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 송진우선생 탄신 125주년 및 서거 70주기 추모식
교육자이자 언론인으로서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참여하고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하며 언론을 통한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한 「고하 송진우선생 탄신 125주년 및 서거 70주기 추모식」이 8일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서 열렸다.
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은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정관회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광복회원,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인호 KBS이사장의 약전봉독, 김창식 이사장 및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의 추모사, 헌화·분향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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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선생(1889. 5. 8 〜 1945. 12. 30)은 전남 담양(潭陽)에서 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1915년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1915년에 경영난에 빠져있던 중앙학교를 인수하여 학감이 되었다가 1918년 3월에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데 주력하였다.
1919년에는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했으며, 이 후 이 운동을 초기에 기획한 48인의 한 사람으로 일경에 피체되어 서대문감옥에서 1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6년 3월에는 국제농민회 본부로부터 조선농민에게 전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게재하였다가 무기정간을 당함과 동시에 일제 검찰에 구속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가 손기정선수의 우승사진을 게재하면서 손 선수의 앞가슴에 붙인 일장기를 지우고 실은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사임했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안이 전해지자, 반탁을 강력히 주장하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견해를 달리하다가, 12월 30일 한현우(韓賢宇)에게 암살당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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