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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⑦〕사회복무요원이라는 별명

Written by. 박동은   입력 : 2014-04-08 오후 3: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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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3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장려’ 글임. (편집자 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7월, 나는 비교적 작은 동네의 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고, 남들 다 내는 시기에 군 휴학계를 내며, 남들 다 지는 시기에 국방의 의무를 지기 시작한 지극히 평범한 청년인 나는, 그 시작이 새로운 도전이라는 젊고 건강한 청년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땐 몰랐다. 그 첫걸음에 대한 첫인상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고, 그렇게 쉽게 뒤바뀔 수 있는 것이었는지.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첫걸음

 앳된 얼굴의 팀장님 안내를 받으며 내 역할에 대한 인계를 받는 동안의 내 감정은 아마 설렘보다는 감동에 가까웠을 것이다. 어느 한 조직 내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를 책임감과 기쁨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내딛는 이 첫걸음이 근무하게 된 이 복지관의 반걸음이기를 바랐고, 나아가 나의 인생에 있어서도 소중한 경험이기를 바랐다. 어찌 됐건 복지관에서의 근무는 나의 첫 사회경험이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안은 나의 일과는 대강 이러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는 식당 보조로 일한다. 100명이 넘는 대상자분들과 직원들의 점심을 위해 밥을 안치고, 주방장 어머님의 지시에 따라 재료를 다듬고,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을 싼다. 허겁지겁 도시락 60여 개와 점심을 준비하고 나서는, 곧바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도시락 배달을 나간다. 내가 가는 코스는 그 흔한 엘리베이터 하나 찾을 수 없는 ‘배달계의 히말라야’라고 불리는 코스다.

 고된 배달을 마치고 12시가 넘어 복지관에 돌아와서는 식당을 찾으신 어르신들의 점심 보조 및 서빙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1시가 다 되어갈 때쯤, 점심을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달콤한 휴식도 잠시, 2시부터 식당 청소 및 식기 정리 등의 뒷정리를 하고, 오후에는 장애아동 주간보호센터의 아이들을 돌보며, 노인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의 거동을 도와드리고 배설물을 치워드리는 등의 일을 한다. 마지막으로 퇴근 전에는 식당에 들러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그때는 한 여름철부터 그렇게 땀을 흘리며 허겁지겁 일하는 나 자신이 어른스러워 보여 좋았다. 퇴근 후 복지관에서 있었던 일들을 가족과 나누며 하루를 맺을 때면, 내일의 다이내믹 복지관을 그리며 잠 못 이룬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우리 복지관에서 지역 사회를 위해 힘쓰게 된 것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오죽하면 주말에 나와 일을 도와달라던 부장님의 부탁이 반갑기까지 했을까.

 호구(虎口):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은 쌤! 우리 주말에 마라톤 경기하고 남는 음료수 받아와야 하는데, 소형 화물차가 두 대나 필요해. 일손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나와서 도와줄 수 있어?”

 부장님의 자주 없는 부탁 중 하나였다. 나는 늘 그렇듯 흔쾌히 응했고 부장님은 봉사시간 내지는 대체 휴무를 약속하셨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선임 사회복무요원 한 분이 나에게 소위 말하는 돌직구를 날리셨다.

 “야, 너 호구야? 뭘 그렇게 시키는 대로 다 해? 적당히 좀 해, 적당히.”

