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학살’ 중·일 격돌
일본이 지난 27일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기록한 고교 교과서 21종을 검정 통과시켜 우리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는 가운데 난징(南京) 학살에 대한 역사 왜곡까지 일삼고 있다.
최근 일본 나고야 시장의 난징(南京)학살 부인 발언과 한 출판사가가 내놓은 역사교과서에서 ‘수천에서 30만 명에 이르기까지 여러설이 있지만... 30만명은 과장된 수치’라는 표현이 등장해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가 중국으로까지 확산되는 등 중국인들로부터도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의 인민망을 비롯한 여러 매체들은 일본이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30만 명이라는 통계와 역사적 사실을 부정했다며 난징 대학살은 일본 군국주의가 침략전쟁 중에 저지른 반인륜적인 잔악한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관련해 30여년 전 자매결연을 맺은 난징과 나오야 간의 관계가 악화됨은 물론 중국인들의 일본 관광 취소사태가 잇따르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난징 대학살은 명백한 증거가 있다”며 “일본은 정확하게 역사를 대하고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난징(南京) 대학살은 중일 전쟁 도중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1937년 12월부터 1938년 1월, 중국의 난징과 그 주변에서 일본의 중지파견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인 포로·일반시민 대학살 사건이다.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이 중국 만주에서 산둥성을 거쳐 난징으로 진격하는 중에 약 30만 여명을 살해하였고 난징 점령 뒤에도 약 4만 2000여명을 살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학살은 기총(機銃)에 의한 무차별사격과 생매장, 또는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는 등 극히 잔학한 방법으로 자행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를 난징 대도살이라 부르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난징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또 다른 말로 ‘아시안 홀로코스트’라고 불리기도 한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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