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⑮] 출동하라 2015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1.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
1) 훈련병 전대영
평범한 21살 대학생이었던 나는 머리를 밀고 훈련소에 입소해 이름대신 184번 훈련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고 하고 싶었던 것도 너무나 많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훈련소에 들어왔다. 낮선 환경과 처음 보는 사람들,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금세 적응했다. 보급 받은 초코바와 콜라에 너무도 좋아했고, 매일 매일 정성스럽게 써준 여자 친구의 편지에 나름 행복한 훈련소생활이었다.
4주간의 훈련소를 마치고 강진소방서에 오게 되었을 때, 앞으로 나의 오랜 시간을 보낼 곳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두려움과 동시에 설렘이 있었다. 비록 군대라는 이름으로 강진소방서에 오게 되었지만 첫 사회생활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다른 복지센터나 공공기관 등 모두 복무 중에 느끼는 것, 그 중에 얻는 보람은 각각 다르겠지만, 나는 강진소방서를 오고 싶었고 지원했다.
강진소방서를 선택했던 이유는 사회복무요원의 복무지로서 소방서는 힘든 곳에 속했지만 소방서라는 곳은 쉽게 경험 할 수 없는 곳이라 더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더욱이 TV속에서 위급한 사람을 돕고, 화재진압을 하는 소방관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반했었고 때문에 내가 일원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강진소방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2) 강진소방서
내가 오게 된 강진 소방서는 집 앞에서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집 가까이에만 있었을 뿐 소방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떠한 사람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 내가 본 강진소방서에는 흔히 생각하는 빨간 소방차와 구급차뿐만 아니라 구조차, 사다리차 등 여러 용도의 다양한 소방차들이 있었다. TV를 통해 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소방차들을 보게 되니 많은 꿈을 꾸었던 어릴 적 당시의 설렘이 북돋아 오르는 듯 했다.
또한 강진소방서에는 닭들과 토끼들, 강아지 두 마리를 기르고 밭이 있어 농작물도 재배하는 정말 다양한 곳이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나 이외에 10명 정도 되는 ‘소방보조인력’이 있었다. 사회복무요원, 의무소방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는 일은 같지만 복무역종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우리 소방서는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며 근무시간 외에도 외출을 하거나 체육행사, 간담회를 하게 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잘 지낸다.
소방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중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크지 않은 기관 같은 경우에는 적으면 한명이 배치되어 있어서 외롭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함께 복무를 하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형, 동생들이 있어 즐거운 것 같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강진 소방서에서, 나중에 영원히 추억하게 될 강진소방서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2. 구급 출동
1) 첫 출동
소방서에 온 후 소양교육, 직무교육, 소방서에서 추가적인 교육을 한 후 드디어 너무나도 해보고 싶었던 구급출동을 나가게 되었다. 교육을 마치는 동안에 사회복무요원, 의무소방원 형들은 교통사고로 어떻게 사람들이 다쳤다는 둥, 화재로 누가 다쳤다는 둥, 나에게 겁을 많이 줬다. 덕분에 긴장을 너무 많이 한터라 작은 출동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다행이도 처음 갔던 출동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데려다 드리는 출동이었다. 할머니는 크게 아프진 않으셨고 혼자 살고 거동이 불편하여 자주 구급차를 이용하는 분이었다. 정말 위급한 환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온갖 생각을 하며 출동을 했는데 무사히 첫 출동을 다녀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2) 할아버지
그 동안 주택에 불이 나서 불을 끄러 다녀오기도 하고, 구급출동도 여러 번 다녀와 차츰 긴장을 덜고 자신감이 붙어갈 때 쯤, 어느 날 때처럼 구급출동을 나가게 되었다. 비가 와 날씨가 좋지 않았기에 평소보다는 좀 몸이 쳐지고 긴장을 덜하게 되는 날 이었다. 그런 와중에 출동소리가 울렸다. 출동지령서를 보니 혼자사시는 할아버지께서 전날부터 보이지 않아 찾아갔더니 움직이지 않으신다는 목격자의 말이 쓰여 있었다. 현장에 가보니 할아버지가 방에 누워 굳어계셨다.
배운 대로 심폐소생술도 해보고 제세동기를 써 봐도 일어나지 않으셨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소방서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얼마 전 지병으로 인해 수술을 하셨다는데 기력이 많이 약하시어 이겨내지 못 하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다녀오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신 분을 보았다는 그런 무서움 보다는 생전에 어르신께서 혼자 지내는 모습이 보였고 너무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3) 시련을 겪다
강진소방서에 온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구급출동에 많이 익숙해 졌고 많은 사건 사고를 겪다 보니 차츰 겪는 일들에 대하여 무뎌지고 있을 때 쯤 나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강진소방서는 나의 고향인 강진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 친구들,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처음 구급차를 타기 시작 했을 때부터 혹시나 내 가족이, 친구들이 아는 사람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어느 날처럼 구급 출동 소리가 울렸고 출동 지령서를 확인해보니 환자 이름이 나와 친했던 이모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 처음만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 응원하며 지냈던 내겐 가족과 같은 분이셨다.
이모는 둘째 아이의 돌을 맞은 날 산후후유증을 이기지 못하신 것 같다. 나와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 것으로 나는 큰 슬픔에 휩싸였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연락을 했었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날 다른 구급대원 말고 내가 나갔더라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만 남았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잃는 상황 앞에 있는 경험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겪고, 듣는다는 것에 대하여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복무로 인해 겪게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일은 필요이상으로 내게 너무 과한 경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응답하라 2017
1) 사회복무요원이란?
17년 6월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한지 21개월이 지났고, 이제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하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갈 수 있을까? 처음 왔을 때 나는 시간이 많으니 그 시간동안 필요한 자격증을 따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물론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보내왔던 시간동안 더없이 멋진 경험들을 했던 것 같다. 소방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어느 누구도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하는 구급출동, 화재출동과 같은 경험을 했고, 이 경험들 속에서도 다친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과 같은 보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사람을 돕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잃었던 것, 누군가를 잃은 사람을 보았던 것은 많은 아픔을 남겼지만 심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에드거 앨런 포(Edger Allan Poe)는 “시련이 없다는 것은 축복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겪는 일들이 나에게 힘든 시련이었을지 몰라도 이 시련들이 미래에 큰 축복으로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2) 소집해제
소집해제를 남겨두면서 나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가장 중요한 질문이면서 어쩌면 가장 진부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면, 나는 21살부터 23살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떠한 시간을 보내왔을까? 흔히들 미래에 있어서 20대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 이라고 한다.
이런 중요한 시간에 복무를 하고 있고 이 복무 중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진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꼭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가이다. 사회복무요원 복무기간인 24개월 동안 자격증을 따거나 부족한 공부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진소방서에서 직원 분들, 보조 인력들과 살을 맞대면서 겪었던 것들과 구급출동을 통해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것, 화재를 진압했던 것 등 나에게 많은 추억이 되었고 너무도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또 이 기억들은 미래에 있어서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복무 했던 이 강진소방서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 스스로 복무에 대하여 보람을 느꼈고, 많은 경험들을 쌓았기에 만족스러웠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어떻게 복무를 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가 될 것 같다. 아직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3개월이 지나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나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전대영 (강진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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