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인생의 전환점 8월의 기억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많은 사람들이 1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계절이 어쩌면 8월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청춘 남녀들은 해변의 낭만을 꿈꾸며 8월을 기다린다. 내게 8월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나는 2009년 8월에 강원도 인제군 12사단에서 신병교육을 받게 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에서 못 살겠네.’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강원도 최전방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인제의 8월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최전방이 이래도 되나?’할 정도의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빈틈없이 이어지는 훈련에 무더위 조차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가며 5주간의 신병교육을 이겨냈다.
그해 8월은 내게 무한한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신병교육대를 수료한 후 유류보급 특기를 부여받아 내가 배치된 부대는 같은 사단의 보급부대였다. 하루에도 백여 대 가까운 차량들이 드나들고 군인과 민간인들이 상호 협력하여 하루일과를 수행하는 부대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또한 입대 전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생활하던 내가 하루에도 수십 명씩 다른 부대 인원들을 상대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입대 전 사회와 입대 후 군대의 너무도 다른 문화에 너무나 두려웠다. 신병교육대 수료식 때의 자신만만함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도무지 해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부대 생활에서 나는 익숙함을 발견했다.
입대 전 나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했었다. 무역의 기본은 상품의 흐름인 물류에서 출발한다. 또한 내가 복무하게 된 보급부대 역시 결국에는 물류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역설적으로 보급병이라는 직책이 훗날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대 전 배웠던 무역관련 지식들을 보급병 업무를 통해 많은 부분 복습할 수 있었다. 관련 서류처리, 물동량 파악, 불량품 검사 등 단순히 시험을 위해 우격다짐으로 외웠던 많은 과정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백견이 불여일행(百見..如一..)’백 번 보는 것이 결국 한 번 해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보급병 생활을 통해 나는 대인관계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직책의 특성상 보급병은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언제나 좋은 면만을 기대할 수가 없다. 부대라는 곳 역시 사회의 일환이기 때문에 대립과 마찰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변수들을 인식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대인관계 능력이었다.
입대 전 나는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았었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가족들과 마음이 맞는 몇몇 친구들이 사실상 내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이 관계 속에서는 서로가 크게 충돌할 일도 없을뿐더러 다툼이 생기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대는 너무 달랐다. 보급부대에 물품을 수령하러 오는 부대원들은 군복 이외에는 공유할 것이 없었다. 따라서 오해가 생기게 되면 금방 감정을 상하고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이러한 관계가 너무나 힘들었다. 군대라는 공동체 생활도 어색했고 또 서로의 끝없는 이기심으로 인해 오해를 키우기 일쑤였다.
부대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고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바로 먼저 다가서기와 들어주기이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그럴 때는 먼저 다가가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인 경우가 많았다. 전역 이후에도 의식적으로 이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2011년 화창한 봄날, 나는 드디어 2년여 간의 군 복무에 마침표를 찍었다. 완전군장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학업을 다시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많은 예비군 복학생들의 심정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부담감을 안고 2년 전 교재를 펼쳐들었다. 2년 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을 외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새웠던 기억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보급병 업무를 통해 이미 실무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경험은 학과 발표시간에 빛을 보게 되었다. 물류와 운송이라는 주제를 모두들 천편일률적으로 발표하고 있었다. 오로지 교재에만 충실한 지루하고 딱딱한 발표였다. 나는 발표에서 군대의 경험을 끌어들였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활동했던 경험에 빗대어 정말 열심히 발표했다. 내심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표한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발표를 마치고 이어진 박수 소리는 그러한 불안감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많은 예비역들이 군 생활을 먼 옛날의 추억처럼 치부할 때 나는 소중한 교과서로써 아직까지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2년 전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독불장군처럼 개인적이고 이기적이었던 나였다. 그 시절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편하게 느껴진다. 군 생활을 동고동락했던 많은 전우들과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예기치 못한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서로 큰 의지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가면 퇴보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떨어지는 사과의 달콤함만을 생각할 때 만유 인력을 생각해낸 뉴턴처럼, 결과는 순전히 당사자에게 달려있다.(Konas)
이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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