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 판문점 도끼만행'을 31년만에 되새기는 까닭
그토록 끔찍한 '8·18 판문점 도끼 만행'이 북한군에 의해 자행된지도 올 8월로써 꼭 31년이 되었다. '8·18 판문점 도끼 만행'은 북한의 도발에 관한 한 오직 강경 대응만이 굴복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8·18 판문점 도끼 만행'이란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북한군들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 등으로 무자비하게 찍어 죽인 사건을 말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섞여서 관리토록 되어 있었다.
당시 유엔군 측은 공동경비구역 내 '자유의 다리' 남쪽에 위치한 미루나무가 무성해 북측을 관측하는데 장애가 된다해서 가지치기에 나섰다. 한국과 미국 장병들은 노무자 5명을 인솔해 미루나무 가지치기에 착수했다. 그러자 북한 장교 두 명이 나타나 작업 중단을 요구했고 양측 사이에는 말다툼이 벌어졌다.
바로 그 때 트럭을 타고 몰려와 주위를 서성대고 있었던 북한군 20여명이 "저놈들 죽여라"라고 고함과 함께 달려들어 도끼·몽둥이·삽·곡괭이 등으로 한·미 장병들을 닥치는 대로 내리쳤고 짓밟았다. 삽시간에 미루나무 밑은 피로 흥건했다. 미군 장교 두 명이 피살되었고, 한국군 장교 1명과 병사 4명 그리고 미군 병사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북한군의 참혹한 살육을 목격했던 한국인 작업반장 곽희환씨는 참변 직후 치를 떨었다. 그는 "인간의 짓이 아니었습니다. … 아직도 이렇게 몸이 떨립니다"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미국은 즉각 북한의 '판문점 만행'을 용서할 수 없다며 단호히 해명과 배상을 요구했다. 미국은 만약 북한이 거부한다면, 강력한 보복을 단행한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미국은 대북 보복 공격준비의 일환으로 일본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북한 해역으로 항진시켰고, 대형 공중 급유기 15대를 오키나와 미 공군기지로부터 도쿄의 요코하마 기지로 이동시켰다. 수틀리면 북한을 때리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어 미국은 8월 21일 아침 B52 폭격기와 헬리콥터 등 26대를 출격시킨 가운데, 한미 양국군 300명을 판문점에 투입시켜 문제의 미루나무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북한측은 아무런 항의나 군 출동 없이 쥐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계속 북한측에 해명과 배상을 요구했다. 결국 겁에 질린 김일성은 친서를 통해 "유감 표시"를 전했다. 미국 측에 사과한 것이다.
북한의 도끼 만행에 대한 미국의 초강경 압박과 김일성의 겁먹은 유감 표시는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서는 유화적인 설득이 아니라 강경한 대응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 그것이었다.
미국의 대북 강경 대응을 계기로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얕잡아보고 무자비하게 도발해 오던 판문점 테러를 일체 중단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조용하다.
하지만 김일성의 사과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미군을 상대로 걸핏하면 판문점 언저리에서 미군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거나 매복 공격으로 살해하기도 했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이 월남전에 묶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미군에 대한 도발을 마음놓고 자행했던 것이다.
북한군은 1966년 4월 14일 판문점 비무장지대에서 매복해있다가 드리쿼터를 타고 판문점으로 가던 미군을 습격해 미군 2명과 한국인 카투사 2명을 살해했다. 하지만 미국은 당시 월남전 확전으로 한반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강경히 맞서지 못했고 그냥 넘겨버렸다.
1968년 1월 23일 북한군은 미국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를 동해상에서 납치했다. 그러나 미국은 월남전 전세의 악화로 미군함이 공해상에서 납치되는 치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복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북한의 판문점 도발은 미군 측의 무기력한 수수방관 속에 갈수록 대범해지고 기고만장해져 갔다. 북한군의 도발은 1975년 7월 15일의 미군 소령을 짓밟아 중상을 입혔으며 다음해에는 8·18 도끼만행으로 치달았다.
미군의 무기력한 대처와 더욱 거칠어져 간 북한의 도발은 북의 호전적 발작 생리를 드러냈다. 상대편이 약하게 나오면 마음놓고 마구 짓밟고 나서는 도발 작태,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강경히 맞섰다. 이 때 미국은 월남에서 철수한 터였으므로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을 계기로 북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작심했다. 미국은 300여 명의 한·미 양군을 판문점에 다시 투입시켜 미루나무를 베어버리면서 싸움을 걸었고, 북한이 까불면 때려부술 각오로 임했다. 미국은 이미 지적한 대로 항공모함과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끝장을 낼 태세였다.
여기에 김일성은 겁을 먹고 굴복,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북한은 판문점에서 미군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미국의 대북 강경 대응이 효과를 거둔 것이고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속언을 상기시켰다. 판문점 도끼 만행이 남긴 교훈이다.(konas)
정용석(단국대 정외과 명예교수·재향군인회 안보정책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