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품에 안은 KLO 유격백마 전사(戰士)
♪♩ 총 어깨 메고 피 가슴에 뛴다. 우리는 큰 뜻 품은 한국의 백마부대 민족의 자유를 쟁취하려고 괴뢰 공산 때려부시려 희생적 정신을 굳게 먹은 우리대한민국 유격대 앞으로 끝까지 전진 앞으로 끝까지 전진 조국 독립을 위하여 민족의 통일을 위해 ♬<백마부대 행진곡>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 한두사람 시작한 노랫소리는 금방 제창으로 이어지며 우렁찬 합창이 돼 용유도 하늘 높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인천 용유도 충혼탑 앞에서다.
지난 5월27일 인천시 용유도에 위치한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앞에서 유격백마부대(전우회장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제65주기 추모식이 열려 6 ․ 25 한국전쟁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유격백마부대 552위 영령에 대한 추모례를 올렸다.
식장에 참석한 이영기 인천보훈지청 보훈과장과 최성룡 전우회장 등 100여 명의 참전 유격부대 전우들과 유가족, 군 장병들은 북한 공산집단의 불법 남침으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급한 지경일 때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동료 전우이자 선배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KLO 8240 유격백마부대’는 1950년 6월25일 소련의 사주를 등에 업고 전격 대한민국을 불법적으로 침략한 북한 공산집단에 맞서 평안북도 일대의 치안대원과 오산학교 학생 등 나이 어린 청소년까지 합세해 그해 11월22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서 조직됐다.
당시 유격백마부대는 전쟁이 한창일 때 활약한 20여개 유격부대 중 병력이 2천6백 명에 이를 정도로 가장 큰 부대 규모를 자랑했다.
주로 활동한 지역으로 서해안 일대의 애도, 천산반도, 월사리와 대화도, 신미도와 압록강과 청천강 입구 등으로 활동무대 역시 가장 넓은 지역까지에 이르러 교전 횟수만도 5백여 회에 북한군 사살 3천여 명, 중공군 생포 6백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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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적지에서의 철도와 터널, 교량 및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반공 애국청년 2천8백여 명과 민간인 1만5천여 명을 구출하는 등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들 유격백마부대 대원들은 거의 대부분 유격부대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군번도, 계급도, 올바른 무기 나 지원 다운 지원조차 없는 가운데서도 오직 북한 공산집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부대장 김응수를 핵심으로 똘똘 뭉쳐 싸웠다. 그리고 이름없는 산야에서, 외딴 섬에서 적탄에 쓰러졌다. 그렇게 552명이 전사한 것이다.
국민의례에 이어 순국선열과 552위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추도사와 헌화 ․ 분향, 그리고 백마부대 행진곡 등의 순으로 이어진 추도식에서 최성룡 유격백마부대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앞서간 선배 선열들이 보여준 뜨거운 나라사랑 정신을 숭앙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사회가 선열들의 위훈을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나 표 구걸에만 눈독 들이는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최성룡 회장은 “피와 목숨으로 이 나라를 지켜온 선배 선열들께서는 유격전과 첩보수집, 공작망을 구축해 본토 내륙에서 특수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유격전사상 찬란한 전과를 이룩하셨다”고 전투상보를 열거한 뒤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이 임박해 피와 목숨으로 점령했던 모든 섬들을 포기하고 남하 하라는 지시에 우리 땅임을 주장해 보지도 못하고, NLL 영해선 안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니, 그 아픈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고 위무했다.
최 회장은 지난 고 노무현 대통령 당시 크게 불거졌던 NLL 문제와 관련해서도 “서해 5도야말로 땀과 목숨으로 지켜낸 땅인데 오늘에 와서 북방한계선 포기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통탄한 심정을 참을 길 없다”고 했다.
더불어 “NLL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인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 선은 우리나라 영해 경계선으로서 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최전방 방어선이며, 대한민국의 영토이자 생명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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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이어 “지금 우리사회는 또 다른 망령된 행태들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비 뚫어지고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어이없게 죽어간 안타까운 현상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이런 안타까운 사건을 하나의 흥정의 대상으로,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못된 무리들이 있어 가슴 처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 중국 내 북한식당에서 탈출해 국내로 들어온 13명 탈북 사건과 관련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을 건너 오직 자유의 땅에서 인간답게 살고자 자유의사에 의해 한국 땅을 밟은 이들을 북한이 주장하는 납치 운운으로 몰아가며 변호사 접견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변’은 정녕 무얼 하고자 하는 단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그렇게 어거지만 우선시 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럴 계제이면 북한에 납북돼 지금까지 생사마저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 우리 부모형제와 자식들부터 구제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며 크게 꼬집고 “오늘 이 추모식전에서 호국의 수호신인 영령들 앞에 고하려니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원 그저 용서만을 빌고 싶은 심정이다”고 호소했다.
최 회장은 지난 19대 국회인 지난해 국방위원회를 통과하고도 법사위원회에서 부결된 6·25 참전 비정규군인 8240부대(켈로부대·KLO)를 보상하는 법안(6.25 참전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이 부결된 사실도 고했다.
“지난해 천신만고 끝에 소관 상임위인 국방위원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서는 여당 의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말았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한편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로 납북자 생사확인과 탈북자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는 최 대표는 부친(납북 최원모, 켈로부대 소속)이 6․25 전쟁 당시 유격백마부대에 참여해 美 극동군사령부 소속 KLO 부대에 소속돼 40t급 ‘북진호’의 함장으로 군수물자 보급과 중공군, 인민군 포로 수송, 부대원과 민간인 대피 등의 역할을 맡은 공적(전공·戰功)이 인정돼 2013년 6월18일 훈장 수훈자로 선정,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아 화랑무공훈장을 서훈 받았다. 46년만이며, 납북자로서는 최초다.
그러나 최 회장의 부친은 전쟁 이후 충남 서천에서 선주(船主)로 어업활동에 종사하다 1967년 6월 선원 7명과 함께 연평도 부근에서 조기잡이 조업을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납북돼 생사를 알길 없는 아픈 가족사를 안고 있기도 하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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