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狂犬(?) 김용옥의 독설!!
돌(=도올)머리 김용옥이 독설이 드디어 광견병에 촛불을 당겼다. 23일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다.
마치 윤흥길의 소설 '장마'에 "난리를 겪고도 용케 살아남은 동네 개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극성맞은 그 포효로 마을을 휩싼 어둠의 장막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었다."라는 글귀처럼...이날 김용옥의 독설은 무섭게 밀려오는 광풍마냥 소름이 끼쳤다. 그 쇳소리 독설을 보자.
천안함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김용옥은 "천안함 발표를 열심히 들여다 봤지만 나는 0.0001%도 설득이 안 된다"고 말문을 열고는 "부하들을 다 죽인 장성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면서 "패잔병들이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앉아서 국민들에게 겁주면서 발표하는 게 구역질이 났다"고 그의 특유의 쇳소리 독설을 토해냈다.
이어 돌 김용옥은 "천안함 발표는 가설적 추론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면서 "계급장이나 떼고 나오든 할 일이지 일본 사무라이 같으면 할복이라도 할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연루된 사람들은 모조리 정보를 차단하고 있고 휴대폰도 다 수거하고 둘둘 말아서 건지고 밑에서 나온 것(어뢰 추진체)을 갖고 북한의 공격이라고 말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조사단 발표를 비하시키면서 "이게 지금 우리 민족이 원하는 것인가. 장성들이 앉아서 발표하면서 '이것은 전부 북한놈들이 한 짓이다. 프로펠러를 돌려서 이렇게 와서 빵 터지면'……. 세상에 그런 이상한, 북한이 그 정도 기술이 있다고? 미국 해군 군사력이 총집결해 있고, 가장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이지스함이 두 대나 있었고, 서해 근해에 13척의 함대가 있었다는데, 거기를 뚫고 들어와서 뻥? 이것은 진짜 웃기는 개그올시다."라고 해 천안함 사태를 우리측 조작으로 몰고 갔다.
김용옥은 "여러분들은 이런 말 하면 큰일난다"고 비꼬면서 "나도 감옥에 안 가려고 0.0001%는 남겨뒀다"고도 했다. 김은 또 "발표 닷새 전에 쌍끌이 어선 선장이 어뢰 추진체를 인양해 '천운이다'라고 했는데 그 천운이 생기기 전에는 조사단이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개판이었던 것 아니냐"며 독설을 계속했다.
김용옥은 또 "왜 하필 선거 때 터졌는지 모르겠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노태우 전 대통령 선거 직전에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이 있었다"면서 "수백명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 가운데는 아직도 내 남편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아웅산 사건도 마찬가지고 천안함 사고도 마찬가지"라면서 "정부 발표가 사실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정부가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난의 강도를 더했다.
김 씨는 4대강 사업을 겨냥해서도 "이런 짓을 하는 이들이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비난을 가하고 "세상이 허위로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김용옥의 초청강연은 봉은사 명진의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두 시간 이상 계속되는 동안 시종일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명진스님은 바로 최근 주지 임명권을 두고 조계종과의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돌 김용옥을 초청하여 천안함 관련 독설의 광대시장을 베풀어 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강연을 지켜 본 한 불자는 "큰일 났다, 강연을 듣는 동안 나 자신도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며 "김용옥의 독설이 제2의 광우병 난동으로 퍼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필자는 '학자답다'와 '학자답지 못하다'라는 의미를 이처럼 명확히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개탄해 마지 않는다.konas)
코나스 권재찬
* 아래 글은 도올 김용옥의 철학과 사고에 대해 필명 '이활(cbu2)'의 '도올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의 글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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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을 바라보며....
역사상 빛나는 정치인들의 공적은 대개 학자들의 조언과 협력에 의한 것이 많았으며 대개 그 공은 집권자에게 돌리고 자신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현실 사회에 있어서나 소위 최고의 지성인들이라 할 수 있는 학자 층의 인간들이 비지성적으로 처신한 예 또한 허다하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모든 정치인들의 과오는 예외없이 허울만 학자이지 속은 정상배 보다 못한 먹물들이 저질러 놓은 것이라고까지 할 만 하다.
예를 들어 세종조의 기라성 같은 집현전의 학자들이 전자에 속한다면 폐주 연산(燕山)이나 광해(光海)를 둘러싼 문신들이 후자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며 전자나 후자나 다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인텔리요 모두 뛰어난 두뇌와 깊은 지식의 소유자들로 당대의 쟁쟁한 학자요 선비들이었다. 이와 같이 학자들은 역사와 운명을 같이해오면서 때로는 잔인한 박해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영화로운 관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역사는 역시 지성인 대 지성인들의 투쟁 속에 굴러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논어에 나오는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라는 구절을 두고 지자(知者)는 인자(仁者)와 달리 움직이지 않는 산 보다 변화무쌍한 물을 좋아하며 정(靜)적이기 보다는 동(動)적인 존재라고 해석하는 것은 일면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사물의 이치를 살피기에 사고를 물 흐르듯 유연하게 가져야 한다 하더라도 지자불혹(知者不惑)이라는 말도 있으니 아무래도 정상적인 지성을 갖춘 학자라면 시비곡직을 제대로 가릴 줄 알 것이고 따라서 권력과 야합하여 헐값에 지식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학자가 권력에 매력을 느끼고 돈에 구미가 동할 때 지성과 권력이 야합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지성은 마비되고 비판력과 공정성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탈선 학자들이야 말로 반지성적인 지성인들이요 역사의 반역아인 것이다. 지식인의 아성은 대학사회이며 대학교수는 연구실과 강단을 지켜야하고 학생들에게 진리를 전수해야한다 학자가 연구와 강의라는 본직보다 자문이니 고문이니 전문위원이니 하는 정치인들의 수족 노릇을 더 영광으로 생각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진정한 지성인을 배출할 수 있겠는가?
학자이면서 교육자 아닌 사람도 있고 교육자 이면서도 학자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학자는 대개 교육자이게 마련이며 교육자는 학자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차차 학자들이 정치가 타입으로 변모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학자는 그의 학문에 충실하는 것을 생명으로 삼아야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자신을 <동굴 안에 묶인 아이>로 비유한 바 있으며 그것이 바로 자신을 포함한 학자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많은 학자들이 사회와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동굴 속에 들어가 바깥세상과 절연하다 시피하며 학문에 침잠하고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그것이 또한 학자의 긍지처럼 높이평가 되기도 하였다. 일보도 바깥 세상을 나가지 않은 채 지켜온 학원에서 정년퇴직한 노학자가 백발이 성성한 채 서재에 앉아있는 모습은 그대로 숭고하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학자는 언제나 세상의 스승임을 자부한다. 그들의 권위의식은 형이상학적 제왕이며 옛 제자들이 스승을 섬기는 사도(師道) 또한 그대로 왕도(王道)인 것이다.
자유당시절 사사오입(四捨五入)이란 기발한 해석도 사회의 복잡하고도 음흉한 곡절을 맛본 그 잘난 학자들 머리통에서 나온 것이며 그 외 정치인들의 주문에 따라 온갖 부정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정책을 만들어 준 것도 모두 학자들이다.
거리의 약장수라 할지라도 돈만 준다고 마약이나 독약을 함부로 팔지는 않는다 하물며 학자로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학자가 지켜야할 지조는 바로 진리이다. 진리는 무엇보다 사(邪)와 악(惡)을 불의와 부정을 배격할 수 있어 야 한다. 그것을 알고도 못 본체 듣고도 못들은 체 하는 자는 학자이기 이전에 이미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