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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내가 만드는 긍지 높은 역사’(입선)

Written by. 공현호   입력 : 2019-11-20 오전 11: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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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무뎌지고 녹슬어가다
 ‘복천박물관’. 같은 동네에 있음에도 초등학교 견학 이후, 한 번도 가 볼 생각을 하지 않은 우리집 뒷산의 작은 박물관이다. 나는 가까우면서도 나의 관심 밖에 있던 작은 박물관에서 2년 동안의 사회복무요원을 시작하였다. 복천박물관에서의 나의 업무는 각층의 안내소에 앉아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을 인솔하고 안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이 인솔과 안내를 하는 일이지, 산 중턱의 작은 박물관을 굳이 찾아오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곳에 배치된 사회복무요원도 4명이라는 소수의 인원이 배치되었기에, 선임들은 나를 상하관계와 군기없이 동료처럼 편하게 해주었다. 그런 편한 분위기 속에서 나의 시간이 흘러갔고, 언제부터인가 지금 복무를 하고 있는 시간들이 아깝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렇게 복무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잉여로운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나에게 작은 변화를 만들어준 사건 이 있었다.
 
관람객의 일침에 정신을 차리다
 어느 때와 같이 복무를 하던, 어느 날 한 관람객이 나에게 한 유물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나는 역사에 관련된 학과도 아니었고, 문과도 아니라 역사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관람객들이 역사에 관한 질문을 하면 나의 답은 대부분 ‘모른다.’였고, 그들은 항상 의문을 가진 채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를 변화시킨 이 관람객은 나에게 처음으로 의문을 가져주었다. ‘박물관을 안내하는 사람이 왜 알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복무를 하러 온 것이라 전문적 지식이 없다.” “역사를 깊이 배우지 않아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 “유물에 관한 설명은 나의 소관이 아니다.”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 해주었던 안내멘트들 보다 청산유수같이 변명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분은 나의 바쁜 변명들을 듣고 나에게 뼈아픈 일침을 두었다. “그럼 당신이 여기서 근무를 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는가?” 지금 당장 다른 누가 오더라도 나를 대신할 수 있다면 여기서 내가 일할 필요가 없다는 한마디에 나는 반박할 수 없었고, 나는 처음으로 관람객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하였다.

배움으로부터 긍지를 찾다
 관람객의 일침을 들은 그날 이후, 박물관의 안내자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내가 복무하고 있는 복천 박물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루 9시간을 박물관에 있는 근무 환경 덕분에 박물관에 관한 지식을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사를 모르면 내가 밟은 이 땅이 유적인지 동산인지 모른다.’는 학예사의 말처럼, 박물관에 대해 알아갈수록 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소개하는 중요한 장소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에 일침을 두었던 관람객의 질문은 생각보다 간단한 질문이었다. 박물관의 내용들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는 사실에 내가 해왔던 대응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박물관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알게 된 이후 나에겐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다.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박물관을 찾아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유물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박물관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다.

 이전과는 달리 나는 관람객들의 질문에 보다 정확하게 답을 해줄 수 있었고, 자신들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알게 된 사람들은 지금껏 내가 들어온 인사 중 가장 즐겁고 진심어린 감사인사를 해주었다. 지금까지 무의미하다고 여긴 시간의 흐름이 스스로에 한 긍지와 세상의 따뜻함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선순환은 나를 더더욱 밝고 부드럽게 관람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고, 단체로 감사인사를 하던 귀여운 어린이들, 목을 많이 사용하셨다고 음료를 건네주시던 아주머니, 변변찮은 설명에도 감사인사를 하며 이름을 물어보고 가시던 할아버지, 한 페이지에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감사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중 2019년 3월에 오셨던 일본인 관광객에 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내가 배운 긍지를 널리 퍼트리다
 복천박물관은 항구와 공항이 있는 부산에 위치해 있어,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한다. 이중 1/2 이상이 일본인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교류의 영향 때문인지 부산에 방문한 일본인들은 박물관에 많이 방문한다.

 나는 사회복무요원 중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을 상대하게 되었고, 나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에 좋은 인상을 남겨가길 소망하며 그들의 궁금증을 최대한 친절하게 해결해 주었다. 이 박물관에서 수많은 일본인들을 상대하고  많은 대화를 하였지만 3월에 방문한 그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것은 그가 이곳을 찾은 특별한 이유 때문이라 생각된다.

 3월의 꽃이 피기 시작하는 어느 날, 점심시간에 대기실로 연락이 왔다. ‘한 일본인이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을 찾는다.’라는 주사님의 말씀에 나는 휴식시간을 뒤로하고 일본인의 안내에 나섰고, 여느 때와 같이 박물관을 방문한 일본인에게 이 박물관의 역사와 유물의 의미에 해 간략하게 설명드렸다. 하지만 그는 간략한 설명 속에서 유물의 출토지와 형태, 역사적 의미와 같은 한국인조차 하지 않는 심도깊은 질문들을 하였다.

 그의 질문들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깊이 알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질문들이었고, 이러한 질의응답이 오갈수록 나는 이곳을 찾아온 신기한 일본인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박물관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끝낸 후 나는 그 일본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정말 특별한 주제로 유튜브를 하고 있는 역사 유튜버였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주제로 유튜브를 하는 유튜버였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왜곡된 역사적 지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그것만을 보고 배운 사람들은 왜곡된 역사적 지식을 사실인 듯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곳에 방문한 일본인들 중 신라와 가야, 백제가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문화를 등한시 여기거나 신라와 가야의 철기문화가 일본에서 전파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려 했지만 그들과의 역사적 괴리가 더 크게 생겨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일간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일본에서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자신의 국가에 올바른 쓴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내가 지금 안내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지금까지의 사회복무요원 복무 중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나는 복무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그를 안내하며 그와의 대화를 이어나갔고, 우리는 그의 다음 목적지인 서면에 다다라서야 서로에게 아쉬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 그가 자신의 영상에 조력자로 소개한다며 찍어간 나의 사진과 이름은 지금쯤 그의 채널에서 평생을 다해도 다 듣지 못할 일본인들의 수많은 욕을 듣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미안하게도 그들이 할 욕의 수만큼 나는 내가 한 그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복천박물관에서 근무를 하다보면 부산에는 역사적으로 볼만한 문화재가 별로 없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물론 화려한 문화재들이 있는 경주나 공주, 서울에 비교하면 부산의 문화재는 부족하게 보일지 모른다. 거대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꼭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조차 부러워하는 장소라고, 투박하고 녹슨 철밖에 없는 이 장소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아름다운 문화가 숨쉬던 곳이라고 말이다.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내 앞에 보이는 유물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나에겐 그냥 오래된 물건일 뿐이다.”

 지금 나는 복천박물관의 안내자로써, 역사에 대해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역사의 한 조각을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박물관에 전시된 녹슨 철이 1500년 전 가야인의 기술의 정수임을 알 수 있도록, 눈앞의 아름다운 방울이 우리나라의 보물임을 알 수 있도록, 화려했던 우리의 역사에 대해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내가 복천박물관에서 얻은 것들을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명언이 있듯 복천박물관이라는 작은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를 담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역사속 화려했던 한 페이지를 전해주는 그런 사회복무요원이 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작은 노력들이 대한민국의 5천년이라는 긍지 높은 역사에 작은 보탬이 되길 소망하며 오늘도 나는 복천박물관의 사회복무요원으로써 사람들을 맞이한다.

공현호(부산시립복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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