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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벤 플리트 장군 외아들, 북한에 억류된 후 러시아 강제수용소서 숨져”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 맥크리스천 주니어 증언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0-09-21 오후 3: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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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중 실종된 뒤 전사 처리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실제로는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후 중국을 거쳐 러시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VOA(미국의소리방송)에 따르면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 맥크리스천 주니어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주최한 ‘한국전쟁 역사’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해, 외삼촌 밴 플리트 2세가 북한에 포로로 잡혀 억류됐다가 6개월 뒤 중국군에 넘겨졌으며, 중국군은 적군 사령관의 아들을 포로로 잡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밴 플리트 2세의 군 인식표를 공개 전시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맥크리스천 주니어는 이어 밴 플리트 2세가 중국에서 다시 옛 소련으로 이송돼 강제수용소인 시베리아 ‘굴락’에 수용됐다며 이같은 내용은 미국 육군 정보국 참모차장을 지냈던 자신의 아버지가 확인한 정보라고 말했다.

 1948년 6월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밴 플리트 2세는 1949년 10월에 끝난 그리스 내전에 공군으로 이미 한 차례 참전해 또다시 해외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인 아버지를 따라 B-26 전투기 조종사로 지원해 1952년 3월 14일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뎠다.

 밴 플리트 2세가 한국전 참전 명령을 받은 직후 어머니에게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이제 저도 힘을 보탤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고, 아직 가정을 이루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1952년 4월 4일 새벽 1시 5분. 밴 플리트 2세는 승무원 존 맥칼리스터 중위와 기관병 랄프 펠프스 일방과 함께 압록강 남쪽 50마일 지점의 선천에 대한 ‘정찰 폭격’ 임무를 위해 B-26 폭격기에 올랐다. 그의 4번 째 작전 비행이자 첫 단독 투입 비행 임무였다.

 그러나 밴 플리트 2세의 폭격기는 기지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아들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들은 밴 플리트 장군은 수색 작업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고, 한국전쟁 휴전 이후인 1954년 3월 밴 플리트 2세는 ‘전사’ 처리됐다.

 이날 화상 세미나에는 밴 플리트 부자 후손 뿐 아니라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군을 지휘한 에드워드 알몬드 미국 10군단장, 장진호 전투의 영웅 에드워드 스미스 미국 해병 1사단장, 흥남 철수 작전의 주역 에드워드 포니 해병대 대령 등의 후손들도 참석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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