 당시에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웃어넘겼는데, 그 날 하루, 나는 내 생각 상자가 바닷속 아주 깊은 곳으로 잠겨버려 웃으며 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복무를 시작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온갖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무를 도맡아 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 모습이 어쩌면 호구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직원들은 어쩌면 날 부려 먹기 좋은 공익(사회복무요원)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또 어쩌면 복지관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 아이들마저 날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바닷속 상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끝에는 회의감도 있었고, 미움도 있었고, 야속함도 있었다. 그렇게 웃음을 잃은 채 억지로 두 달을 더 근무했을 때쯤 일이 터져버렸다. 나는 어르신들을 모셔다 드리고 설거지를 마친 후에 6시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부장님의 동의를 구하고 퇴근을 20분 정도 조금 일찍 하는 편이었는데, 그날따라 부장님이 계시지 않아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조퇴를 한 것이다. 그래도 늘 남들보다 점심시간이 부족했기에 부장님도 흔쾌히 허락하시곤 하셔서 문제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음날 부장님이 직원들의 의견을 들으시고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동은 쌤, 요즘 많이 이상하네? 퇴근도 마음대로 하고. 그것보다 요즘 일할 때 왜 그리 딱딱해? 직원들도 그러고 심지어 어르신들도 동은 쌤 다 이상해졌대. 무슨 일 있어?”

 나에게 그 말은 수고 많다는 격려가 아닌 변했다는 지적이었고, 20분 일찍 퇴근했다는 이유로 그간 나의 노력을 폄하하는 비난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다지 길지도 않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아, 그럼 그냥 근무지 바꿔주시죠? 변한 사람 앞으로 1년 더 어떻게 보시려고요. 저도 할 만큼 했어요.”

 그렇게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부장님은 그때의 나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그 누구에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뒤에 더 얘기하겠지만, 날 믿었기 때문이라고.)

 호구에서 식구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 나는 무례했던 그 행동에 대해 크게 후회했지만,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 근무를 시작하며 다졌던 나의 순수한 다짐들이 이용당한 느낌이었다. 그런 꼬일 대로 꼬인 생각들 때문에 자연스레 복지관 직원들과의 거리는 멀어져갔고, 내 남은 복무 기간도 아득히 멀어져가는 듯했다.

 깊은 한숨으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짓던 나날 중에, 오후 반찬 배달을 돕다가 예기치 못하게 한 어르신의 생신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내 기분이 생일이라는 이미지와는 상당히 상반된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르신과 마주 앉았다. 간단한 안부가 오갔고, 가식인지 뭔지는 모를 밝은 웃음이 만개하던 중에, 사회복지사 선생님 중 한 분이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며 말씀하셨다.

 “아버님! 오랜만에 식구들 다 모였는데 사진 한 방 찍어요. 오늘 우리 온다고 옷도 예쁜 거 입으셨네? 뭔가 젊어 보이신다 했더니.”

 또 어르신은 기다렸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시고 말씀하셨다.

 “그래 맞다. 우리 딸내미하고 아들 또 언제 보겠노! 얼른 이리 오이라(오너라).”

 바닷속 상자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나를 기다리시는 어르신의 재촉에 허겁지겁 사진을 찍고, 아쉬움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보니, 어느새 다시 반찬 배달을 하는 차량 안이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선생님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같이 배달하던 선생님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바라봤을 때, 어색한 웃음을 지으시며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 뒤에 하시는 말씀이 오래 잠겨 있던 내 상자를 찾아주었다.

 “자주 보지도 못하는 식구 뭐가 그리 좋다고 늘 반겨주시는지… 너무 미안해.”

 훔쳐진 눈물은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 직원분들은 항상 진심이었다. 식당을 찾으신 어르신이 식사가 부실하다고 하실 때면, 몇 시간 뒤에 후원 예정된 빵을 한걸음에 달려가 받아오던 것도, 도시락을 받으시는 어르신이 밥통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실 때, 자신의 점심시간을 할애해 가며 먼 길까지 뚜껑을 열어드리고 오는 것도, 웃음이 없던 장애 아동이 미소를 지었다는 것 단 하나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는 것도, 모두 다 진심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병가라도 낼 때면 보내주시던 많은 걱정의 메시지들,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퇴근 후 건네시는 소주 한잔, 명절이나 기념일마다 늘 챙겨주시는 작은 선물들… 어찌 보면 작아 보이는 이것들 역시 모두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 식구처럼 대해주시는 진심을 호구처럼 이용당했다고 오해한 것이 너무 죄송했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오해는 감사함으로 풀렸고 감사함은 본래의 나를 찾아주었다. 나는 수면 위로 떠오른 내 생각 상자를 가지고 부장님께 사과의 명목으로 면담을 신청했고, 항상 입가에 띠고 계시는 밝은 미소로 나를 용서해주셨다. 아직도 감사한 그 말을 기억한다.

