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95)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 전공비
첩보란 ‘적의 내부에 침투하여 적의 형편을 살펴서 알려 줌’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스파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1951-1953년 6.25전쟁기간중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중요한 정보를 수집 보고하여 미 제8군과 전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큰 공적을 세운 많은 요원이 희생되어 그들의 희생에 추모와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 전공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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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동란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국제 연합군의 지원으로 1950년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였다.
계속 부진을 거듭하여 통일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뜻밖에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인하여 1950년 12월 하순에는 중공군의 정월 대공세 작전으로 아군의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두 번째로 1.4후퇴로 인하여 서울이 재차 함락되었다.
이렇게 불리한 전세였을 때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는 문산 지역에 지대본부를 설치하고 의정부, 동두천지역에는 미 제3사단 파견대를 비롯 6개 파견대로 편성되어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중공군 제63군, 제64군에 대한 주요작전 계획을 탐지 보고하였다.
연합군의 3월 대반격작전(리타)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미 제8군으로부터 영웅부대로 인정받아 지대장을 역임한 김동석 대령이 영웅으로 추대되었다.
특히 문산 파견대장인 김진수 중위는 휘하 무장 공작대원들과 함께 대통령 특명으로 휴전회담을 방해 파괴하라는 특별지시를 받고 판문점 휴전회담장을 수차례에 걸쳐 기습작전을 지휘 감행하여 판문점 전시설 등을 파괴하여 회담을 지연시켰다.
도평리 지역으로 새로 배치되는 중공군 8명 및 관측군관, 통신군관을 생포하여 아군 작전에 필요한 주요 기밀 첩보를 수집하였으며, 1951년 6월에 문산 파견대를 비롯 전지대 파견대를 지휘하여 고랑포에 주둔 중이던 인민군 제4사단 사령부를 기습하여 기밀문서 수집과 싸이카 차량 등 다수의 군수물자를 획득하였다.
대덕산에 주둔 중이던 인민군을 기습하여 수명을 생포하고 다량의 군수물자를 노획하는 등, 수 많은 작전을 통하여 적군 포로 40여 명을 생포 또는 귀순시키는 전과를 올리는 와중에서 아측 동료들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그들의 빛나는 공적을 기리며 명복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전공비를 세웠다.
전공비는 한국전쟁 당시 경기 서부지역 등에서 특수임무 수행 중 숨지거나 다친 360여명의 희생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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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문산-개성 일대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국군 제1사단이 1973년 조성한 곳이다.
공원 언덕위에는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 전공비’, ‘한국전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살신성인탑(殺身成仁塔)’, ‘이유종 대령 기념비’, ‘소위 김만술상’, ‘충현탑(忠顯塔)’, ‘임광빈 중령 기념비’,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등, 많은 참전 기념물들이 세워져 있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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