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적 관계와 오늘날의 의미"

Written by. 서굉일   입력 : 2012-09-19 오후 6:04:38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본 내용은 17일 오전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 주관으로 실시한 ‘한국광복군 창군 제72주년 기념식’ 학술 강연의 일부 발췌 내용임.(편집자 주)

 광복군 총사령부의 창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전시 수도인 중경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설되었다.

 광복군은 처음 중국 측의 지원으로 창설하려고 하였지만, 중국 측이 장차 창설될 광복군을 예속하려고 시도하자 임시정부는 이를 거부 독자적인 힘으로 광복군을 창설하기로 하였다.  임시정부가 자력으로 광복군 창설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특히 미주 교포들의 재정적인 후원이 큰 힘이 되었다.

 1940년 8월 4일 총사령관 이청천, 참모장 이범석을 중심으로 광복군 총사령부를 구성하고 김구는 광복군 창설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 선언에서 임시정부는 독자적이며 자주권을 가진 광복군을 창설하겠다는 의지와 광복군의 성격과 위상이 연합군임을 천명하였다.

 광복군 창설을 공포한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 중경의 가릉빈관에서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식을 개최했는데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날이 광복군의 “창군일”이며 광복군이 대한제국 국군의 계승체 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는 독립군의 맥락을 이은 것으로 독립군의 전투역량·작전·지휘·조직 등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광복군은 일제를 박멸하여 빼앗긴 국토와 주권을 회복하고, 민족 내부의 봉건세력을 타파해야하는 민족혁명과 사회 혁명을 수행하는 혁명군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민족국가를 건설해야하는 성격도 담고 있었다.

 요컨대 광복군은 대한제국의 국군과 독립군을 계승하고, 30여년에 걸친 항일 무장투쟁의 전통을 기반으로 창설되었다는 점에서 민족사의 맥락을 이어갈 민족의 자주 독립군으로 탄생한 것이다. 나아가 민족혁명과 사회혁명을 수행하는 혁명군이자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건국군의 임무도 함께 받아야했다.

 광복군과 임정

 임시정부는 광복군 창설을 준비하기 위해 1939년 11월 서안에 군사 특파단을 파견하고 화북 일대에서 모집활동을 전개했다.

 모집된 인원들은 한국독립운동사·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혁·건국강령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정신교육을 받았는데 민족의식을 강조하게 된 데는 중국측의 광복군 예속 정책에 기인하였다.

 광복군은 창설 후 중국 국민정부의 정책에 의해  중국군에 예속되고 말았다. 지휘권 뿐 아니라 인사·정훈 등 광범위하게 중국군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군은 통수권을 회복하고 임시정부의 자주성과 국제적 위상을 높여갔다. 기관지 「광복」을 발행하여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널리 선전하였다. 1942년 이후에는 태평양 전선의 전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연합군과 군사합작 및 공동작전을 수행하였다.

 한민족의 독자적인 힘만으로 일본군과 전면적인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던 것을 감안하면 임시정부 및 광복군이 미국·영국과 합작하여 참전한 것은 한국 독립운동의 공간을 확대하고 그 위상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광복군은 이 시기 미국·영국과 함께 전쟁을 수행함으로서 임정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임정이 오늘날 높이 평가되는 데는 당시 민족사의 내적으로나 국제사회 측면에서나 광복군의 역할이 매우 컸다.

 임시정부는 수립초기를 제외하고는 민족의 대표기구이자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이라는 당초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임시정부는 내부적 갈등으로 인해 1940년 중경에 안착할 때 까지 침체상태에 있었다.

 광복군은 대한제국의 국군과 독립군을 계승하고, 30여년에 걸친 항일 무장투쟁의 전통을 기반으로 창설된 민족사의 맥락을 유지해나갈 민족의 자주 독립군이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대 국군이었다고 하겠다.

 광복군의 이념과 실천

 백범일지에서 김구는 장개석 장군에게 광복군 창설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광복군(한국국군)조직을 허락하는 것은 삼천만 한민족을 총동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광복군이 처음 창설되는 비용은 미주·하와이·멕시코·쿠바 등지의 한인들이 책임졌다. 중일전쟁이 발발한지 4년이 지나서야 국제사회에 큰 변화가 일고, 해외의 한민족의 관심과 후원으로 광복군이 출범된 것이다.

 1919년 3·1운동의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고 임정은 공화정을 주창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정체를 채택하였다.

 한국독립당과 임정은 독립운동과정에서 숙원이었던 광복군을 창설하면서 당·정·군의 삼위일체를 이루게 되었다. 그 중심인물은 임정의 요인들과 한국혁명의 老 선배들과 만주독립군출신들이었다.

 임정은 광복군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경제·사회·정치·교육의 개혁을 실현하였고 삼균주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었다.

