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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歲 강우규義士 의거 재조명

강 의사 의거 9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다음달 2일 서울역 광장서 기념행사도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9-08-26 오후 4: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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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하 1919년 3·1운동 직후인 9월2일 당시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기 위해 남대문 역(현 서울역)에 도착한 사이토 마코도(해군 대장)에게 폭탄을 던져 사이토 총독과일제 관료 37명 등에게 부상을 입히고 체포돼 이듬해인 1920년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강우규 의사 의거 9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한일병합 직전인 1910년 중국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 이토히로부미 척살과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의 윤봉길 의사 의거(義擧와 더불어 '3의사'로 불리어 지는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특히 그가 65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바쳐 의거를 결행했다는 데서 독립운동사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독립의거들이 중국 상해를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 이루어진데 비해 강 의사의 의거는 국내에서, 그것도 서울 한복판인 서울역에서 거행되었다는 사실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의거에도 불구하고 강 의사의 의거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가 평안남도 출신인데다 일직 가계의 절손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 25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우규 의사 의거 9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술회의. 기념사업회 회원 등이 참석해 강 의사의 생애와 의거 당시 상황 등에 대한 발언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konas.net

강우규 의사(義士)기념사업회(회장 강인섭, 전 국회의원)와 동아일보는 25일 강 의사 의거 90주년을 1주일 여 앞두고 그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날 학술회의에서는 그의 생애와 사상, 고령의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 부임하는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한 의기를 살펴보고 더불어 강 의사의 동상 건립 등 새로운 운동이 이미 전개되고 있음도 알려 부족한 가운데서도 국가적인 움직임도 일고 있음을 일깨웠다.

윤병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는 '강우규 의사의 생애와 의거'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강 의사의 의기에 찬 폭탄 투척과 관련한 내용을 알렸다.

윤 교수는 서울 남대문 의거와 관련해 3·1만세운동 이후에도 일제는 총포로 탄압하며 식민지 통치를 그대로 계속하려는 술책아래서도 '문화정치'시행을 선전하며 해군대장인 사이토 총독을 임명, 부임케 했다며 "이 소식을 접한 강 의사는 그대로 두면 또 불의와 기만으로 병합해 가혹한 식민통치를 그대로 용납하는 것이 돼 3·1운동의 의미가 말살되는 것이라고 판단, 노인동맹단 대표가 돼 서울에서 사이토 총독을 폭사 응징하겠다고 결의했다"고 밝혔다.

 ▲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 ⓒkonas.net

이후 서울 안국동에 임시거처를 정하고 구체적인 거사계획을 세워 9월2일 사이토 총독이 남대문(현 서울역)역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확인, 8월28일부터는 남대문 역에 가까운 남대문통 5정목 60번지에 위치한 여관으로 옮겨 실행계획을 세운 뒤 9월2일 오후 5시 사이토가 인천에서 기차로 역에 도착해 귀빈실에 잠시 쉬었다가 쌍두마차에 올라타는 순간 귀빈실 문전 인파속에 대기하고 있던 강 의사가 명주수건에 싼 폭탄의 안전핀을 뽑으며 총독의 가슴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따라서 강 의사가 던진 폭탄은 3·1운동을 추진한 우리 민족을 대표해 식민통치를 그대로 강행하려던 일제에 보낸 정의의 의탄(義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 의사가 던진 폭탄은 마차 앞 7보 거리에서 터져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37명의 일본 관헌들이 부상을 당했지만 사이토 총독은 군복과 혁대, 대검에 파편이 스쳤을 뿐 무사했다. 결국 강 의사는 이후 한인 순사에 의해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이듬해 1920년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이 날 세미나에서는 특히 당시 강 의사의 의거에 주목한 것은, 폭탄사건의 '범인'이 환갑을 넘긴 65세의 노인이라는 점이었다고 했다. 이 날짜 <매일신보>에는 강 의사의 얼굴사진이 공개 됐는데, 흰 두루마기 차림에 머리칼과 수염 모두 흰색이었다고 했다.

한편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60년 당시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남자가 51.1세, 여자가 53.7세였으니 의거 당시 강 의사의 연령은 대단한 고령에 해당되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날 세미나에 앞서 강인섭 강우규 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은 그동안 기념사업회가 숙원사업으로 힘을 기울여 왔던 강우규 의사 동상 건립문제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매듭지어졌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상건립을 확약해서 예산확보까지 매듭을 지었다"며 "의거 90주년이 되는 다음 달 2일 오전 10시 서울역 광장에서 강 의사 의거를 재연하는 퍼포먼스 등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에서는 1962년 의사의 위업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동작동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했다. (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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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돌박살    수정

    대중이 무현이에게 의탄을 던질 제2, 제3의 강우규가 없었던 것이 참 통탄할 일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8-30 오후 7:30:39
    찬성0반대0
  • 동순이    수정

    강우규의사 같은분의 애국시민이 있기때문에 이나라의 역사가 지속될수있었다. 머리숙여 강의사님의 의거에 찬사를보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08-27 오전 9:31:07
    찬성0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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