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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8.15 大韓民國建國史의 진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선구자들 스스로도 '임시정부'를 광복 후 정식 건국될 대한민국의 '준비정부'로 정의했다.
Written by. 문영일   입력 : 2009-08-12 오후 9: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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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200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 63주년,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에 좌경화된 일부 야당국회의원들이 '광복절에 대한민국건국기념을 함께할 수 없다'면서 참석을 거부했다. 그런가하면 '잃어버린 10년'의 한 대통령(고인)은 최근에, 자기 스스로 대통령까지 한 "이 나라의 건국은 이미 단군왕검이 한 것으로 대한민국을 건국이라 말 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은 정통성이 없다"고 부정했다.  그 시기 또 한사람의 (DJ라는)대통령도 최근에 한술 더 떠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정권(정부)교체를 해야 한다, 이 나라를 지금 힘으로 부정해야한다"고 선동까지 하면서, 해괴한 논리들로 대한민국의 건국과 그 존립을 부정하고 있다.

 그와 함께 좌익매체와 종북주의자들도 마치 어떤 하나의 지령에 따라 하듯, 하나같이 같은 내용의 문장과  목소리로, "친일파 주류의 대한민국수립을 건국이라 말할 수 없다", "임시정부가 89년 전에 이미 건국되었는데 그 전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을 새삼 건국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8.15에는 오로지 광복절만을 기념해야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들 공산주의자들과 종북주의자들은 마치 북한공산정권이 한반도 유일정통국가임을 내외에 선전하는, 이른바 다른 하나의 공산주의 적화통일 혁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광복과 함께 건국된 대한민국이야말로 우리 오천년 한국역사의 현대화 산물이요, 일제 36년간 국치를 벗고 거족적인 피땀으로 쟁취한 민족사적 산물이라는 역사적 진실임을 필자는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되새겨보고자 한다. 

◯  대한민국 건국사는 대한제국시대부터 시작한다 

   1894년의 동학혁명이후 95년에는 청일전쟁과 갑오경장, 그리고 국모 시해사건인 을미사변에다가 강제단발령이 시행되자 온 국민의 대일(對日)감정이 폭발하면서 1896년 1월(~9월)에 재야 유생들이 을미의병전쟁(乙未義兵戰爭/제1차 의병전쟁)을 일으켰다. 같은 해, 서재필(徐載弼)을 대표로 독립협회가 창립되었는데, 중심사상은 한마디로 주권독립운동, 자유민권운동, 자강개혁운동이었다. 이는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는 공산주의혁명이론이 한반도에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그 시절부터, 민주주의 대한민국건국의 원조사상이 되었다. 

 한편 제국주의 열강의 번견(番犬)이 된 일제가 1910년에 한국주권을 완전히 강탈하여 식민지화함으로써 우리민족이 나라를 잃게 되었다. 그러기에 이 민족이 식민지 상태로 부터 광복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체제의 정부가 수립된다면 그것은 마땅히 새로운 국가가 건국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기(1907년)에 애국지사들이 도산 안창호를 대표로 ‘신민회’를 창립하고 독립협회정신을 이어받아 활동하였는데, 이들의 중심전략사상 또한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군주제도가 아닌 민주주의 공화정체의 독립자주국가건설 즉 대한민국건국이었으며, 당장의 최고전략으로는 독립군기지에 의한 무력광복전쟁이었다. 그리하여 서간도에 한인 집단이주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착수한바 있었다.(광복당시에는 상주인구가 100여 만명이 되었다)

 때마침 지나(China)에서는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중화민국(中華民國)이 건국(1912)되었고, 러시아에서는 1917년,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혁명으로 소련이 되고 이어서 코민테른이 성립되어 국제적인 제국주의 타도운동이 유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런가하면 1918년에 연합국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전후처리 광정에서, 우리의 3.1운동에 직접영향을 미친, ‘윌슨의 평화14원칙’(식민지침략을 반대하는 민족자결원칙과 제국주의 종식, 반전평화를 위한 국제군비축소, 그리고 집단안전보장을 위한 국제연맹창설)을 주장하였다.
 