 광복군은 독립전쟁을 수행하면서 독립국가 건설 프로그램을 정리했다. 그 단계는 복국(독립운동·광복운동), 건국(나라를 세우는 것), 치국(국가를 다스리는 것)의 단계에서 세계일가가 되는 것이었다.

 독립군과 광복군

 1908년 여름 이회영은 불라디보스톡에서 조국광복을 기약하면서 여러 가지 방략으로 ‘지사규합, 국민교육 장려, 비밀결사 조직, 운동자금 준비’에 중점을 두고 만주에서 광복군을 양성한 후 미·일, 러·일, 청·일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 기회를 틈타서 독립전쟁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1914년 이상설은 연해주에서 이동휘와 함께 「대한 광복군정부」를 조직한 바 있지만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독립군은 구한국 때에 일제침략에 대항한 의병으로부터 대일 항쟁기의 의열사 의용군 광복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던 국내외의 모든 무장저항세력을 포함한다. 의병운동이 1894년에 시작되었다고 하면 1945년 8·15광복까지 50년간의 독립전쟁이 지속되었다.

 의병전쟁기란 국권수호를 위하여 항전한 기간이다. 독립군 정비기는 국내의 의병전쟁이 국외로 확대되면서 독립군기지를 건설하여 독립군을 양성한 시기이다. 오늘날 한국군의 전신은 광복군이며, 광복군의 전신은 독립군이며, 독립군의 전신은 구 한국군이며 의병이 된다.
3・1운동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독립전쟁이 일어나서 독립전쟁은 재만 독립군에 의하여 전개된다.

 1920년대는 독립군의 활동이 가장 격렬했다.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 광복군 총영 등 수많은 무장단체가 활동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가 일본군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 독립군의 활동은 극히 악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1932년 윤봉길의 상해의거가 발생하자 그것을 계기로 하여 독립군의 중심지가 중국본토로 옮겨지게 되었다. 재만 독립군지도자들은 낙양 군관학교 등지로 이동하여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고 새로운 전열을 갖추게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생하고 4년 후 1940년 9월 17일 중경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 창설되었다. 임정의 광복군은 국가와 정부의 군대이면서 민족의 군대가 된다. 민족사의 시각에서 軍史를 보면, 구 한국군이 독립군으로 독립군은 광복군이 되었으며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으로 이어왔다.

 광복군은 독립군을 한국군으로 연결시켜주는 고리역할을 하였으며 독립군을 발전시켜 오늘날 한국군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였다.

 만약에 임정에 광복군이 없었다면, 임정은 한국독립당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 한 여러 단체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광복군의 현대적 의미

 광복군은 외세를 물리치고 근대적인 나라를 건설하는데 목적을 두었고 그것을 성취했다. 오늘 한국의 역사적 지평 속에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주창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광복군이다.

 임정의 주석이었던 김구는 광복운동의 목적을 또한 문화국가의 건설과 근대적인 나라건설을 함께 구상했다. 그는 국민이 인간답게 사는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고 그 가장 기본은 민주적인 체제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면서 큰 나라일수록 자국의 국민과 국가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국가는 더욱 강해야하며 국민은 강력한 국가를 원한다. 애국심이 강조되는 때이다.

 우리나라는 민족사회 내부적으로 국가 안에 암적 존재들이 많다. 광복군의 정신은 국가를 지키는 신념과 애써 세우고 가꾼 세계 제일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 요청된다.

 광복군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군대를 건설해야 했고 칼에는 칼, 총에는 총이라는 심정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 민족의 이념과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못된 세력으로부터 잘 지켜 도덕적 윤리적인 나라 평화로운 나라 문화대국의 강한 나라로 지켜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다양한 세력으로 나뉘어 있어 균형과 안정이 적절히 조절되어야 할 것이며 광복군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지혜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비판적 세력은 많으나 적극적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세력은 한정되어있다. 남한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그들은 북한의 공산화 전략인 인민 민주주의 혁명을 찬양하고 그 일환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연방제 통일안을 주장하는 단체가 서울에 있다.

 국민이 선출한 국가의 수반을 존중하거나 격려 배려하는 시민단체는 보이지 않고 정부 정책을 격렬히 비난하는 비민주적 무조건적 비판의 시민단체는 많다.

 대한민국은 공화적 자유를 지향해 온 나라이다. 자유인의 공동체다. 온 국민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하여 땀과 눈물을 흘렸다. 나라를 되찾고 지키기 위하여 피를 흘렸으며 고난과 희생을 감수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바로 세우고 민족사랑과 나라사랑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Konas)

서굉일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9.27 일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
한반도 안보 지형의 지각변동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첨단 ..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6·25 호국영웅 故한길진 하사 유해 신원 확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호국영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