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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⑧〕대한민국의 꽃을 가꾸는 사람들

Written by. 성태훈   입력 : 2014-04-08 오후 3: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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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3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장려’ 글임. (편집자 주)

  2014년 2월. 길었던 24개월이 끝나고, 소집해제를 한다. 대략 120일 정도 남았다. 약 20개월 정도의 내 공익근무 생활을 정리하고, 소중했던 시간을 절대로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다. 20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개인적으로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고, 의미 있는 일에 쏟는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가를 느꼈다. 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선거라는 일의 무게를 느꼈고, 무대의 뒤편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내 손에 한 장의 종이가 놓였음을 깨달았고, 그 종이 한 장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종이 한 장 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근간인 선거를 내 손으로 만들어가고 준비해본 경험은 나를 훨씬 크고 넓은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약 2년 정도의 복무기간을 되새겨 보면, 나는 참 축복받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1. 헛똑똑이 대학생. 선관위가다?!

 2011년 봄. 1년의 재수 끝에 나도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수험생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 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로 인해, 대학교 생활을 말 그대로 ‘흥청망청’ 즐기고 있었다.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세상에는 나꼼수가 등장했고, 한국과 미국의 FTA가 성사 되었다. 1년간 벌어지던 사회의 큰 변화 속에서, ‘흥청망청’ 놀기만 좋아하던 대학생인 나조차도 뉴스를 보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명의 청춘으로서 나름의 사회적인 의식과 정치적인 의식을 갖고 싶어졌고, 그 만큼 나의 관심은 어느새 우리 사회와 정치에 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과 열정에 비해 부족했던 지식과 그 지식수준에 걸맞지 않은 오만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사회와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으로 가득 차있었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 선관위는 썩어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떠올려 보면 그때의 나는 나 혼자 똑똑한 줄만 알던 ‘헛똑똑이’ 였던 것 같다.

 그런 막장(?) 대학생이었던 나에게도 2012년은 찾아왔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를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어떤 일 이든 당당하게 받아주마!” 라며 ‘재학생입영’을 신청했다. 그러나 운명이이란 것은 늘 장난치기를 좋아하기에 어김없이 나에게도 장난을 쳤다. 국가는 운명처럼 나를 ‘선거관리위원회’로 배정해 주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 당시의 나는 국가 기관들과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특히 더 불신 하던 ‘선관위’라는 기관으로의 배정은 내 감정을 복잡하게 하고, 머릿속에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게 했다. 하지만 후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의 경험들은 많은 부분에서 내 생각을 고쳐 놓았다.

 2. 그리고 선관위,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다.

 선관위에 배정받은 2012년.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내가 복무했던 첫해인 2012년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선거 두 개(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 선거) 가 같은 해에 치러지는 20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특별한 해였다. 그 때문에 몸도, 마음도 힘들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많은걸 배우게 해준 그 해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러나 처음엔 불신 가득했던 나에게 선관위라는 곳은 당연히 달갑게 느껴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불신에 대한 생각을 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총선이라는 큰 일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의 연속이었다. 홍보물 수령과 배부, 개표장 설비와 철거, 투표용지 분류기의 점검, 투표장 사전 조사와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설비, 투표용지 수령부터 관리, 부재자 선거관리와 부재자 투표용지 배부, 그리고 대미를 장식할 개표까지.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관위 공익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고, 그 일들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러나 그러던 때, 여전히 ‘헛똑똑이’였던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개표장 설비를 하던 날 중 하루, 선거준비 기간에는 늘 그렇듯 원래 퇴근시간인 6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9시를 넘어 10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던 중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그냥 지나치던 주사님들과 계장님들의 모습이 그날따라 눈에 하나하나 들어왔다. 다들 피곤해 보이지만 퇴근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던 모습. 나는 그 모습이 의아해 “퇴근 안하십니까?” 하고 여쭤 보았다. 돌아오는 주사님들의 대답. “우리는 이제 시작이지!”

 ‘아, 이럴 수가. 선거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국민 한 사람의 소중한 표를, 그리고 그 표를 행사 할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어 선거를 치러내기 위해서는 무대 뒤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스태프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구나.’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고보니 한 주사님이 머리를 감고 계셨다. 밤을 새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제까지 선거를 대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나도 몸이 힘들고 지치고 피곤했지만 나름대로 분주히 움직이며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태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거에 대한 나의 태도는 전혀 진지하지 않았고, 책임감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주사님의 그 말을 듣던 나는 나도 모르게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뽜이팅 해야죠!” 라고 말해버렸다. 밑도 끝도 없는 이 부끄러운 말을 어떻게 했나 아직까지 놀랍다.

