음에도 낙하산을 펼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한 이원등 상사는 자신의 낙하산도 펴지 않은 채 즉시 해당 대원이었던 김영만 중사에게로 다가갔고, 균형을 잃고 흔들리던 김영만 중사의 예비 낙하산을 전개시켜 주었다. 그렇게 예비 낙하선을 펼친 김영만 중사는 강하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필 이 과정에서 예비 낙하산이 이원등 상사의 오른팔을 강타했고, 강한 충격으로 팔이 골절된 이원등 상사는 자신의 낙하산을 펼치지 못한 채 얼어붙은 한강 위로 추락해 순직했다. 당시 이원등 상사의 나이는 고작 만 30세였다.

이렇게 국내 최고의 고공 강하 전문가였던 이원등 상사는 동료를 구하고 순직하였지만, 그의 행동은 모두에게 진정한 전우애와 희생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일화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이원등 상사의 희생에 관해 설명하는 명판과 당시 상황을 묘사한 철제 부조  ⓒkonas.net

 

특히, 최근 들어 개인주의가 득세하고 점점 더 매정해지는 사회를 바라보면, 이원등 상사의 희생은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 이원등 상사를 기억하며, 내 일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기보다는 다른 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을 제안해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 민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9.29 화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
한반도 안보 지형의 지각변동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첨단 ..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베트남에 북한군 참전 기념물 설치…北국방성, 제막식 참석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북한 인민군 참전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