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 고향에 영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실종된 뒤 70년 만에 유해로 고향에 돌아온 미국의 에밀 카폰 신부 장례 미사와 성찬식이 29일(현지시간) 캔자스 위치타의 허트맨 대강당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카폰 신부는 전장에서 아군은 물론 적군 부상병까지 돌보며 인류애를 실천하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숨져 '한국전의 예수'로 불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장례 미사는 위치타 교구 주교인 칼 켐 신부가 집전해 카폰 신부와 함께 참전했던 노병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카폰 신부가 고된 상황 속에서도 어떠한 불평도 없이 전우들을 위해 봉사했다며 존경을 표했다.
장례 미사에 앞서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실제 방송됐던 에밀 카폰 신부의 생전 설교 영상이 방영됐는데, 영상에는 카폰 신부의 생전 모습과 그의 생가가 담겼고 그가 한국전쟁에서 종군신부로 참전했던 당시 모습도 담겨 있었다.
장례 미사를 마친 카폰 신부의 관은 성조기에 둘러싸여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로 위치타 성당으로 향했다. 마차 뒤로는 그의 유족인 조카 레이 카폰 씨, 위치타 교구의 신부들 그리고 재향군인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으며, 성당에 도착한 카폰 신부의 유해는 대리석 관으로 옮겨져 지하 묘지에 안치됐다.
한편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지난 3월 5일(현지시간) 하와이주의 국립태평양 묘지에 안장된 신원미상의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카폰 신부는 캔자스주 필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한국전에 파견됐다. 같은 해 11월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전선에 남아 부상병을 대피시키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카폰 신부는 중공군이 부상병을 사살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부상병을 지켰고 교전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보는 박애정신을 실천했다.
평안북도 벽동수용소로 끌려간 후에도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 포로의 옷을 빨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을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과 약을 적군 저장고에서 훔쳐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다 이질과 폐렴에 걸려 1951년 5월 23일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카폰 신부의 박애 정신은 생존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1954년 그의 생애를 담은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라는 책이 발간됐다.
한국에는 1956년 당시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종군 신부 카폰'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판을 내면서 소개됐고, 그에게는 '한국전의 예수', '6·25 전쟁의 성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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