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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㉓] 등잔 밑은 어둡지 않다

Written by. 송준혁   입력 : 2017-09-22 오전 9: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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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외지인에서 내부인으로

 내가 복무지로 지정받은 곳은 병무청이다. 병무청에 배정되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했을 때, 병역판정검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로 병역판정검사장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보통 오전 7시 20분까지 출근해서 오후 4시 30분에 끝나는, 이 짧은 것만 같은 일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정말 힘든 일이었다.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접수에서 나의 임무는 수검자들의 현장사진을 촬영하는 것과 병무용 진단서를 내면 확인하고 담당 주사님께 제출하는 일, 신상명세서나 여타 수검 시 작성하는 것을 지도하는 일, 거기에서 나오는 임상심리검사 대상자를 임상심리실로 인도해 작성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무엇보다도 정말 힘들었던 것은 임상심리검사 대상자에 걸린 수검자들을 임상심리실로 인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 주위에 있는 친구 혹은 형인데 2차 대상자가 되었다고 이름을 직접 호명하고 같이 이동하면 뭔지 모를 미안함과 어색함이 내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병역판정검사를 받던 4년 전의 내가 4년 후의 나를 보는, 4년 후의 내가 4년 전의 나를 보는듯한 다차원적인 공간에서 나는 존재했던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보이는 것들

 하루는 어떤 수검자가 신상명세서를 작성할 때 도움을 주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보통 앞에서 주사님이 신상명세서 작성법을 설명하면 그 설명을 듣고 신상명세서를 적으면 되는데, 이 수검자는 설명을 잘 안 들었는지 본인 학력사항과 가정사항을 전혀 기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수검자에게 가서 조용히 말했다.

 “수검자 분, 학력사항하고 가정사항 좀 기입해 주시겠어요?” 그 말을 듣고 수검자는 옆으로 돌아보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수검자의 얼굴은 미안함의 얼굴이라기보다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속으로 나는 ‘혹시 내가 말을 잘못했나?’, ‘원래 이런 얼굴인가?’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찰나 수검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없는데요?” 순간 나는 그 말투와 표정에서 내가 뭔가 상처를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말일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가벼운 말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검자들을 지도하는 입장이므로 당황하지 말고 이야기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면 다른 친지분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면 그것으로 적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때서야 수검자는 천천히 가정사항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그

 리고 오히려 나에게 학교를 중퇴했는데 이렇게 작성하는 것이 맞냐고 되묻기도 했다. 나는 그 수검자에게 작성법을 알려주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수검자가 나에게 말했다. “아까 화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 말을 듣고 나는 느낌이 묘해졌다.

 죄송하다는 말과 선생님이란 말을 들었을 때 미안함과 나에게 신경써준 감사함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수검자에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표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날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해 준 고마운 날이 되었다. 수검자들에게 속으로 먼저 화를 내기 전에 왜 수검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게 하니 내가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형사실이 있는 수검자를 나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했었으나 그 수검자는 맞고 있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실제로 같이 싸워준 친구였다.

 또 다른 수검자는 설명을 잘 안 듣고 딴청을 피우거나 자꾸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제2교포였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신상명세서 작성과 검사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그럴 때마다 어눌한 한국어로 “고맙습니다.”라고 정중히 표현해주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

 4년 전, 수검자로서의 나에게는 볼 수 없었던 것들, 그것은 마치 내가 이미 재단하고 판단하는 편견과 같은 것이었다. 수검자들은 앞으로 병역을 이행해야 하는 첫 관문이자 사회생활에서 스스로 나아가야 하는 과정 중 첫 걸음이기에 화가 난 표정과 불퉁한 목소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수검자들은 자신의 불확실에 대해 같이 공감해주고 같이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가끔 내가 누군가에게 선입견을 가질 때면 병역판정검사의 날을 떠올리며 되돌아보게 된다.

