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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㉔] 너의 다리가 되어줄게

Written by. 인규백   입력 : 2017-09-22 오전 9: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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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새로운 다리

 여러분에게 두 다리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저 움직임을 위한 수단인가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은 큰 의미로 다가오기는 힘듭니다. 아예 마음속에 되짚어보는 일 조차도 없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다리의 존재에 고마워하며 걸어 다니기에 너무 바쁘실 수도 있으니까요. 저 역시 복무 전까진 그랬구요. 하지만 지금 저는 누군가에겐 “다리“란 수단을 뛰어넘어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초등학교에서 두 다리가 불편한 학생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화장실도 같이 가고, 밥도 같이 먹고 항상 붙어 다니며 학교생활을 성실히 보내도록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처음 임무를 배정받을 때,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만 앞서, 내가 누군가의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도움, ○○의 적극적인 태도, 학우들의 관심과 부모님의 사랑으로 저는 그 학생의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제 느낌을 시간흐름대로 공유하려고 합니다.

 꽤 잘 숨겨진 두려움 - 입영 전

 군 복무를 위해 준비 한 지 1년쯤 되는 날, 애타게 기다리던 입영 연락을 받았습니다. 설렘과 기대가 너무 단숨에 몰아쳐 실감이 나지 않아 잠시 동안 하늘을 멍 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미화시켜 설렘, 그 속엔 두려움과 불안이 웅크리며 간신히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이 도전한다는 생각은 저를 자극시켰으며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입영 당일. 소집지로 향할 때에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고 표현 하는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 때의 느낌이 얼마나 생생한지 근무를 시작한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무엇인가 책임감을 갖게 된 기분, 사회의 디딤돌을 딛기 시작한 기분 등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입은 물론 몸 하나 움직이지 못 했던 제가 기억이 나네요.

 물 빠진 색안경 - 복무 첫 날

 소집장소에 도착 후, 바짝 긴장한 채로 선생님들의 도움 받아 대기실 소파에 앉았습니다. 양 옆에 동기들이 앉아 있고 그 앞엔 우리같이 신선한 느낌 보단 더 익어 스며든 듯 한 느낌을 내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번에 선임이란것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선 복무 제도로 근무를 시작한 저는 기초군사교육을 아직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선임이란 그 단어는 감히 쉽게 다가가지 못 할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낯설고 어색해, 굳어 있던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시고 일 하는 요령 및 행동을 곧게 잡아주시며 저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셨고, 부담 갖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를 확실히 이끌어 주시고 군대라는 단어를 두르던 단단한 편견을 깨주시며 저희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이행능력도 확실히 향상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단추를 잘 꿰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환영 - 복무 5일째

 근무지로 가는 날, 걱정을 하며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곧 있으면 데리러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불안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단아하신 중년 선생님께서 대기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저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면서 반겨주셨을 때 앞서 저를 귀찮게 굴던 걱정들과 불안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어느 새 저도 웃으며 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자신이 교감선생님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굉장히 놀란 동시에 저의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를 편하게 해 주시려고 웃으시면서 임무에 관한 얘길 나누었는데, 웃음 뒤에 간절함과 기대가 숨겨지시지 않으셨습니다. 학교에 도착 후 다른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뜨거운 관심, 진심어린 충고를 받는 동시에 엄청난 기대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담임선생님께 돌봐야 될 ○○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이 저를 좀 더 깨운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작년 까지만 해도 일상생활가능 즉, 혼자 걸어 다녔었다는 말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이 때 부터 스스로 “할 수 있다“를 되뇌이며 한 학생의 미래를 책임진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는 병원에 가서 만남을 갖지 못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렇게 그 날은 지나갔습니다.

 굳은 손을 건네다 - 복무 한 달째

 ○○를 처음 만나는 날, ○○ 어머님께서 이틀 간 ○○를 돌보는 방법을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시며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지극정성으로 ○○를 돌봐주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제가 벅찼습니다. 열심히 하면 ○○부모님도 행복해 하실 걸 생각하니 더욱 힘이 나더군요. 하지만 첫 만남, 그 때의 저는 정말이지 형편없었습니다. 자신감도 없었고 근심만 가득했었으니까요.

