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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 최초 태극무공훈장 故이명수 옹 육군裝으로

8일 분당 서울대병원서 김요환 참모총장 주관 영결식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5-01-07 오후 1: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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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병(士兵)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故이명수 중위의 영결식을 육군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故이명수 중위는 지난 5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별세했다.

 육군은 6일 육군장(裝)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하고,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을 장의위원장으로 8일 오전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영결식을 열고 같은 날 오후 1시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봉안식을 갖는다.

 육군은 1946∼1962년까지 병(이등병·일등병)과 하사관(하사·이등중사·일등상사·특무상사) 계급을 통칭해 사병이라 불렀다.

 6·25전쟁 기간 동안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한 사병은 60여 명이다. 그중 위관급 이하 계급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예는 김만술 대위 등 10여 명에 불과하고, 중위 이하 계급에서 육군장이 거행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인은 1946년 10월 병(兵)으로 자원입대해 1950년 6·25전쟁 발발 수개월 전에 제대했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집 되어 '일등상사'로 임용됐고 3사단 22연대 3대대 소대장 대리로 복무했다.

 1950년 7월28일 영덕지구 전투에서 특공대장에 임명되어 대원 12명과 함께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투해 육탄으로 적 전차 3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워 '탱크잡이의 명수'로 불렸다.

 이후 다시 적진에 침투해 작전 도중 적에게 생포된 부하 3명을 모두 구출해냈다. 고인과 특공대원들의 결사전을 통해 적의 포항 진출을 2주일 이상 지연시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951년 7월26일 사병 최초로, 군인에게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육군 3사단에서는 고인을 부대혼 정신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리고 있다.

 이후 1954년 장교로 지원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제6군단 수송중대장을 역임하고 1963년 중위로 전역했다.

 2013년에는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인민군 전차 딛고 선 영원한 일등상사'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고인을 대신해 아내 최순일 여사(85)가 기록을 찾고 기억을 구술했다. 국방부에서 장병 참고도서로 각급 부대에 보급했다.

 육군은 2011년 10월 육군장 대상 규정을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전사자'에서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로 개정해 낮은 계급에서도 큰 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이들을 예우하고 있다. 2012년에 故김한준 대위의 장례를 육군장으로 치뤘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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