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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로 가는 것인가?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5-06-18 오전 8: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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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38선을 넘어 월남한 것은 1946년 6월 19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 전 날 아침 평양역에서 원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 기차가 석왕사(釋王寺) 앞을 지나던 그 때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왜 기억이 생생한가 하면, 옛날 내가 배운 <조선어독본>에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석왕사에 간 것은”으로 시작되는 글이 한편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산에 도착하여 한 여관에 묵으며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반상을 받았는데 그날 아침 먹은 고등어구이의 맛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평양 살던 사람이 어디서 그렇게 물 좋은 고등어를 먹어 보았겠습니까?

 적위대나 보안대 요원들에게 월남하려는 ‘반동분자들’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월남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평양으로 압송돼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에 나는 메르치 한 부대를 사서 지고 행상인을 가장하고 원산역에서 철원행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는 혼잡하여 보안대원들이 승객을 일일이 점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날 철원에 도착했을 때 몇 시 쯤 되었던지 기억이 안 됩니다. 어쨌건 같은 열차를 타고 월남을 목적으로 철원까지 온 아는 사람들이 7~8인 한 조가 되어 안내자를 한 사람 샀습니다. 안내자를 잘못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이 되기를 38선 근처에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달도 뜨지 않는 어두운 밤에 논두렁의 좁은 길을 더듬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때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매우 요란하였습니다. 무사히 38선을 넘는 일에 성공은 했지만 수용소 비슷한 곳에서 남조선의 경찰관들이 출근하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서 ‘무자비한’ DDT(미제 소독약) 세례를 받고 우리들의 ‘남조선살림’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능력도 있고 양심도 있는 믿을 만한 ‘안내자’를 만나서 무사히 월남하여 69년이라는 긴 세월 나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 ‘안내자’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늘 새벽 혼자 일어나 앉아서 ‘그때 그 사람’에 대한 고마운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집에서 점심이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목적지를 분명하게 아는 ‘안내자’ 또는 ‘지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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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쏘......개인이나 단체나 올바른 지도 자를 만나야 편안합니다,,,,,

    2015-06-18 오전 9:49:30
    찬성1반대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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