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㉑] 평범함이 어려운 사회복무요원입니다.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현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사회복무요원을 시작하기 전, 강원도 철원에서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던 군인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현역으로서 의무를 수행했고 그러다가 현역부적합심사를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향된 한 사람입니다. 군대는 힘들지만 한번쯤 다녀올만한 곳이라고 누군가 말씀했습니다.
“아프니깐 청춘이다.” 저는 그 말에 공감을 못하는 한명의 부적합자입니다. 현역으로서 지낸 시간은 제게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낯선 환경에 소극적인 성격과 자신감없는 행동, 그리고 단체생활의 압박감에 현역으로서 생활했었던 6개월이 저에게는 6년 아니 60년같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중대에서의 외로움과 군대라는 사회적 공간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저는 나날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수화기 너머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날이면 애써 괜찮은 척 어설픈 연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남몰래 숨죽이며 울어보기도 하며 근무하는 날에는 자해를 시도해 볼 끔찍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럴수록 제 자신 스스로도 미워지고 점점 제 마음은 뜨거운 송곳에 박힌 통증과 검게 피어오르는 들끓는 구멍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힘든 나날 속에서 지친 제 모습을 중대장님께서 상담을 요청했고 저에 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사회복무요원으로 저는 다시 국방의 의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군인에서의 시간은 제겐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시간은 제게 더 할 나위 없이 큰 안정감과 행복을 선물해줬습니다. 그렇게 든 생각이 세상은 평범함이 당연한 사람과 평범함이 어려운 사람으로 나뉘어져있다고 생각됩니다. 평범하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어렵다’ 라고 느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속했던 ‘평범함’이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때 저와 같이 평범함이 어려운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도 괴로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차별받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면서 바꾸어 나가 본인의 길을 그대로 직진하는 것이 ‘평범함’을 다가가는 ‘길’ 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 글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평범하면서 있을법한 소소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라졌고, 이제 ‘평범함이 어려운 사람’이 아닙니다. 이 글은 제가 사회복무요원을 하면서 ‘평범함’을 느낀 글입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그 날은 벚꽃이 활발하게 생기를 띄운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버스를 타고 봄바람을 맞으며 출근을 하였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제 자리에 앉으면 앞자리에는 큰아빠 정도의 나이 되시는 주사님이 계십니다. 4층 사무실에서는 잘 안보이시고 1층 당직실에서 자주 볼 수 있으셨던 웃음이 선하신 주사님이셨습니다.
저는 지금껏 남에게 호의를 베풀면 돌아오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했던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사회복무요원 발령을 받고 나서 저와 사람들의 거리는 가까워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적막한 공기와 차갑게 두드리는 키보드 자판소리에 저도 거기에 맞춰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주사님은 먼저 다가와 주셨고 조용한 사무실에 익숙해진 얼어붙은 제 마음을 봄처럼 녹여주셨습니다. 그러다 월급이 들어오기 전날이었습니다. 통장에 점심밥 먹을 돈이 없어 안절부절 못한 상황에 처했었던 저를 주사님은 다가와 밥을 사주시며 앞으로는 나랑 같이 밥 먹고, 돈 걱정 말라며 저에게 따뜻하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런 주사님을 보면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기뻤던 적은 살아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주사님이랑 밥을 같이 먹을 때마다 저는 감사함의 표시를 전하려고 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그저 묵묵히 받기만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면서 저는 처음 느꼈던 감사함과 기뻤던 감정은 점차 줄어 들고 점점 주사님에게 부담감을 느끼고 식사 자리를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사님께서는 매번 말씀을 걸어오셨고 저는 식상한 말투와 함께 거리를 멀리하려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주사님께서 며칠 동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사님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의 명패와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주사님은 그렇게 아무 말씀 없이 조용히 사라지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주사님의 감사함과 따스한 온정에 보답을 전달하지 못하여 죄책감으로 추운날씨도 아닌데 저는 몸살 아닌 몸살을 걸리게 됐습니다. 그때 내가 용기를 조금만이라도 쥐어 짜냈으면 이런 후회와 마음을 겪지 않았을텐데.. 저는 아무것도 할수 없이 쓸쓸히 다음날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나날 속에 또다시 시간은 점심시간을 가리켰고 저는 다시 밥을 혼자 먹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혼자 어딜가냐? 식당같이 가야지 밥 먹게 올라와” 라는 목소리가 제 귓바퀴에 뚜렷하게 들려오고 저는 한걸음에 달려가 주사님을 보고는 기쁜 마음을 숨겼습니다.
