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군력과 포에니 전쟁
미국이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1·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미국 해군력의 발전은 1900년대 초반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가 발전에 해군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그는 당시가 세계적인 공황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연방예산 5억 달러의 20%가 넘는 1억여 달러를 매년 해군력 건설에 투입했다. 그 결과로 미국 해군은 세계 최강이 됐고 해군의 활약을 바탕으로 두 번의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지금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런 루스벨트 대통령이 해양중심의 전략 사상을 갖게 된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포에니 전쟁과 머핸의 만남이었다. 해양전략가 앨프리드 머핸 제독은 장교 시절 우연히 포에니 전쟁의 역사를 읽고 감명을 받았고 미국의 해양전략을 정립해 바다의 이용 확대를 국가전략으로 채택하도록 했으며 대통령이던 루스벨트의 마음까지 움직임으로써 대폭적인 해군력 증강이 이뤄졌다.
기원전 250년경의 지중해는 문명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포에니 전쟁은 지중해의 한 섬인 시실리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로마와 카르타고가 세 차례에 걸쳐 벌인 전쟁이다. 강력한 해양국가 카르타고에게 처음 전투에서 대패한 도시국가 로마는 해양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해군력 재건에 모든 노력을 다한다. 로마군선은 근접 전투에 강한 그들의 병력을 재빠르게 옮겨 태워 적선을 점령하는 전투를 벌임으로써 두 번째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을 괴멸시키고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며 1차 전쟁에서 승리한다.
1차 전쟁에서 패한 카르타고는 시실리를 되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또 전쟁을 벌이는데 이번에는 지상군을 동원한다. 바다를 로마 해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지 원정을 택하게 된 것이다. 무려 1만㎞를 돌아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는 험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니발은 도중에 많은 병력을 잃었지만 기습에 성공한다. 이탈리아 반도의 거의 전부를 점령하고 로마 함락까지 눈앞에 두게 된다.
그러나 로마에게는 바다가 있었고, 카르타고 군에게는 1만㎞에 달하는 보급로에 문제가 있었다. 한니발의 취약점을 알아챈 로마는 바닷길을 이용해 카르타고의 군수지원을 차단해 버렸다. 군수지원에 문제가 생긴 한니발은 로마 점령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2차 전쟁도 로마의 승리로 끝나고, 3차 전쟁 역시 로마의 해상원정으로 카르타고가 함락되면서 불태워져 카르타고는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카르타고 군이 불과 240㎞인 바닷길을 사용하지 못해 무려 1만㎞를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포에니 전쟁의 역사는 바다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미국 해양력 발전의 단초가 됐고 국가전략 수립에 근본적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적한 ‘바다를 잊어버린 민족’의 오명을 버리고 바다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
서양원 (예)해군중장 (한남대 객원교수)
* 출처 : 국방일보 10월27일 16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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