◯ 대한민국건국을 위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과 건국운동 

   이러한 국제정세, 특히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에 고무된 우리선구자들은 1919년, 국내외에서 일제히 거족적으로 3.1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동시에 각 지역마다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총괄하기 위해 지역정부를 성립시켰다. 러시아령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에서 정부수립공포(3.17), 지나의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선포(4.13), 국내에서 4월 23일에 한성정부(漢城政府)를 선포하였다.

 1919년 9월 6일에는 국내외 선구자들이 합심하여, 상해에서 이들 모든 지역정부를 아우르는 통합임시정부 즉 이승만 한성정부총재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을 만천하에 공포하였다. 여기에 민족진영은 물론 공산주의자인 이동휘가 국무총리로 그리고 좌익의 여운형, 김규식 등도 모두 참여하는 거족적인 망명정부가 성립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선구자들은 이 정부를 광복후 정식으로 건국될 대한민국의 '준비정부'로 정의하고 '임시정부(임정)'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의 이 임정을, [1948년 8.15 대한민국건국] 때까지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임정은 1919년 11월 상해에서 수립된 이후 1945년에 환국할 때까지 26년간 상해시대(1919~32), 피난이동시대(1932~40), 중경시대(1940~45)를 거치면서 우리민족과 민족역사의 중심에 서서 항일광복전쟁을 지도하였고, 말기에는 광복과 동시에 뒤 따를 대한민국(정식)건국을 위해 그 건국강령을 준비하였다. 임정의 외교기본방략 즉 국가외교안보전략(사상)은 ‘한국의 광복을 국제적으로 승인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시로 세계열강에 호소하여 ‘우리 임정의 국제적 승인을 획득하고 국제연맹에 가입’하려고 외교노력을 집중해 보았으나, 광복되던 그날까지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구가 국무령으로 선임(1926)된 뒤 1931년 7월에, 일제의 모략에 의한 소위 ‘만보산사건’(한-중국민간 반목)과 일제의 만주침략에 의한 만주괴뢰국성립(1932.3)으로 중국은 만주를 잃고 우리 한국은 그토록 기대했던 '만주광복전쟁군사기지'를 잃게 되었다. 그러자 김구와 임정은 국면전환을 위해 무력특무작전(武力特務作戰-테러전)을 실시하였는데, 특히 이봉창의사의 일왕폭사미수사건(일본 동경)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폭탄습격(지나 상해)의거를 감행함으로서, 장개석과 국민당정부(國府)는 한국인들의 대일항전의지에 감명을 받고 임정을 승인직전수준으로 격상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를 맞이한 한국광복전쟁전선에는 크게 네 종류의 운동노선이 존재하였다. 하나는 반일반공주의에 투철한 민족주의(비타협민족주의)이고, 그 둘은 공산주의이고, 그 셋은 중립노선주의(어쩌면 기회주의)이고, 끝으로 무정부주의였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소련과 레닌으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아 그들(코민테른 ; 국제공산당)을 상전으로 모시고 활동하였다. 이들의 특징은 초기에 공산주의를 광복운동의 한 방편으로 활용했으나 날이 갈수록 항일광복운동보다 공산혁명에 치중하였으며, 광복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통일전선전략전술을 구사하였다가 목적달성 후는 민족주의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상호간에도 종파분자라는 이름으로 가차 없이 숙청(자유시참변 등)하였다. 그래서 민족주의 유지들이 이들을 일컬어 ‘어머니를 팔아먹고 할아버지(조상)도 바꾸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러기에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계열 유지들은 특히 공산주의자들과 비타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구의 한독당과 임정은 1939년 7월, 국부와의 항일전쟁협조를 위해 ‘군사특파단’(軍事特派團)을 조직, 국부군에 파견하기도 하고 자체 기획으로 실행하기도하면서 서안(西安, 당시 거류민 10만)에 광복군군사기지를 조성하고1940년 8월에 총사령관을 이청천장군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총사령부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1941년 11월 25(28)일에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공포하였는데, 이는 복국계획과 3단계로 추진할 건국계획, 즉 일단 광복단계가 완성되면 정식으로 대한민국을 새롭게 건국한다는 임정목표였다. 또한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12.8)하자, 임정은 즉시 12월 10일에 ‘대일본선전포고’를 하면서, 중-미-영-소 등에 대해 한국임정승인과 참전을 요구하였다.

