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90) 항일의병 13도 창의군탑
서울시 중랑구에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있다. 이곳은 과거 공동묘지였던 곳이 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된 곳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한용운, 조봉암, 오세창, 박인환, 천상병, 이중섭, 방정환, 채중락 등 많은 독립운동가, 정치가, 시인, 작가, 가수, 화가들이 잠들어 있다.
이 망우역사문화공원 입구 아래 망우저류조공원에는 탑 1개가 우뚝 솟아 있다. 이 탑은 1991년 동아일보사가 국민 성금을 모아 3·1운동 유적 보존 운동의 하나로 건립한 것으로 13도 창의군탑으로 불린다.
13도 창의군탑은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1907년 12월 서울을 탈환할 목적으로 전국 13개 도 의병들이 모여 조직한 13도 창의군을 기리는 탑이다. 13도 창의군은 경기 양주에서 진공(進攻)작전을 개시했고 선발대는 지금의 망우리고개 일대까지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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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침탈당하고 이로부터 2년이 흐른 1907년, 고종이 일본으로부터 강제퇴위 당한다. 더불어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 해산되는 수모를 겪는다. 이에 전국적으로 의병이 다시 일어나는데, 의병들은 전국에서 해산당한 군인들과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기로 결의한다.
총 병력 1만여 명에 이르는 의병과 관군 연합군은 이인영을 13도 창의군 총사령관으로 추대하고, 허위를 군사장으로 삼아 서울로 진격한다. 전국에서 들고 일어난 의병 중 선봉대는 13도 창의군 탑이 세워진 망우리까지 진격한 후 후속부대의 지원이 없어서 철수한다. 13도 창의군탑은 의병 연합군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진격한 이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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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동대문 밖 30리의 이 언저리는 항일의병의 구국혼이 어리어 있는 곳이다. 일제에게 군대마저 강제 해산되어 민족사가 끊어지려는 위기에 전국 의병이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격파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1907년 11월 경기 양주땅에 집결하였다. 48진 1만여명에 이르는 의병은 13도 창의대진소를 설립하고 총대장에는 이인영을 군사장에는 허위를 추대하였다. 다음해 1월 허위는 3백명의 선봉결사대를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다 이곳에서 일본군과 혈전을 벌였으나 후속 부대의 도착이 늦어 중과부적으로 퇴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허위는 임진강을 근거지로 서울을 공격하였으며 전국에서 의병전쟁이 더욱 치열하여졌다. 비록 서울을 탈환하지는 못하였으나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려는 연합 의병들의 그 큰뜻은 길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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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도 창의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하려는 작전을 실행했으나 이 계획을 사전에 안 일본군은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고, 이인영이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의병운동을 중지하라는 통문을 각 진영에 돌림으로써 지도부가 붕괴되어 의병의 주력부대는 흩어져 물러서고 말았다.
결국 1908년 2월 28일에 해산한 이후 13도 창의군은 각기 근거지로 돌아가 개별적인 의병활동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서울 탈환의 꿈을 이루지 못했으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려던 전국 연합 의병들의 고귀한 외침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오늘 이 평화로운 공원을 산책하며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머리 숙여 참배해 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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