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⑬] 더불어 숲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숲에서는 저도 나무가 됩니다
‘현역이든 사회복무요원이든 뭐 어때? 2년 동안 대충 하고 오면 되지’ 병역판정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사뭇 덤덤한 척 하였지만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앞날이 정해지는 일은 편한 상황은 아닙니다. 형의 친구로부터 지역아동센터 근무가 괜찮다는 추천을 받았고 평소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그럼, 지역아동센터를 가 볼까?’하며 신청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아이들은 제가 알고 있던 아이들이 아니었음을 바로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게 작고 귀여운 천사 같은 어린이가 제 생각 속의 아이들이라면 변성기를 거치며 코 밑 수염이 돋아나고 저와 비슷한 덩치로 다가서는 5, 6학년 아이들은 현실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어린이가 2D영화라면 현재 눈앞에 마주한 아이들은 3D, 4D 영화 같았습니다.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함께 흐름에 동참하지 않으면 멀미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곳은 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때론 낯선 숲이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그냥 숲,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다양함과 다채로움에 놀라고 감탄하게 되는 숲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나무가 되고 샘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숲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발견하고 아파하고 실수하고 성장하는 ‘영건 쌤’의 성장 기록입니다.
아메리카노 향을 날려 버린 45명의 면접관
“이름이 뭐에요?” 맑은 목소리가 까치발을 들고 묻습니다. “왜, 왔어요?” 중저음 목소리가 지나치며 묻습니다. “어디 살아요?” 여자아이가 웃음 띤 얼굴로 진지하게 묻습니다. “몇 살이에요?” 덩치 큰 남자아이가 부쩍 다가서며 묻습니다.
“민수 쌤은 어디 있어요?” 아기 같은 목소리가 뜻 모를 질문합니다. “나 알아요?” 책을 읽던 아이가 몰라도 상관없다는 듯 묻습니다. “스파게티 잘 만들어요?” 새침하게 보이는 여학생이 묻습니다. “키가 몇이에요?” 제 키와 비슷해 보이는 남자아이가 도전적으로 묻습니다. 마치 “나보다 커요?” 하는 질문 같습니다.
정말 나에 대해 궁금하기는 한 건지, 답을 듣기도 전에 질문을 해대는 아이들은 삼삼오오 제 곁을 수시로 오가며 혼을 뺍니다. 물론 저는 생각처럼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천천히 물어 줄래?’라거나 ‘하나씩 질문해 줄래?’ 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아이들과 똑같이 정신없이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저만 당황스럽고 뭐가 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얻은 답을 들고 친구들에게 전하기도 하며 오고 갔습니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 정확히 해오름이라는 숲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생체 속도를 유지하며 ‘뭐 대충’ 좋았습니다.
해오름 시설장님은 선해 보이는 얼굴로 저를 시청에 딸린 커피숍으로 데려갔습니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추운 날씨에 2년을 함께 할 사람과 첫 만남으로 커피향이 풍기는 커피숍은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기초 대화를 나눈 뒤 해오름 로고가 찍힌 작은 차를 타고 앞으로 자주 다닐 거리를 지나 복무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음, 괜찮네.’ 할 수 있었습니다. 다녔던 고등학교, 해오름, 제 집이 삼각형 꼭짓점처럼 자리 잡고 있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주한 아이들!
아이들은 저를 면접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을 저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알려 주고 자기가 어디 사는지 알려 주고 키가 얼마인지 알리고 음식을 같이 하고 싶다고 알리고 전에 있던 민수 쌤과 친했다고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질문이면서 동시에 답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제가 이 이치를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이 필요해
“영거언 쌔앰” 4월의 바람을 타고 길고도 다급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제 힘이 필요한 응급상황이란 뜻입니다. 그 아이가 왔고 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복지사 선생님 표현대로 ‘가시는 걸음걸음 향기를 남기는’ 그 아이는 의사소통과 배변의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저학년이지만 고학년으로 보이는 덩치와 몸무게를 지녔습니다. 담당 선생님보다 덩치가 커서 아이를 진정시키거나 돌보는데 어려움이 크지만 너무 여러 명이 개입하면 아이의 불안감이 커져 오히려 진정이 어렵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복지사 선생님이 아이를 안고 진정시키고 있었습니다. 냄새만 안 나면 그 자리에서 가만히 꼭 안고 ‘잘 참고 있네. 그래 이렇게 진정하면 되는 거야’ 라는 말만으로도 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봄바람을 타고 냄새가 넘나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냄새 난다’ 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복지사 선생님이 눈짓으로 아이를 밖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신호를 보냈고 저는 아이를 붙잡듯 안고 이동을 시도했습니다.
아이는 두발로 버티며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른 둘이 힘을 써도 아이 하나 움직이게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힘이 좀 더 세면 번쩍 들어 올려 나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도와줘요, 영건 쌤” 하면 ‘짠’ 하고 나타나 단칼에 상황을 종료시키는 슈퍼 파워. 힘들어 죽겠는데 한가한 생각이나 하게 된 것도 상황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요령 없이 힘만 쓰다 실패하기도 하였습니다.