그동안 얼굴을 비추지 못했던 것은 주사님이 연가를 쓰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단순히 제 오해와 착각 때문에 이젠 다시 못 볼줄 알았었는데, 선한 마음을 가지신 주사님을 뵐 수 있어 반갑고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사님과 그 일이 있은 계기로 저는 달라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건 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화와 정 그리고 ‘배려’ 라는 단어를 공유하며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저는 평범함에 한발짝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고생 과장님
평범함에 두발짝 다가가는 날은 과장님을 만나서였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을 하면서 사무실 사람들과 자연스레 익숙해질 무렵 아직 대화조차 못해 본 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빨강과 검정의 조화를 잘 이루어낸 동그스름한 안경과 숏컷으로 머리를 이루어 옆머리 파마로 완성시킨 헤어스타일 그리고 호랑이 같은 눈과 동그란 코가 얼굴의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빛내주시며 귓불이 무척이나 두툼하신 60대 여성의 그 분은 내가 근무하는 부서의 과장님 이셨습니다.
과장님과의 대화는 제가 근무하고 한참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소장님께서 건물 주변의 화분들이 잡초 같다며 ‘예쁘지 않아 싹 다 바꿔야 할 것 같다’ 라며 급하게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날 구성원들을 결성해 과장님 지휘 아래 5명의 인원이 모였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오전날씨에 양묘장을 향해 저흰 한 트럭으로 이동했고 이동하는 내내 고요함과 침묵도 같이 트럭에 실었습니다.
양묘장에 도착한 뒤 과장님은 매의 눈초리로 꽃들을 주시하며 예쁜 꽃과 시들어진 꽃을 구분해 트럭에 담았습니다. 저희도 물론 과장님의 명령아래 꽃들을 담아 트럭에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아직 여름도 다가오지 않았는데.. 그날의 날씨는 정말 여름이 한걸음에 달려와 뛰어온 것 같았습니다. 점심시간이 오기 전에 작업을 끝내고 바람을 맞으며 다시 돌아와 지친 몸을 잠시나마 쉬게 하였습니다.
쉬는 도중 과장님께서는 제게 ’수고했다‘ 라는 말씀과 함께 식권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애교 섞인 말투와 함께 농담을 꺼냈습니다. 줄곧 과장님을 오해한 것 같아 저는 죄송스러운 마음에 감사히 식권을 받고 과장님 자리에 몰래 감사의 표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을 하러 갔습니다. 화분의 잡초 닮은 꽃을 뽑고 거기에 비료를 조금 첨가해 새로 가져온 꽃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한바가지 뿌려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꽃은 수줍은 고개를 들어 올리고 움츠려들었던 어깨를 일제히 피기 시작해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과장님의 지금껏 보지 못한 또 다른 표정을 보고 말았습니다. 환하게 웃는 꽃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계시는 과장님을 보며 지난 한순간 일에 보람을 느낀 것 같습니다. 일을 마무리 하고는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과장님이 먼저 수고했다 말을 내뱉었습니다. 과장님을 시작으로 다른 분들도 차례차례 “고생했다, 수고했다” 라는 말이 오갔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제 마음이 무언가가 용솟음이 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높은 자리에 있는 조건은 탐욕과 윗사람들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냉정한 판단만이 그 조건에 해당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리더란 어떤 것인가? 그릇의 크기에 저는 과장님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전 그때의 순간을 떠올리면 정말 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제가 생각하고 색안경을 꼈었던 제 자신 스스로가 한심했고 과장님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꽃과 같이 미소를 띄우신 과장님의 모습이 주름이 잔잔하신 할머니 모습이 아닌 생기발랄한 봄날의 여고생으로 보였습니다.
도우며 베풀다
저는 사회복무요원을 하게 됨으로써 지금껏 살아온 세상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해주고 사회의 따뜻함과 또 다른 교훈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아직 따뜻했고 조금만 돌아봐도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오히려 문을 무시하며 열어볼 생각조차 안 한건 틀어박힌 가치관과 세상을 잔인하게 바라본 제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배려를 나누면서 온정을 느끼는 그 순간 순간마다 저는 다시금 느끼고 깨닫습니다.
문은 누군가 열어 주지 않습니다. 열고 닫고 할 수 있는 것은 키를 가지고 있는 내 자신입니다. ‘평범함’이란 단어는 우리가 조금만 뒤돌아보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내 스스로가 갇혀있는 가치관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 ‘평범함’은 ‘특별함’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하며 사람들과의 정을 체험하고 마십니다. 과거의 제겐 ‘평범함’이 어려우면서 바꾸지 못했던 절대적인 뜻을, 이제는 ‘특별함’으로 탈바꿈 되는 계기가 되어 지금의 자신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인생의 전환점과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스스로의 가치를 재판단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여러 기관에 근무하고 계시는 사회복무요원 여러분들 조금만 더 힘내시고 다치지 않고 무사히 소집해제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윤석 /전주시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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