 비록 제 얼굴은 웃고 있지만 순수한 ○○는 제 속을 알아챈 것 같습니다. 저에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죠. 그럴수록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서투른 저에게 작지만 속은 꽉 찬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처음이니까 그런거야”,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첫 주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행이 일찍 깨달았습니다. 이런 수동적인 태도로는 ○○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을. 그 후 지속적으로 ○○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저의 진심을 표현했습니다. 먼저 말을 걸고, 같이 놀아주며 최대한 마음을 전달했죠. 그러고 얼마 후 이동수업이 있어 ○○를 데려다 주는 중 같이 얘기를 하는데 저의 말을 듣고선 ○○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창에 비친 것을 봤습니다. 그 때의 심정을 어찌 글로 표현 할 수 있을까요.

 서투른 또 투박한 저의 손을 잡아주는 ○○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이 때 부터 인거 같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군 복무라는 얕은 말 대신 헌신과 봉사라는 더 깊고 의미 있는 활동으로 마음속에 자리매김 한 것을요. 그 후로 저는 더욱 사명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추진력 - 현 복무 두 달째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복무는 더 이상 단순한 의무적인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오히려 매료되어 ○○를 도와줄 방법을 스스로 찾기도 했었으니까요.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는 주변의 큰 도움이 저를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무엇보다도 ○○의 학급친구들의 태도를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애들은 ○○를 “자기와 다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얘들이 ○○의 장애를 인지하지만, 그 것이 그들의 관계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먼저 도와주려고 이동할 때에 같이 휠체어를 잡아주고 책, 준비물 등을 챙겨주며 저와 같은 ○○의 또 다른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혹시라도 학우들이 다르게 대하지 않을까, 관계에 힘들어 하지 않을까, 여러 걱정을 했었지만 지금 생각을 하니 그런 걱정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러웠습니다.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 체육시간이 있습니다. 수업 전 쉬는 시간에 ○○의 이동을 위해 반으로 올라가면 ○○는 항상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평범하게 생각 될지 모르지만, 고대하던 체육시간이 다가와 즐거움을 감추지 못 하고 방방 뛰어다니는 얘들을 보니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체육시간이 다 되어, ○○에게 “체육하러 가자”라고 했더니 저에게 “체육 재미없는데.. 어차피 전 못 하잖아요.”라고 답을 했습니다. 뭐랄까요.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그냥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자신의 장애로 인해서 한 창 밝게 뛰어놀 시기인데 그러지 못 하는 ○○를 보니 제가 미안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해 온 것이 맞는지, 언제쯤 ○○의 완전한 다리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 자책을 했습니다. 또 지금까지 체육시간에 그의 안전을 위해 소극적으로 지켜보고만 있게 했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를 실망시켰던거죠.

 또 어떻게 보면 제가 얘들보다 더 ○○를 다르게 보았던 셈이죠. 하지만 한 없이 부정적일 것만 같던 이 시간은 저에게 큰 디딤돌이 됐습니다. 체육시간, 저는 ○○에게 배드민턴 라켓을 쥐어줬습니다. 떨렸습니다. ○○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때 반 친구들이 ○○에게 먼저 같이 하자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참여해서 같이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가 밝게 웃으면서 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차고, 벅찼습니다.

 또 힘이 부족한 ○○의 공을 받기위해 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드는 모습도 너무 고맙고 예뻤습니다. 어쩌면 순진한 아이들이 저보다 더 성숙한 게 아닐까요? 저는 아이들의 관심, 도움과 그 일로 인해 더 깊은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를 도와주기로 다짐했습니다. 이 날은 저에게 많은 교훈을 얻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사명감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와의 두 달. 저는 많은 것을 몸소 배우고 느끼며 점차 ○○의 삶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꺼려하는지. 또 무엇을 원하고 어디를 가고 싶은지, 저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죠. 전 하나씩 알아가며 ○○와 가까워짐을 느낄 때 비로소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칭찬합니다.

 그 덕분에 복무수행능력도 확실히 좋아졌으며 긍지 역시 늘어가고 있습니다. 또 현재 복무기관장님의 많은 도움으로 인해 만족도 높은 복무기관을 보내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의 22개월이 멀게 느껴지지 않고 두렵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내일은 무슨 재밌는 일이 생길까 하며 기대가 되곤 합니다. 매일 감사하고 겸손하며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여 든든한 삼례초등학교 사회복무요원 인규백이 되겠습니다.

인규백 / 완주교육지원청 삼례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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