 그 사건 이후로 내가 선거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진지해졌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처럼 중요한건 역시 마음가짐 이었다. 내가 만드는 이 선거가 대한민국의 축제라는 사실이 뿌듯했고, 이 축제를 준비하는 무대뒤편에서 나도 어느 정도 힘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은 육체의 힘듦을 가뿐히 이겨내게 했다. 힘들었지만 그 자부심 덕에 더 힘을 내서 총선을 의미 있고 무사히 치러냈다. 선거라는 꽃을 아름답게 피워낸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대선을 마주한 내 마음은 기다리던 택배를 받은 것처럼 설렜다. 설렘을 가슴에 담고 한 번의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로 대선 역시 무사히, 그리고 엄중하게 치러냈다.

 3. 선관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대선을 끝내고 나니, 선관위에서 할 일을, 내 몫을 해나가는 한명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나 또한 이 축제를 준비한 한명의 스태프였음에 보람을 느꼈고,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뿌듯함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별다른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상에서의 선관위에 대한 인식을 마주하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개표부정! 선거부정!” 온갖 부정이라는 말이 난무했다. 누군가는 쉽게 뱉었을지 모르는 그 말들은 나에겐 큰 상처였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한번만 이라도 본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텐데. 내가 했던 노력을 조금이라도 봐준다면 절대로 저 말을 쉽게 할 수 없었을 텐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 사람들 말이 맞다면, 내가 했던 노력들과 한명의 공익요원으로서 마음속에 품었던 그 사명감은 과연 그들이 말하고 있는 부정을 향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했던 노력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무대의 뒤편에 있다는 게 주는 아픔은 이런 걸까 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실제로 작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켜보고, 그 속에 참여해서 만들어 나갔던 모습에서 부정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누군가 부정을 행할 여지조차 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부정이 존재했고, 존재하지 않았고’에 대한 문제, 나는 그 얘기를 하기 위해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그래서 미처 보지 못한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한번쯤 바라봐 줄 수 있는 것이 성숙한 의식이 아닐까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를 비롯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수많은 공익들과 공무원들의 노고를 한번쯤 생각해 본적이 있다면, 그런 말들을 쉽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선관위 안에서 열심히 일 했던 그 사람들 모두 칭찬과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노력으로 선거는 치러졌다. 그러니 열심히 일했던 모습을 한번쯤 바라봐주고, 부정에 대해 얘기하기 이전에 한번쯤 격려 해주는 것. 다만 그것을 바라는 것이다. 내 작은 존재가 모든 선거관리 위원회의 직원들과 공익들을 대표할 순 없겠지만, 아마 모두의 바람도 그런 것이 아닐까?

 4. 각자의 경험위에 피어날 각자의 꽃들.

 누군가는 육군에 가고, 해병대에 가고, 특수부대에 가고, 복지관, 지하철에 간다. 그리고 나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왔다.

 육체적으로 편하지 않느냐고 비웃는 소리도 꽤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하나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졌던 2년이라는 아름다운 시간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2년간이나 일할 수 있었던 기회, 그리고 두 번의 큰 선거에 내가 쏟았던 노력이 나에게 안겨준 깨달음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방지축에다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일개 대학생에게 선거의 엄숙함과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이 거대한 시간을 어느 누가 축복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했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실린 내 손에 쥐어진 투표용지라는 이 종이 한 장의 의미는 아마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갈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얻는다. 각자가 경험한 일에서 어떤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에서의 중요한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면 육체의 힘듦을 떠나 그것이 바로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거라는 꽃을 피워낸 민주주의의 정원사 역할을 했던 나의 이 공익근무 기간이 주는 의미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아름다운 청춘으로서, 크게는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한층 성숙된 의식과 국민의식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의 경험에는 선거라는 ‘꽃’이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경험에는 각자의 꽃이 있다. 공익을 위해 근무하는 이 기간 동안 스스로 찾아낸 자신만의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가 우리에게 뭐라고 하든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앞으로 이 꽃을 피웠던 아름다운 추억을 평생 가슴속에 품고 살아 갈 것 같다.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랑스러운 공익근무요원인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단언컨대,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그 꽃을 피우는 여기 이곳은 선거관리 위원회입니다.(Konas)

성태훈 (부산사하구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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