 “동은 쌤이 그간에 줬던 신뢰가 얼만데 그까짓 말실수로 내가 쌤 오해할까 봐? 우린 쌤 믿어.”

 별명으로 받는 인정(認定), 그리고 확신

 ‘박 셰프’ - 사실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하나도 없음에도 주방장 어머님이 나에게 이런 별명을 지어주신 것은 나의 남다른 위생 관념 때문이다. 주방에 들어와 가장 먼저 손을 씻는 것은 기본이고, 재료 앞에서는 잡담을 삼가고, 사용한 식기들은 재사용 될 때까지 깨끗이 씻어 소독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지키는 나를 위해 지어주신 것이다. 아직 음식 앞에서 말이 많은 후임 사회복무요원을 꾸짖는 내 모습을 어머님은 상당히 즐기고 계신다고.

 ‘꽃총각’ - 결코 외모에서 비롯된 별명은 아니다. 오전에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꽃무늬의 도시락을 가정까지 배달해드리는데, 한 할머니가 늘 같은 시간에 꽃무늬 도시락을 들고 오는 총각이라며 지어주신 별명이다. 이왕이면 꽃미남으로 불러달라는 나의 농담에는 빨리 다음 배달 가라는 센스로 답해주신 귀여우신 할머니! (야속합니다.)

 ‘휠체어 기사님’ -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차에서 내려드리고 휠체어로 이동을 도와드리기까지의 안락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노인 주간보호센터의 선생님이 지어주신 별명이다. 사실 생각보다 꽤 무거우신 그 어르신의 거동을 도와드릴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 립 서비스로 지어주신 별명이 아닌가 싶다. 휠체어를 안락하게 미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호랑이 선생님’ - 장애 아동 교육상 어쩔 수 없이 맡은 나의 역할이다. 아이들이 정말 예뻐서 언성을 높이기가 참 어렵다.

 ‘예복(예비 사회복지사)’ - 사무실의 사무 보조를 돕다 보니 사회복지학 지식이 미미하지만 어느 정도 생겨 얻게 된 별명이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아직까지 복학 후 사회복지학과로 전과하라고 하신다. 우리 복지관 취업은 보장하겠다며.

 그러고 보면 얻은 별명들은 모두 내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수행했을 때, 그리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할 때 얻은 것들이다. 그 별명들은 곧 나에 대한 ‘믿음’이자 ‘인정’이었다. 한때 잠시나마 별명을 지어주신 분들의 진심을 오해하고 철없는 아이처럼 행동했던 내가 줄 수 있었던 사과와 감사를 별명이라는 믿음과 인정으로 되돌려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회적 편견이 다소 있을 수 있는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나의 자긍심을 찾아주었다. 정리하자면, 내가 사람을 대하는 ‘진심’이 곧 나를 인정하는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곧 지쳐버릴지도 모르는 나에게 큰 ‘자긍심’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별명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사람에 대한 진심과 믿음, 나아가서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자긍심까지. 그 느낀 바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었고, 소양 교육 및 직무 교육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그 결과, 부산시 사회복무요원을 대표해서 강연을 하기도 했고, 세 개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느낀 바가 틀리지 않고 옳은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에 확신을 주었고, 얼마 남지 않은 복무 기간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나는 앞으로의 남은 기간 동안,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믿고 성실히 복무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나는,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별명이 참 자랑스럽다.(Konas)

박동은 (부산중구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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