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립운동가에 제주해녀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선생, 6.25전쟁 영웅에 정락구 육군 중위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선생을 ‘2022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세분의 선생은 1931~1932년에 걸쳐 제주도 일대 해녀들을 중심으로 일제와 해녀조합의 수탈과 착취에 항거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분들로, 1992년 「이달의 독립운동가」선정 이래 건국포장자로는 처음이자 제주도 출신으로도 처음으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세분의 선생 모두 제주도 구좌면(현, 구좌읍) 출생으로, 부춘화 선생은 15세에, 김옥련 선생은 9세에, 부덕량 선생은 13세에 가족 생계에 보탬을 위해 어린 나이에 해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제주도는 토지가 척박하여 여성이라면 해녀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웠고 근대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선생들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함께 공부하고 근대 항일·민족의식을 깨우쳐 1930년 해녀조합의 우뭇가사리 해조류 부정판매에 항의하던 하도리 청년들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함께 저항했다.
이듬해인 1931년 12월 일제의 해녀 착취에 항의하기 위해 세 분은 하도리 해녀 회의에서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1932년 1월 12일 제주시 구좌면 세화리 장날이자 제주도사(현, 제주도지사) 겸 해녀조합장이 부임 후 순시하러 구좌면에 오는 날에 하도리 해녀들을 포함한 제주 일대 해녀들이 호미와 비창(전복을 따는 도구)을 휘두르며 시위를 시작했다.
특히, 선생들은 해녀들을 규합하며 시위에 앞장섰고, 모든 해녀 투쟁 참여자를 대표하여 “도사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등의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제주도사와 직접 협상했다.
이 과정에 위협을 느낀 제주도사는 요구조건을 5일 내에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주도사가 돌아간 이후 일제는 무장경찰을 출동시켜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34명의 해녀 주동자들과 수십명의 청년들을 체포했다.
선생들은 경찰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수 개월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고, 안타깝게도 부덕량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하여 28세 나이로 사망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의 부당한 경제적 차별과 수탈, 그리고 억압에 저항한 조직적인 투쟁으로써, ‘법정사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과 함께 제주 3대 항일운동의 하나로 꼽힌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부춘화 선생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부덕량 선생에게는 2005년 건국포장을 각각 추서했으며, 김옥련 선생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한편 ‘2022년 1월의 6‧25 전쟁영웅’에는 정락구(1928.11.28.~1952.10.14.) 육군 중위가 선정됐다. 정락구 중위는 6·25전쟁 기간인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중국군 제38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강원도 철원의 ‘백마고지 전투’에서 국군 제9사단 28연대 11중대 소대장으로 임무 수행 중에 적의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1928년 11월 28일 충청북도 괴산에서 출생한 정락구 중위는 1952년에 갑종장교 제12기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국군 제9사단 28연대 11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전 중, 1952년 10월 13일 소대를 이끌고 백마고지의 외곽 능선을 공격하다가 진지 속에 엄폐한 적군의 치열한 사격을 받았다.
정락구 소대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계속 전진하였고, 그의 용기에 감복한 소대원 3명도 함께 적의 진지를 향해 돌격했다. 정 소대장은 적의 거세지는 사격에도 계속 전진하여 수류탄을 투척해 적의 기관총 진지를 격파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날아온 적의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이러한 살신성인 정신으로 임무를 수행한 정 소대장의 죽음에 분개한 소대원들은 즉시 공격을 가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적 진지를 탈환했다.
정락구 중위는 생전인 1952년 7월 20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전사 후에 그에게 백마고지 전투 등의 공적으로 1953년 6월 9일 미국의 십자수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이, 1953년 7월 1일에는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정락구 중위가 받은 십자수훈장은 6‧25전쟁 중 한국인으로선 단 4명에게만 수여된 것이었으며, 정락구 중위의 유해는 2010년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3묘역에 안장되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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