 너무 거만하지는 않은지, 내가 너무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병역판정검사 기간 동안 많은 수검자들을 보면서 나는 가까운 곳에서 보이는 것들을 접하고 더 가치 있는 만남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거짓말 같지만 거짓말이 아닌 너

 보통은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러 올 때, 몸이 아픈 경우 자신이 더 잘 알기에 ‘병무용 진단서’를 첨부해서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 판정을 받을 수 있다. 하루는 수검자가 병무용 진단서를 제출하고 자리에 앉길래 수검자의 진단서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그 수검자는 신장암이었다. 나는 재차 확인할 필요를 느꼈고 수검 중인 수검자에게 조용히 다가가 이야기 했다.

“혹시 수검자 분, 신장암에 걸린 내역이 있나요?” 그러자 그 수검자는 놀라운 말을 했다. “제가 신장암이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제가 정말 암인가요?” 라는 대답이었다. 나는 그 순간 좀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나에게 병무용 진단서를 제출한 것을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과 많은 수검자들이 봤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아픈 부위를 모르다니? 혹시 이 수검자는 ‘리플리 증후군’ 즉, 현실을 부정하면서 허구의 세계를 믿는 증상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던 중 보호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나에게 와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자리를 벗어나 보호자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수검자가 자신의 질병상태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분명히 병무용 진단서를 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보호자 분이 말하기를 “사실, 제가 그 아이에게 암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자책을 많이 하는 아이거든요. 자기가 암에 걸렸다면 분명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것을 아는 아이니까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과 우리 모두 아이를 위해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동안 저 아이는 암이 아니라 단지 신장에 약간 문제가 있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마음 상하지 않게 잘 이야기 해주실 수 있는지요?”

 정말 드라마나 소설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을 나는 경험하고 만 것이다. 수검자의 부모님의 눈에 간절함이 있었고 난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검자에게 다시 돌아가 천천히 암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고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수검자는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말을 던졌다. 하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자신도 자신이지만 부모님도 숨겨왔던 것에 대한 잘못을 자책할지 모른다는 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 수검자는 암이 맞았고 중한 상태로 판별되어 기초검사는 생략하고 바로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가야했다. 같이 동행하는 길에 아직도 치료를 받는지, 상태는 어떤지 여러 질문을 던져가며 긴장감을 늦춰주었다. 그러나 그 수검자는 자기가 긴장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긴장하지 않는지 항상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수검자에게 말했다.

 “부모님 또한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만약 피하려고만 했다면 오늘 병역판정검사장에 같이 오시지 않았겠지요. 분명 내 아들은 그 말을 듣고 이겨낼 나이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오늘 같이 오고 수검자에게 병명을 알려줬을 것이라 생각해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수검자 분과 부모님, 모두 강하신 분입니다.” 순간 수검자는 희미한 미소를 띄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내려오는 길에 부모님을 만났다. 어떠냐는 식의 질문이었지만 곧 판정이 나올 것이고 판정에 맞춰 앞으로 검사를 진행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의 표정이 걱정하는 표정이어서 다시 말씀드렸다. “수검자 분은 아까 전에도 부모님을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사받으러 가기 전에는 흔들리지 않고 웃으며 가더군요. 수검자 분은 분명 부모님을 만날 때 걱정을 끼쳐드리기 싫어 웃으며, 자연스럽게 돌아 올텐데...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시면 수검자 분의 마음이 얼마나 더 복잡해지겠습니까? 오시면 반갑게 맞아주세요.” 그리고 곧 부모님과 수검자는 서로 웃으며 만났다.

 본인의 병역판정검사에 만족하고 왜 여태 이야기를 안했느냐는 등 이야기를 나눈 뒤 나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며 병역판정검사장을 떠났다. 나는 그 공기에 휩싸여 있을 때, 잠시나마 산타클로스가 되었던 것 같았다. 거창한 선물이 아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는 산타클로스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검자들에게 웃으며 대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기쁨과 희망이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병역 생활이 고통이 아니게 첫 시작을 이곳에서 등불과 같이 밝게 시작하게 말이다. 지금도 가끔 이 일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겐 선생님, 누군가에겐 형이 되었을 때 지어준 미소와 고마워하는 말들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힘이 나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송준혁 / 전북지방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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