 한편 그동안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은 연합국이 된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 국무성당국이 한국문제(승인과 연합국참전문제 그리고 독립문제 등)를 고의로 소원시(疎遠視)해 왔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국제공산주의자들의 방해조차 극복하면서, 상해임시정부의 구미외교부라는 기치아래 괴롭고 외로운 외교전을 꾸준히 전개해 온 이승만은, 이번에는,  ‘한인참전계획’(Korean Projet ; 교포청년의 자유한인부대편성 미군에 참전→ 점차 미군과 항일연합작전실시→ 한반도진격계획)을 발의, 100여명의 지원자들이 OSS 훈련을 받아 종전까지 참전을 대기하고, 그 일부가 1943년 봄부터 미얀마전선 등에 배치되어 미군과의 연합작전에 참가한바 있다. 동시에 이승만은 꾸준히 미 국무장관에게 ‘한국에 대한 소련의 야망’을 경고하면서, ‘지금 미국이 대한민국 임정을 승인해 주지 않으면 전후 한반도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불가피한 정세가 초래될지도 모른다’고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복잡한 국제안보환경가운데 굴하지 않고 광복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43년 11월에 '카이로선언'이 공포되었는데,  전후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되 '적당한 시기에'라는 단서가 붙어 있어 임정과 우리민족 모두는 연합국에 의한 독립보장을 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의심스러운 '신탁통치'는 결단코 반대하는 안보외교전략을 적극 전개하였다.

그와 동시에 연합국참전계획의 일환으로, 김구의 임정과 광복군 또한 심리전공작대(Korean National Army Liaison Unit)를 파견하여 1945년 9월까지 영국군과 연합작전하였고, OSS요원을 파견하여 미군과도 함께 연합작전을 추진하였으며, 말기에는 연합군과 함께 제주도를 거쳐 한국본토상륙작전도 계획하였다. 이리하여, 실천된 것은 비록 일부작전 또는 소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연합국군과의 연합작전이 본격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되려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조기(?)에 종전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15일에 드디어 광복의 그날을 맞이하였으나, 광복에 이어 곧 대한민국이 건국될 줄 믿었던 우리 국민에게 신탁통치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즉시 우리민족 전체는 이를 반대하여 궐기하였는데, 전 민족궐기 불과 3일 뒤에 남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일제히 소련의 지령에 따라 찬탁으로 급반전하였다. 이 사건은 바로 소련의 한반도위성국화(衛星國化)전략에 따른 북한괴뢰공산정권성립의 전조가 되었고, 남한에서는 단독으로라도 신탁통치 아닌 자주독립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건국해야한다는 사명과 여론을 고취시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소련군은 8월 9일부터 북한에 진주하면서 사전에 군정치장교들이 완벽하게 계획한대로, 지방(道)주둔민사사령부(소련군정의 위장명칭) 관장하에 지방인민위원회를 민족주의자로부터 탈취하여 -조만식 등도 숙청해 가며- 공산주의자로 재조직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9월에 스탈린의 비밀지령에 따라 친소단독공산정권수립을 위해 사전에 모든 전략이 주입된 -4년여, 소련 88특수전여단에서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소련정치장교에 의해 북한적화정권 창출전략과 로드맵을 완성한- 김일성(그룹)을 불러들여(9월), 불과 한 달만(10월)에 조선공산당(분국)을 조직해 주고 동시에 북한임시정권행정수반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허가이를 비롯한 수백 명의 소련통역관 겸 감시요원을 정권에 배치하고, 중공의 한반도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연안파 김두봉을 부 수반으로 포섭하여, 1946년 2월에 일직이 -남한은 민주주의절차에 따라 중론을 모아가며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동안- 북한단독공산괴뢰정권(소련위성국가)을 성립시키고 서둘러 소위 공산주의 혁명, 즉 친일파숙청, 지주숙청과 추방으로 무상몰수 무상분배, 인민공산화정신개조 등, 남한과는 협력도 없이 북한단독으로  정권통치행위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북한괴뢰집단(당시 호칭)의 남한적화정치음모와 군사공작, 그리고 김일성과 경쟁관계에 있던 박헌영의 스탈린에 대한 충성도를 과시하기위한 반란과 온갖 파괴공작 등을 진압하면서, 그리고 김구의 (잘 못 생각한) 단정반대를 극복하고 대다수국민들의 지지로, 광복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에,  초대 대통령을 이승만으로 하는 대한민국은, 유엔을 비롯한 전세계의 지지와 승인을 받아 당당하고  새롭게 건국된 것이다.

