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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⑯] 나는 생명에 복무합니다

Written by. 김희동   입력 : 2017-09-18 오전 1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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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올해 첫 겨울, 이곳에는 유독 사고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했을 시기에 안타깝게도 몸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했던 사람이 셀 수도 없었고, 우리가 신고 현장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심하게 고통스러워하던 환자를 매일 마주해야 했다. 매 출동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환자를 ‘들것’으로 옮기고, 구급차에서 여러 가지의 건강점검을 하며 각 병원으로 이송했다. 나는 그렇게 구급대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왔다.

 사회통념상으로는 응급구조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투입된 사회복무요원에 대해 편견을 가지기 쉽지만, 현장에서와 환자를 이송 중인 앰뷸런스 내부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응급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응급치료를 하고 있는 ‘전문 구급대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복무요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수행하는 임무는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119 신고 전화가 들어온 현장에는 항상 도움이 필요한 응급 환자가 있고, 그곳에는 구급대원들과 함께 일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있다.

 지난 10월 말, 대전 신탄진에 위치한 ‘덕암119안전센터’로 발령을 받고 첫 출동을 나갔을 때의 기억이 난다. 막상 환자를 마주했을 때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긴장한 상태로 첫 구급출동을 나가야 했다. 나는 그저 센터 내에서 선배가 일러주었던 빨간 물품가방을 하나 들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나의 첫 환자는 신기하게도 내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이셨다. 당시에 선생님께서는 왼발에 ‘봉와직염’을 앓고 계셨는데, 내용인즉 수업을 하시는 중에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여 결국 신고를 하셨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발의 가죽이 다 벗겨져가고, 발등이 빨갛게 부어올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는 상황이었다. 나는 우선‘들것’의 모양을 의자처럼 변형하여 선생님을 안전히 구급차로 옮겼다. 나를 많이 아껴주셨던 선생님께서 내 첫 환자라는 사실이 참 얼떨떨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주의하며 충남대학교 병원에 이송해드릴 수 있었다.

 이렇게 일단 출동 지령이 떨어지고 나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현장에 도착하면 환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한 후 들것에 그 환자를 옮겨 싣고, 구급차가 다시 출발하면 환자의 산소포화도와 혈압, 체온 등을 체크해야 했다. 심하게 다친 환자의 경우에는 식염수를 이용해 지혈과 소독을 진행하고, 골절된 부분에는 부목을 설치해 부러진 관절을 지지하는 등의 업무가 모두 나의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는 어려움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어느 시간에 어떤 환자가 119를 부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평소에 연습하여 모든 과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부목의 크기별로 그 용도를 외워야했고, 교대 시 점검해야 할 사항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자동심장충격기(AED)’와 ‘와이어 부목’ 같은 각종 물품의 이름과 용법을 암기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은 물론 ‘심정지 환자’를 위한 항목들이었다.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것으로 그것들은 헷갈리거나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종종 친구들을 만나면 사회복무요원이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하겠느냐고 묻지만, 난 우리와 같은 구급 팀의 도움을 한 번이라도 받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만큼 사회복무요원으로서도 환자의 안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센터 내에는 보통 4명의 사회복무요원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함께 근무하는 것은 아니고, 주간과 야간, 퇴근 후 비번까지의 날들 동안 4교대 체계로 복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4일에 한 번씩 야간 근무를 해야 하는데, 그 늦은 밤과 새벽에는 긴급 환자의 신고가 더욱 많다. 밤새 알지도 못하는 병 때문에 간혹 정신을 잃는다거나,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기에 야간근무 조의 구급대원은 안전에 더 많은 신경을 쏟아 환자를 이송한다.

 야간 근무는 분명 힘든 일이지만, 큰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던 환자와 그 옆에서 울며 걱정하던 보호자가, 어쩌다 꼭 한 번은 “덕분에 살았습니다.”라며 인사를 해주기 때문이다. 고된 현장 업무를 하다가도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덕분에 나도 계속해서 힘을 낼 수가 있었다. 구급 팀으로서의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을 구하고 도움을 주는 일에서 오는 큰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지난 1월 25일에는 야간 근무를 거의 마치고 퇴근시간이 다가오던 때에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임산부가 교통사고를 당해 통증을 호소하며 심적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심한 외상은 없었기에 혈당과 체온 등을 체크한 후 산부인과 병원으로 이송한 게 전부였지만, 응급실에 도착한 그 환자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오며 팔을 꼭 잡았다. 내가 어쩌면 두 생명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 환자를 위해 구급 활동을 해야 했을 것이고, 그 누군가가 나였다는 사실이 참 뿌듯하고 감사했던 날이었다.

 보람도 보람이지만, 사실 이 일의 가장 큰 이점이라고 한다면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응급한 상황에 처한 환자를 살려내는 경험은 정말이지 특별하기 때문이다. 한 예시로, 2017년도 1월 23일에는 정말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대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의 생생한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용은 이렇다. 약 70세의 노인 분께서 집에 계시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를 토한다며 119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신고가 들어온 집에 도착했을 때에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이를 발견하자마자 우리는 자동심장충격기(AED) 패치를 부착한 채 곧바로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다. 환자의 맥박은 약한 상태로 유지가 되고 있었지만, 아이겔과 인공호흡 마스크를 연결했을 때에도 여전히 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채로 피만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안전센터로 지원을 요청했다. 건물이 좁았던 데다가 2층이었고, 계단이 가파른 곳이라 환자를 들고 나가려면 많은 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구급차에서도 계속해서 흉부압박을 하며 환자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고, 우리가 곧 도착한 병원 담당 의사에게 자세한 상황설명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일이 다 끝난 뒤에도 긴장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아 몸이 떨렸다.

 나는 일전에 학교에서,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여러 차례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육군훈련소에서도 심폐소생술(CPR) 교육을 이수했었고, 안전센터에서 와서도 여러 번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의 자신은 없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구급대원이 된 나로서는 절대 실수를 해서도 안 될 일이었으므로 약간의 부담이 더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러 차례 심정지 환자를 마주했고, 출동을 거듭할수록 더 신속하고 자신감 있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주로 심폐소생술 교육 시에는 ‘내 주변 사람이 의식을 잃고 갑자기 쓰러진다면’을 가정하지만, 나는 위와 같은 경험을 해보았기에 이제 걱정만으로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침착한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중에라도 이러한 사회복무 경험이 내 인생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다. 지난 몇 개월간 구급 팀에 편성되어 생활했던 날들로부터 구급/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게 된 것과 더불어, 안전하고 올바르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안전센터의 일이 분명히 힘들기만 할 것이라고 걱정하던 처음의 마음가짐이 부끄럽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가질 수 없을 이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경험은 정말로 가치 있고 값지다.

 우리는 분명히 사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사회를 위한 복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사회복무요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복무를 하고 있고, 나는 그 중에서도 ‘119 구급팀’으로서의 최선을 다해온 것이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스스로도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의 안전과 복지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나에게는 분명한 자부심을 느끼는 요즘이다.

김희동(대전동부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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