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이순신처럼, 오늘 우리도...
1592년 4월 12일 바다 건너 섬나라 일본에서는 검은 먹구름이 한반도를 향해 밀려오고, 대륙에서는 부패로 찌든 대국이 휘청거리며 새로운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200여 년 간 평화에 물들어 바깥 세계의 정세에는 눈 감고, 오직 자기 세력의 권력 잡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파견한 통신사들의 상반된 보고마저도 국익은 생각지 않고, 자기 당파의 이해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일본의 침략은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고 만다. 결국 조정은 전쟁에 대비한다며 몇 사람의 장수들만 보직 이동시켰다.
그중에는 이순신 장군도 포함돼 1591년 2월 13일(선조24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는 날부터 진지를 점검하고 병선을 정비하며 군사훈련을 강화했다. 가장 고심했던 분야는 아마 함정 건조였을 것이다. 수많은 날을 번민하면서 찾아낸 해답은 많은 선박을 건립해 구성할 함대가 아니라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비밀병기 거북선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전쟁 준비는 가히 전율이 느껴질 만큼 치밀했고 그 타이밍이 절묘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의 주체가 되는 병력이 먹고 싸워야 할 식사문제와 전투장비 개발 등의 현실적인 문제라 생각했고 그래서 개발한 것이 증미(蒸米), 즉 찐쌀을 말려서 각자 휴대하는 전투식량이었다. 그리고 반찬 대용으로 간장을 명주 천에 적셔서 말린 다음, 휴대하도록 해 물에 우려내어 먹게 했다.
그 다음은 화살이었다. 당시 활은 조선군의 주 무기였으며, 특히 수군에게 활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기였다. 화살의 재료는 신우대(가는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만들었는데 화살 한 개를 만드는 데 100여 회의 장인 손길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귀중한 화살이 적을 맞히지 못하고, 적이 주워서 쏘면 오히려 아군에게 치명상을 주는 무기로 변할 수 있었다.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이 편전(片箭)이다. 애기살이라고 불리는 이 편전은 동아라고 하는 작은 관속에 넣고 활시위를 당기면 편전만 날아가는 화살로 명중률과 위력이 매우 컸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적은 주워도 사용할 수가 없고, 화살 크기가 작다 보니 대량으로 준비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이러한 철저한 전쟁 준비와 실용적인 전투식량 ‘증미’와 애기살 ‘편전’ 그리고 ‘거북선’은 남해바다를 지켜냈고, 7년 전쟁에서 조선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비밀병기였다.
422년 전 일본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정권 안정화를 위해 국내의 무력세력을 외부로 향하게 했던 당시와, 오늘날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아베정권의 군사대국화가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인지 모르겠다.
더욱이 세계 최강을 꿈꾸고 있는 시진핑의 중국의 꿈(中國 夢)과 푸틴의 소비에트 연방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영토 확장 모습,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태도는 420여 년 전의 동북아 정세보다 더 우려되는 한반도 주변의 모습이다.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의 육성은 구호나 의지만 가지고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싸워 이길 수 있는 실질적인 훈련과 능력을 구비했을 때만이 가능하다. 동북아의 예측 불가능한 기상을 보면서 오늘, 이순신 장군을 떠올려 본다.
박영희 (경민대 교수)
* 출처 : 국방일보 11일자 18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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