그러자 소련의 스탈린은 전세계공산주의혁명을 냉전 즉 간접침략으로 전개하다가 서방자유진영의 봉쇄전략으로 진전이 없자, 그 돌파구를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열전으로 찾아, 중공과 김일성괴뢰정권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전면적인 직접침략(1950.6.25)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그 과정에 북한은 동족에게 결코 용인할 수없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서 오늘날 이렇게 지리, 역사적으로는 물론 정서적, 사상적으로도 완전히 분열된 나라와 민족이 되고 만 것이다. 

어찌 그 뿐이랴, 북한은 지금도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더욱이 북핵과 전쟁으로 직접 대한민국을 위협하면서, 안으로 종북주의자들에 의하여 정부(국가)전복의 모략전을 병행하면서, 남한에 소위 혁명과 재남침이 가능한 만조의 시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0 북한민주화를 위한 전방위평화공세를 전개해야한다.

김일성은 생전에 북한이 '이밥에 고깃국도 못 먹는 나라'라고 스스로 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수십 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 신문들은 연이어 더욱 처참해진 북한실상을 전하고 있다. 한 예로, "압록강 하구 중국 단둥(丹東)에는 '인간 사파리'라는 관광이 성행한다.

북한 섬 우적도에 접근해 주민들에게 먹을 것(담배 소시지 주스 등)을 던져주고, 그것을 주워 먹는 모습을 외국관광객들이 즐기는 관광이다. 국경을 넘어서 오늘도 끊임없이 탈북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나 그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뒤에 남아 이렇게 동물 취급을 받고 있다" 고.

우리 온 한국민족이 근현대 100년을 피땀 흘려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북반부를 이 북한의 김씨왕조가 불법으로 점유하여 이제 3대째 세습 전제왕조로 이어가려하고 있다. 이것이 공산주의자와 종북주의자들이 대한민국건국과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무조건 결사적으로 옹위하려는 그들의 소위 '조국이라는 나라'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5000년 전제왕조체제의 멍에를 벗고 건국되었으며, 몽매하고 가난했던 시대를 천지개벽하여 오늘날 선진국대열에 당당히 들여서고 있는, 그리하여 앞으로 우리민족의 남북통일과 번영을 책임져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우리의 나라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召命)은 북한의 민주화가 통일보다 우선하는 과제가 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금년에도 8.15는 다가오고 있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건국의 초심으로 돌아가 우선 북한의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해 전 민족의 뜻을 모아 그리고 국력을 다해 적극적인 민주화평화공세를 전개하자. 북한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민족통일을 성취해 나가는 것이 바로 한민족통일의 순리인 동시에, 외국으로부터 다시는 침략 받지 않는 나라, 영구히 번영하는 나라 만들기의 역사적 사명이기 때문이다.(konas)

문영일(예.육군중장, 군사연구원연구위원, 전 육본작전참모부장 군단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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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용    수정

    건국이라는 단어를 쓰다니요... 우리나라에는 광복절이라고 표현을 하여야합니다. 건국?? 몇년도를 말하는건지요? 1945년 8.15 광복절 일본의 개념의 1948년8.15를 건국절로 하더군??</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10-18 오전 6:36:30
    찬성0반대0
  • 김충국    수정

    대한민국 &amp;#51115;고 큰전쟁속에 가장 많이 격은 날아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국가와 민족 나라를 지키신분들을 세계적 변화하는 지긱인들은 21세기철학이무인가를?국민에 소상 히 세계적 국가적 국민에게 지상 모든 지면을 통해공개바란다, 대한민국!</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

    2009-08-13 오후 4:11:43
    찬성0반대0
  • pakwj    수정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사실그대로 전후세대나 청소년에게 역사교육이되어야한다 . 자국의 역사를 모르거나 역사가없는 민족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제역사가 있음에도 제대로모른다니 유감스럽기 이럴때가 없다. 정규과목 필수과목으로 교육을해야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

    2009-08-13 오전 10:52:54
    찬성0반대0
  • 송암   

    방대한 자료 연구를 통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사실이 이럼에도 대한민국이 유일합법 정부가 아니라고 하는 논리가 젊은이들 속에 파고드니 큰일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8-13 오전 10: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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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2.2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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