만두를 더 먹고 싶은데...
어른 둘이 젖 먹던 힘을 내가며 달래가며 아이를 현관 밖 평상으로 간신히 데려다 앉혔습니다. 그럴 때까지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두 발을 땅에서 떼어 놓지 않으려는데 온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무엇 때문인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에 대해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복지사 선생님은 아이가 밟고 온 길을 닦으러 잠깐 들어가셨고 나는 적당히 힘이 빠진 아이를 붙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래야 다음에 화날 일을 줄일 수 있잖아” 아이에게 말을 건네면서 저 스스로에게 잠깐 놀랐습니다. 이전의 나라면 이런 표현은 쓸 줄도 몰랐고 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말해 주면 참 고맙겠어. 선생님은 정말 너를 돕고 싶으니까” 아이는 눈만 끔뻑거리며 쉽게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으면 저녁 시간인데 저녁 먹고 태권도 가야 하는데” 잠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만두를 더 먹고 싶은데 안 주잖아요”
아! 그제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말하면 된 것입니다. 그 말을 듣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엔 만두가 범인입니다. 지난번에는 싫어하는 꿀떡을 안 먹겠다고 단 한 개도 먹지 않겠다고 하며 머리로 벽을 박아 저를 호출했습니다. 그 때도 이유는 뒤에 가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요리 선생님은 아이에게 분명 몇 접시 더 주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계속 먹겠다고 했고 곧 저녁 식사 시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씻어야 하는 일이 급했기에 ‘그만’을 말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리는 바를 말하자 아이는 긍정의 뜻으로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천둥번개 친 뒤 맑은 하늘처럼 아이의 표정은 태평스럽고 천연덕스럽습니다. 하지만 아직 먹구름이 온전히 걷힌 게 아닙니다.
‘나를 싫어해요’
아이의 아버지가 연락을 받고 속옷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사물함에 가져다 놓았던 속옷을 다 사용했기에 집에서 가져 와야 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온다는 말에 울먹이며 어디론가 달아나고자 다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복지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씻을지 해오름에서 씻을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이에겐 어디건 편하지 않지만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아이는 집에 가서 씻기로 했지만 아버지와 가긴 싫고 혼자 가겠다고 했습니다. 도착한 아버지는 속옷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뒷짐으로 들고 아이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차마 정면으로 보기 어려워 저는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였습니다.
언젠가 아이의 아버지가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얘가 나를 싫어해’ 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복지사 선생님이 아이에 대한 이해 차원에서 해 준 말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지사 선생님과 말을 마친 아버지가 먼저 집으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한동안 기다리다 출발하고 제가 맨 뒤에서 따라갑니다. 나이 많고 편찮으신 아버지는 천천히 걷고 아이는 아버지가 눈에 안 보일만큼 거리를 두며 걷고 저는 아이를 보며 걷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오래 걸리는 까닭입니다.
아이가 집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아이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 긴급했던 오늘 상황은 끝이 납니다. “죄송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이 아버지의 인사에 답을 하고 해오름으로 돌아오면 선생님들의 인사와 아이들의 걱정이 이어집니다.
“고생 했어요” “애 썼어요” “영건 쌤 팔에 자국 났어요” “아프겠다”
의약품관리부가 약상자를 들고 와 연고를 발라 주고 밴드까지 붙여 줍니다.
최고의 해결사는 마음
할 일을 잘 마무리하고 칭찬을 듣는 일은 무척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와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은 아이가 열어주는 마음의 크기입니다. 좀처럼 열지 않았던 입이나 마음을 조금씩 열어 주는 게 보이고 느껴집니다. 아이는 비록 일방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곧잘 들려주었습니다. 베트남 엄마 이야기, 학교 이야기 등을 수다스럽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야기 속에 아이의 아픈 생활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저를 많이 믿고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저 또한 아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돌발 상황에 대한 해결 능력이 나아기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해오름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오고갑니다. 건물 청소를 도우시는 어르신들, 중고생 봉사자들, 대학생 멘토, 직장인 봉사자, 부모님들, 지역 후원인들, 사회복지 실습생들,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 지방 공무원들, 차관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숲의 건강을 지키고 에너지를 주고받습니다. 그 과정에 마음이 빠지면 복지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사회를 배우는 일만으로도 이 시간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영건 쌤’ 하던 부모님들의 신뢰에 찬 목소리, ‘영건 쌤’ 부르던 아이들의 소리를 가진 저는 이전의 저와 많이 다를 것입니다. 고장 난 가전제품과 부러진 책상 다리를 수리하면서 발견한 적성은 더 복잡한 수리를 하고 싶은 욕심을 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쁨은 숲 속 생활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영건 쌔앰!” 게시판 관리부가 부릅니다.
“어~어”
김영건(해오름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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